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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평]부시의 ‘깡패국가’ 만들기
[세평]부시의 ‘깡패국가’ 만들기
  • 이수훈 경남대
  • 승인 2001.05.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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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5-15 18:10:29
지난 1일의 부시 대통령 미사일방어체제 구축 선언이 전세계적으로 일파만파의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김대중정부 출범이후 미국과의 정책 공조아래 급진전된 한반도 해빙 무드는 일순 찬물을 맞았다.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한국은 이렇다할 선택카드가 없는 가운데 그저 곤혹스럽기만 하다. 북한을 비롯해서 “불량국가”로 분류된 국가들은 말할 것 없고, 유럽과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들도 각기 다른 이유 때문에 드세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내 주요 언론들과 과학자들도 비판의 대열에 섰다.

1947년 그리스내전에 영국을 대신해 개입하면서 선언한 ‘트루만 독트린’이 냉전을 낳았듯이, 이번 ‘부시 독트린’은 신냉전을 본격화했다는 점에서 묘한 역사적 연속성을 감지함과 동시에 일단 그런 측면에서 미사일방어체제 구축 선언의 국제정치적 의미를 새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시발된 냉전체제가 1989년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국가들의 붕괴로 종말을 고하자, 당시 부시 대통령은 ‘신세계질서’의 구축을 주창했다. 냉전체제의 상징이었던 이념 대립과 갈등을 넘어 평화와 협력의 새로운 세계질서를 구축하자는 근사한 명분을 앞세웠다.

그러나 1991년 벽두에 발발한 걸프전은 부시의 ‘신세계질서’가 탈냉전시대 미국 패권 유지와 노골적 군사행동이라는 진정한 의도를 분식하기 위한 하나의 가면에 불과했다는 점이 이내 입증되었다. 냉전 종식으로 소련의 위협이 제거되자 미국은 자신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신냉전’ 발명사업을 추진시켰다. 그 일환으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징벌 이전에 이미 부시행정부는 남반구를 상대로 본격적인 ‘악마 만들기’에 나섰다. 파나마의 노리에가, 리비아의 카다피, 니까라과의 오르테가, 북한의 김일성, 이란의 호메이니, 이라크의 후세인, 최근의 밀로세비치 등등 리스트는 길다. 이들은 대개 자유민주주의 파괴자, 테러주의자, 독재자, 정신이상자로 그려지고, 그들이 통치하는 국가는 ‘깡패’ 내지는 ‘불량’ 국가로 분류되었다.

이들 힘없는 소국들은 패권자의 위용과 실제 실력 행사로 인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국제적으로 따돌리고, 각종 경제제재에 의해 곤욕을 치르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들 가운데 몇몇은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을 대응 카드로 택했다. 이라크와 북한이 대표격이다. 지금 부시대통령이 구축하고자하는 미사일방어체제가 바로 이런 ‘불량국가’의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미국과 우방동맹국들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을 갖는다고 말하고 있다.

걸프전 당시 CNN을 통해 생생하게 전황을 목격한 우리로서는 이 논리가 거의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고 본다. 전쟁으로 가기 전, 미국은 이라크가 대량의 생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스커드미사일을 다량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막상 전쟁은 어땠는가? 현지 아나운서의 표현대로라면 미국 폭격비행단의 “에어쇼”와 “불꽃놀이”에 비유될 정도의 일방적 공습 끝에 이라크는 제대로 대항해보지도 못하고 단기에 전쟁은 끝났다. 가령 이라크를 예로 삼아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전쟁의 파괴위에 먹고살기도 힘든데 방어망을 구축해야 할 정도의 미사일 공격이 어떻게 가능한가? 미사일체제 구축 논리는 설득력이 거의 없다.

세계사를 돌아볼 때 지금 이 시기는 설사 부족하기는 하더라도 평화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강대국들간의 전쟁이 없다. 내부적 갈등으로 폭력에 시달리는 지역이 많이 있지만 세계질서를 위협하는 그런 위험한 시기는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은 세계평화를 앞세워 비평화적인 물리력의 구축을 강변하고 있다. 미국의 본심은 패권자로서 전세계적으로 ‘사회적 기강’이 자신의 구미에 미흡하다고 느끼고 있는 듯하다. 그 ‘사회적 기강’을 잡기 위해 위험의 생산과 보호의 판매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악마와 ‘불량국가’는 미국의 패권체제 유지를 위해 모종의 기능을 한다. 그리고 그들이 갖고 있다는 미사일의 위협은 한국전쟁 당시 미 외교관이자 역사가인 조지 케난 (G. Kennan)의 표현대로 하나의 “속임수”에 가깝다. 위협이 왜곡되고 과장된 것이다.

그럼 이 왜곡과 과장은 왜 일어나는가? 여기에 자본의 이윤 동기가 개입된다. 미사일방어체제는 부시행정부의 세계전략이지만, 이를 통해 횡재를 할 사람들은 따로 있다. 레이건 대통령 때 추진된 SDI구상 이래 이 분야에 투자를 해온 군수 메이저들의 이해관계가 걸려있다. 그리고 만약 MD체제가 추진되면 수많은 첨단산업 분야 기업들이 참여할 것이고,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미사일방어체제가 현실화되면 한국전쟁 당시 트루만 대통령과 애치슨 국무장관이 추진한 “재무장프로그램”과 유사한 효과를 내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런 각도에서 부시 대통령의 MD체제 구축 선언을 “신재무장프로그램”이라 불러도 무방하지 싶다. 과잉 안보 관심에 따라 구상된 부시의 세계정책은 그 방향이 그릇되게 잡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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