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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 조준태
  • 승인 2021.05.21 0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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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은 이렇게』 마이클 왈저 지음 | 박수형 옮김 | 후마니타스 | 232쪽

 

사적 영역으로 정치 외연 넓어졌지만 내포 흐려져
개인적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공적 근거 마련해야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이 말은 1960년대 페미니즘에서 발생했다. 개인이 사적 영역에서 경험한 억압과 차별이 공적 영역의 구조에서 연유하며, 그리하여 개인적 경험 또한 정치적으로 다뤄질 수 있음을 역설한다. 60여 년이 지난 지금, 공적 영역은 나날이 넓어져 온갖 개인적 문제를 정치적 논의로 결부시킨다. 그야말로 개인적인 것이 정치성을 띠게 된 것이다.

일례로 청와대 국민청원을 들 수 있겠다. 해당 사이트에는 분야와 입장이 천차만별인 개인적 문제의식이 쏟아진다. 부상된 문제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으며 대체로 사람들을 설득하고자 한다. 이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본인을 인증해 각자 하나씩 갖는 동의권을 행사한다. 한 사람이 제시한 논제가 여러 사람의 지지를 얻어 힘을 얻는 이 과정은 정치라 부를 만한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보인다. 근거가 빈약하거나 아예 없는 주장이 의식할만한 지지를 얻어 기어코 정치인의 입에 오르는 현상이다. 정치적 방향에 관한 판단은 차치한다. 민주주의의 장점 중 하나는 여러 이야기를 다룰 수 있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근거의 부족함이다. 이것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으며 태도의 불성실함을 드러낸다. 상대를 설득할 마음이 없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공적 영역에 걸맞는 태도가 아니다. 주장을 개인, 그리고 몇몇 열광적 지지자 안에 가두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것은 정치의 외연을 넓혔지만 그 내포를 흐리게 만들었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은 그 한계를 조정할 수는 있겠지만 엄연히 구분돼야 한다. 우리는 정치와 정치의 탈을 쓴 가당찮은 움직임을 가려내야겠다.

개인적 감정은 사회적 감정보다 덜 중요

『운동은 이렇게』는 이 지점에서 유용하다. 정치 이론가 마이클 왈저는 이 책에서 정치운동의 세세한 방법과 함께 그것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우리가 거리로 나가 목소리를 높이고, 지지층을 결집시켜 집단을 조직하지 않더라도 이 책이 제언하는 올바르고 효과적인 정치의 모습은 무엇이 정치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 판단하는 것을 돕는다.

무엇을 정치라고 할 수 있을까. 왈저는 우리가 “사적인 이유와 함께 공적인 근거를 가질 때, 그리고 우리의 행동이 어떤 효과를 미칠지,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관점에서도 고려할 수 있을 때, 정치적 인간이 된다”고 설명한다. 개인적 욕심이나 감정에 휘둘리는 등 사적인 이유에만 기대선 정치라고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왈저에 따르면 개인적 감정은 “함께 행동하는 이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사회적 감정보다 중요하지 않다.”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는 일도 하나의 기준이 된다. 정치가 되려면 다른 사람의 관점을 고려해 공익을 따지고 이를 조율하는 공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공적 영역 안에 기준을 세우는 일도 중요하다. 판단의 준거가 될 잣대를 만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또한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 갈등의 한복판에서도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기준을 우리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이것은 곧 운동과 정치가 목표로 해야 할 비전이 된다.

미국의 정치 이론가 마이클 왈저 사진=위키피디아

 

왈저는 현대 민주주의에서 정당의 역할을 “특정한 이익 내지 이념을 대표하는 후보를 시민-유권자에게 제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연대와 헌신으로 뭉친 안정된 조직을 배경으로 신뢰할 만한 입장을 제시하는 후보가 민주주의에는 필요하다. 만약 이런 후보를 낼 수 없다면 “선거는 정치적 의미를 상실하여 홍보맨들의 경연장으로 전락”한다고 그는 진단한다.

사적인 이야기를 주워섬기는 몇몇 정치인의 모습이 눈을 스친다. 사적인 것만으로는 정치가 될 수 없다. 민주주의와 정치에는 지금보다 확실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안타깝게도 시간은 많지 않다. 이미 세상 곳곳에서 민주주의는 도전받고 있다. 늦기 전에 더 많은 목소리를 더 세련된 근거로 다듬어 더 바른 조직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정치적 좌파의 불꽃은 끊임없이 타오르지 않는다. 불꽃은 확 타오르고, 젊음은 소비된다. 그 후 남은 것은 정치적 철수의 잿더미, 광신적이고 파당적인 변절, 개인적인 기회주의이다.” 왈저의 경고가 폐부를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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