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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쉽지만 선생님은 어렵다
선생은 쉽지만 선생님은 어렵다
  • 조준태
  • 승인 2021.05.17 13: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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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신희선 숙명여대 교수(기초교양대학)

시험과 평가를 통해 주고받는 피드백
더 나은 학생과 더 나은 선생의 만남

카피라이터 정철의 『사람사전』에 따르면 ‘선생’이라는 단어의 뜻은 “가르치는 사람”이다. 뒤이어 온 ’선생님‘의 뜻은 “공부를 가르치는 척하면서 세상을 가르치는 사람. 서른 명을 가르치는 척하면서 한 명 한 명을 가르치는 사람. 그냥 가르치는 게 아니라 배우려는 마음이 들게 한 후에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그는 “선생은 쉽지만 선생님은 어렵다”라고 정의 내린다. 학생들이 매긴 수업 중간평가 결과를 보며, 중간고사 동안 이번 학기 전반부 수업을 돌아본다. 과연 학생들에게 ‘선생님’ 역할을 제대로 했는가?

시험이 학생들을 평가하는 것처럼 중간평가는 수업과 교수를 평가한다. 이를 통해 선생은 학생이 되고 학생은 선생님이 된다. “너무나 유익한 수업입니다. 지금처럼만 강의해 주세요”, “실시간 ZOOM 수업이 조금 부담되지만 정말 재미있어요”,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정말 ‘뿜뿜’ 느껴집니다. 교수님의 열정 덕분에 함께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수업에 의욕적으로 임합니다. 남은 학기까지도 열심히 듣고, 많이 배우고 익히겠습니다” 등, 누가 썼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들이 남긴 긍정적인 피드백이 나이 든 교수를 춤추게 한다. 

중간 강의평가는 교수학습 과정에 대한 학생들의 실시간 피드백이다. 그리고 피드백은 학생만이 아니라 교수에게도 필요하다. 이번 학기, ‘지금’ 하고 있는 수업을 어떻게 만들어가는 게 좋을지 중간 점검을 하며, 수정하고 보완할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교수자가 학생들의 학습활동에 적절히 반응하고 구체적인 피드백을 전달해 학습동기를 자극하고 교육 효과를 높이듯이, 학생들이 중간평가에 남겨준 메시지는 교수가 더 나은 수업을 하도록 이끈다. 수업의 ‘중간평가’와 ‘중간고사’를 통해 교수자와 학습자가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는 셈이다. 

“학교에 과연 존엄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게랄트 휘터는 『존엄하게 산다는 것』에서 묻는다. 그는 ‘존엄’이 우리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법, 자신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고 스스로 책임을 지려는 태도라며, “21세기에도 많은 학교가 군대 훈련소와 같은” 상황이라고 우려한다. 조용히 앉아 교사의 설명과 질문을 듣고 지도받고 통제되는 시스템 하에서 학생들은 존엄을 깨우칠 기회를 놓치게 된다는 것이다. 높은 학점을 받고자 경쟁에 노출된 대학의 교육환경도 타인의 존엄은 고사하고 학생 스스로의 존엄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를 주지 못한다. 

같은 책에서 휘터는 우리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갈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발전할 수 있도록, 소속감 속에서도 온전한 자유를 누리고 자율성을 가진 주체임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돕는 만남”을 강조하며, 이를 ‘사랑’이라고 일컫는다. 평범하고도 비범한 사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본다. 교수와 학생과의 만남이 어떠해야 하는지, 거기에 답이 있다.

그런 점에서 『사람사전』의 ‘학점’에 대한 정의는 각별하다. “A에서 F까지. 그런데 E가 없다. 진정한 학점은 교수가 아니라 학생이 줘야 한다. 열심히 쫒아다니며 보고 듣고 읽고 썼다면 모두가 E다. 교수가 주는 학점과 관계없이 모두 Excellent다.” A가 보여주는 것은 일면일 뿐이다. 대학 시험이 수동적인 암기만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 깊게 탐구하고 생각해 보는 과정임을, 대학에서의 공부가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는 경험임을 깨닫게 했다면, 성적표에 쓰인 학점 이상을 가르친 것이다.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있으면 참 존경하고 배울만한 어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매번 여러 가지 읽을만한 자료들을 올려주시고, 하나하나 친절하게 피드백을 주시는 모습이 정말 좋습니다”, “학생들에게 아낌없는 격려를 해주시고 학생들을 위한 수업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학기, 누군가가 남긴 감동적인 중간평가를 떠올리며 학생들이 쓴 답안에 피드백을 하고 있다. 중간고사가 지나면 이번 학기도 중반을 넘어서게 된다. 마지막까지 학생들과 즐겁게 완주하기 위해 새삼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신발 끈을 맨다.

 

신희선(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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