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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식의 중심으로서의 자연관
세계인식의 중심으로서의 자연관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4.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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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소개 : 『조선후기 과학사상사 연구Ⅰ』(구만옥 지음, 혜안 刊, 2004, 548쪽)

이 책은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수정보완한 것으로 총 10년간의 학문적 투자로 완성된 한국 과학사상사 분야의 최근의 업적 가운데 하나다. 조선후기 여러 측면에서 성리학적 질서가 무너지면서 나타난 사상계의 변동, 특히 주자학적 사유체계의 변화 과정과 의미를 당대 각 학파들의 자연관·자연인식·우주론에 초점을 맞춰 연구하고 있다. 저자는 주자학적 사유체계가 세계관, 인간관, 사회관, 인식론 등을 아우르는 정합적 구조로 돼 있다는 점을 전제하면서, 조선후기에 그 질서가 흐트러졌다면 그것은 인간관·사회관의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세계관·자연관의 측면에서도 그러했으리라는 점에 착안한다. "우리 선조들이 자기 스스로를 우주적 존재로 규정하고, 자연과의 지속적인 교감 속에서 자신의 삶을 꾸려갔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17·18세기에 보이는 자연관의 변화는 중요한 관찰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 저자는 조선초의 '인격적 우주론'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것이 15세기 이후 주자학의 정착에 따라 이법적 우주론(理法天觀)으로 바뀌는 과정을 살핀다. 이런 자연관으로서의 天理와 삼강오륜으로 대표되는 도덕적 질서체계가 유기적으로 융합되는 과정도 마찬가지로 살펴보는데, 두 번의 전쟁을 거치면서 유학자들이 보수파와 개화파로 갈라지고, 그에 따라 우주론과 역학을 결합시킨 역학적 우주론의 등장을 장현광의 '역할도설'로 살피고, 이어서 자연법칙을 인간사에 끌어들이길 거부한 이수광의 '심학적 우주론'에 이어지는 과정을 점검하고 있다.

17세기에 오면 서구 과학이 흘러들어옴으로써 더욱 지형이 복잡화되는데 지배층은 대체로 주자학적 이법천관의 절대화로 나아간 반면, 중앙정계에서 소외된 남인·소론계, 영남계 등에서는 절충주의와 함께 주자학적 자연관을 깨뜨리고 개별 사물의 고유한 이치만을 인정(格物致知)하고 서양의 우주론을 받아들인 근기남인계 학자들, 實測과 객관 사물에 입각해 법칙을 수립하려는 입장으로 보인 정제두 등의 양명학파도 나오게 된다.

저자는 특히 홍대용에 주목하는데 '유기체적 자연관'을 바탕에 깔면서도, 道理를 위주로 해 物理를 포섭하는 전통적 사유가 아니라, 인간과 사물의 가치를 대등하게 평가하면서 홍대용은 절대주의의 부정과 상대주의적 사유로의 전환을 모색했다. 또한 그의 우주론은 지구설과 지전설을 수용한 뒤, 무한우주론을 주장함으로써 중국·인간·지구 중심의 사고로부터 탈피해 다른 세계관으로 이행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저자는 말한다.

지금까지 조선후기 사상사는 각 학파들의 인간론·심성론과 정치경제사상 등을 중심으로 연구돼 왔다. 저자는 상대적으로 검토가 소홀했던 자연관과 우주론을 통해 조선후기 사상학파들의 분화와 차이, 새로운 사유 모색의 지점들을 부각시키려 노력하고 있어 학계의 주목을 요한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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