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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스스로 혁신 의지 있었나
대학 스스로 혁신 의지 있었나
  • 김정인
  • 승인 2021.05.18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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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사 연구의 길을 일구며

2002년, 박사학위를 마친 직후 한국역사연구회의 몫인 학술단체협의회 학술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학술단체가 돌아가면서 맡는 자리였기에 크게 고민하지 않고 응낙했다. 이 선택은 나의 사회적 삶과 공부에 예상치 못한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대학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촉매제가 됐다.

열정적이고 부지런한 조희연 상임대표와 함께 학술단체협의회 활동을 하며 참 많은 대학의 교수, 시간강사, 대학원생을 만났다. 그때 듣고 목격한 사립대학의 부조리와 비리는 현실이라기엔 믿기지 않을 만큼 심각했고 충격적이었다. ‘사학비리’라는 단어가 ‘재벌’처럼 한국에만 있다는 탄식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대학이 이 지경에 이른 데는 분명 역사적 뿌리가 있을 것으로 생각해 대학사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전 대학사 연구가 전무한 가운데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는 데 많은 시간과 품이 들었다. 그렇게 흘려보낸 1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두어 편의 대학사 관련 글도 쓰면서 대학사를 바라보는 안목을 다듬고 정리할 수 있었다. 장고 끝에 2018년, 한국 현대 대학사를 담은 『대학과 권력』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는 오늘날 대학을 움직이는 권력이 무엇일까를 들여다보았다. 먼저 대학교육에서 사립대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고 일찍부터 사학비리가 사회문제화됐던 한국 대학의 특질에 주목하면서 사학 주도의 대학 권력이 1950년대에 형성됐다는 점을 규명했다. 

둘째, 정부가 대학 평가를 기반으로 차등적으로 재정을 지원하면서 대학의 자율성이 위협받는 현실에 주목해 국가권력이 대학교육에 본격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때가 1960년대 후반 박정희 정부 시절이라는 것을 밝혔다.

셋째, 오늘날 대학교육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시장권력이 198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대학교육에 진출해 작동하는 방식을 살폈다. 결론은 암울했다. 대학의 자치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은 채 대학권력이 기꺼이 국가권력에 종속되고 시장권력에 스스로를 내맡기는 오늘날 대학의 자화상은 해방 이후 대학이 걸어온 궤적의 결과였다.

한 권의 책으로 대학사 연구의 성과를 내놓긴 했지만, 연구 기간 내내 매일을 대학인으로 살아가고 있었으니 대학의 과거에 좌절하고 현실에 분노할 때는 작업이 벅차고 힘들었다. 그렇게 대학-국가-시장, 세 권력의 카르텔을 깨기는 난망하니 대학 스스로 자치와 개혁을 모색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절망하고 있던 무렵이었다. 

‘대학에 미래는 있는가?’라는 자조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있던 2015년 여름, 부산대에서 고현철 교수가 총장 직선제와 대학 민주화를 염원하는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일어났다. 나와 같은 연배의 민주화 세대인 그의 죽음은 큰 충격이었다. 그가 죽음을 선택한 이유를 곱씹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 지금 대학에서 총장을 비롯한 여러 보직을 맡고 있는 민주화 세대가 대학-국가-시장 권력에 끌려다니며 대학의 자율화와 민주화를 거스르는 이율배반적인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현실에 절망한 것은 아닐까. 이렇게 부조리한 대학 현실에서 어떤 선택도 하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는 시간을 견디며 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2021년, 지금 대학에 닥쳐오는 시련의 강도는 점점 거세지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여유도 갖지 못한 채 코로나 사태까지 덮치면서 대학은 어느 때보다 위험한 실험대에 오르고 말았다. 대학사를 연구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대학 스스로 자율과 혁신의 의지를 제대로 가진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오늘날 대학에 무엇보다 절실한 자율과 혁신의 역량을 키워 오지 못한 역사가 지금 부메랑이 돼 대학을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대학사를 연구하면서 일말의 희망적 단서를 발견하지 못한 것은 20대 청춘 이후 줄곧 대학을 삶과 공부의 터전으로 삼아온 나의 불행이자 위기 앞에 무기력하기만 한 오늘의 대학의 불행이다. 과거의 우물 속에서 길어올 물이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김정인 춘천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현재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으로 있으며, 한국 민주주의 역사와 한국 대학사를 연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 『독립을 꿈꾸는 민주주의』, 『대학과 권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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