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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文, 실제 삶과 밀접히 연관...천제론에서 人은 어디에...
天文, 실제 삶과 밀접히 연관...천제론에서 人은 어디에...
  • 최진묵 서울대
  • 승인 2004.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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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서평:『고대 중국인이 바라본 하늘의 세계』(이문규 저, 문학과지성사 刊, 2000, 400쪽)

최진묵/서울대 동양사학

중국 고대사회에 있어서 천체와 자연의 영역을 규명하는 일은 단지 그 자체를 이해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天地는 人과 분리되지 않고 서로 유기적 연관을 갖는 존재로서 역사를 구성하는 중요한 한 요소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다. 중국 고대인들의 사유체계속에 天人相應說이라 불리는 이러한 관념이 널리 자리잡아왔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본서는 이러한 점을 인식하면서 인간을 둘러싼 환경으로서의 천과 지의 두 영역 중 특히 천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중국 고대인들이 이해했던 ‘실체를 가진 물리적 대상으로서의 천(하늘)’의 객관적 세계를 해명하고자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지금까지 개별적으로 이루어져왔던 천문, 역법, 천체구조론을 ‘하늘의 세계’라는 영역으로 통합하였다. ‘천문의 원리와 실제적용’(제1부)은 기존 연구에서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던 천상天象의 실제적용에 관한 문제를 ‘사기’와 ‘한서’의 천문사례등을 통해 조명했고, ‘역법의 변천과 그 기능’(제2부)?‘천체구조론’(제3부)에서는 기존에 상당한 연구가 있었지만 달리 해석될 여지가 있는 부분에 대해 검토했다. ‘역법’에서는 태초력과 사분력의 개력과정에서 황제와 중앙관료를 4개의 그룹으로 분류하고 각기 역학관계에 의해 개력이 진행되었다는 점을 논증한 점이 흥미롭다. 또한 ‘천체구조론’에서는 天圓地方論은 천체구조론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종래의 蓋天說에 대해서도 재검토하여 1차 개천설과 2차 개천설의 구분의 모호함과 ‘주비산경’에 소개된 개천설이 당시 개천설의 한 분파임을 입증하였던 점등이 주목된다. 

본서의 연구방법론과 구성 및 결론 등을 종합해 볼 때, 기존 논의처럼 본서를 단지 현대적 의미에서의 천문학사나 과학사를 다루는 전저로만 취급하는데는 찬성할 수 없다. 본서는 여태까지의 천문학사류의 연구와는 달리 천문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고대 중국인들의 천의 세계를 설명했지만, 동시에 천인상응이라는 논리의 현실적용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관해 논증함으로써 천문이 실제의 삶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음을 입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현대 학문의 분류체계를 통해 중국 고대인들의 지적체계를 설명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천체도 객관적이고 홀로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기보다는 천?지?인 삼자의 유기적 연관관계속에서 의미를 가졌기 때문에 천문은 지리와 인체와 人事와 결부될 수밖에 없었고, 역법은 점성술과 星命術의 세계와도 긴밀히 연결되었다. 저자도 언급하고 있듯이 본서에서 다루는 천문학의 방법은 곧 數術學의 영역인 것이다. 즉 필자는 현대학문의 분류체계를 극복하고 중국 고대 당시 현실로 존재하던 지적체계와 학문을 현대의 우리들에게 확인시키고 싶었던 것 같다. 저자가 점성술, 수리천문학, 고고천문학 등에서 늘상 사용하는 천체 혹은 천이라는 용어를 고집하지 않고 종교적 이미지가 강조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하늘의 세계’라고 표기한 것은 이러한 저자의 고심을 반영한 것으로 생각된다.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본서는 圖像자료를 통해 본 천의 관념도 소개하고 있지만, 기존 역사연구에서는 매우 미진한 분야였던 ‘천문지’나 ‘오행지’, ‘율력지’ 등의 사료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특히 주목할 가치가 있다. 또한 역법의 기능 등에 관해서 기존에 거의 언급되지 않았던 讖緯의 부합여부, 정치세력간의 갈등문제를 지적하여 종래 受命改制나 농업의 필요성을 넘어선 改曆의 동기로 설명한 것은 개력이 다양한 점술가들의 현실적 수요를 반영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의 새로운 연구가능성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서가 구성하는 세 영역 중 중국 漢代 천문과 역법은 劉歆의 분류에 따라 수술영역에 포함된다고 하지만, 천체구조론은 앞 두 영역과 구조적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여전히 약간의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의문은 천체구조론이 본질적으로 우주론의 범주에 속하는 것인데 우주의 구조를 설명하면서도 우주의 생성문제에 관해서는 매우 소략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제기되는 것이다. ‘우주의 생성과 그 구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우주에 나타나는 현상의 해석’ 및 그 수량화로서의 ‘역법’이라는 구성이 오히려 고대 중국인이 생각한 ‘하늘의 세계’의 논리적 전개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실제 ‘주역’과 ‘노자’의 우주생성론이외에도 근래 발견된 ‘곽점초간’의 太一生水편은 우주만물의 생성에 관한 매우 심도있는 기술을 하고 있는데, 이는 고대인들의 우주에 관한 근원적인 의문을 반영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초보적 천제구조론으로서의 천원지방론이 개천설과의 연결고리가 없고 단순한 관념에 불과하더라도 그 관념이 현실에 나타난 문화적 함의로서의 內圓外方 혹은 外圓內方의 기물들에 대한 이해는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본서에서 천문과 역법의 영역은 천인상응의 문제를 충분히 지적하고 있으면서도 천제구조론에서는 그것이 갖는 인의 영역과의 대응성을 그다지 설명하고 있지 않는 한계를 이러한 측면을 통해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중국고대사 연구에서는 천문의 법칙을 인사에 적용하여 수명천자로서의 한고조의 신비화작업과 수명의 정당화가 이루어졌다는 연구가 발표됐다. 장안성의 安門과 고조 長陵의 중점을 잇는 동경 108도 52분의 남북 중심축선의 설정, ‘오성이 동정에 모였다(五星聚于東井)’는 기사를 지상에도 구현하기 위해 거대한 圓坑을 만든 점, 淸, 河의 하도를 인위적으로 역류시켰다는 점 등이 지적됐다. 이것은 천문을 관측하여 인사에 적용한 것이 아니라, 인사와 역사를 천문을 통해 합리화시키고 정통성을 부여했다고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천문지’ 등의 기록에 대한 새로운 해석 가능성의 제시일 수 있다. 동시에 이는 고대 중국에서의 천체인식은 객관적인 천으로서 뿐만 아니라, 왕조의 정통과 황제의 신성화를 위한 天神의 의미를 갖는 종교적 측면에서도 충분히 고려해야 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서의 주논지는 아니지만, 한대 천문학체계의 성립이후 종교적 이념적 해석이 줄어들었다는 설명도(358쪽) 한대 화상석 자료 등을 활용하여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필자는 서울대에서 ‘漢代 數術學 硏究: 한대인의 天地人 이해와 그 활용’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대인의 지식전수체계와 통치 이념: 경학과 위학의 이념을 중심으로’, ‘중국고대 효이념의 형성과 그 변화’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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