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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의 연구, 책무, 그리고 생계
역사가의 연구, 책무, 그리고 생계
  • 현수진
  • 승인 2021.05.20 1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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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학부 시절, 역사란 단순한 과거의 사실이 아니라 특정 역사가의 시선에서 건져 올린 다종다양한 사료의 직조(織造)라는 점을 깨달아나간 순간들은 향후 인생의 행로를 결정했다. 나는 내가 알던 역사적 사실이 한 시대의 영향을 받는 역사가의 해석에 의해 구축된 것이라는 점, 그러한 사실과 해석이 시대와 연구자가 바뀜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는 점, 그럼에도 사료에 천착해 사실을 밝혀내기를 갈구한다는 점에서 역사학과 역사가라는 직업에 큰 매력을 느꼈다.

그렇게 2014년에 대학원에 진학해 역사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선행 연구에서 기존의 역사적 틀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확인하고 비평하는 일, 사료의 바다를 항해하며 기존과는 다른 역사적 사실이나 해석을 발견하는 일, 이를 위해 한문과 외국어 등 기초 소양을 익히는 일, 나도 한 사람의 직공(織工)이 되어 사료의 파편을 엮어 글로 풀어내는 일은 무척 즐거웠다. 물론 사료나 연구와 씨름하는 시간은 상당히 지난하고 고통스러웠다. 그 결과를 글로 뱉어내는 시간은 자책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그 괴로움의 끝에서 내가 연구하는 시공간의, 사회의, 사람들의 ‘역사적’ 특성을 새로 발견해냈다는 생각이 들 때의 짜릿함은 공부를 지속하는 강력한 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역사 연구의 즐거움만을 좇기는 어려웠다. 그 당시 나를 괴롭히던 질문은 두 가지였다. 2015년 10월에 촉발된 역사 교과서 국정화 사태와 2016년 10월 이후 본격화된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을 겪으며 역사가의 사회적 책무가 무엇인지 고민했다. 연구실에 앉아 책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을 것 같았다. 누군가는 묵묵히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학자의 소임이라고 조언했지만, 머리로 이해할지언정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이것만큼, 좀 더 솔직히 말해보면 이것보다 더 고민스러웠던 건 생계 문제였다. 나는 역사가이자 생활인이었고, 급작스레 어려워진 가정을 지탱해야 했다. 박사과정까지는 장학금으로 생계를 유지했지만 수료 이후의 삶은 불투명했다. 학계를 둘러싼 환경은 시시각각 급변했다. 2019년 8월 강사법이 시행되었고, 강사법의 본래 취지는 이 기회를 활용해 시간강사 구조조정을 꾀하려는 대학에 의해 일정 부분 왜곡되었다. 꼭 강사법 때문이라고만은 할 수 없겠지만, 박사학위 없는 수료 신분으로는 강의 자리를 얻기 어렵다. 천천히, 깊이 고민하여 박사학위논문을 쓰는 일은 이제 요원해 보인다. 어떻게든 박사학위를 빨리 받아야 생활할 수 있다는 진심 어린 조언이 가득하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와 선후배 동료들이 모두 안고 있는 문제였다.

이런 질문을 어떻게든 해결해보고자 2017년 겨울부터 신진 역사 연구자 모임인 만인만색연구자네트워크 미디어팀에서 활동했다. 역사 팟캐스트와 영상물을 제작했고, 저서 『달콤 살벌한 한·중 관계사』(서해문집, 2020)와 『만인만색 역사공작단』(서해문집, 2021)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를 반영한 양질의 역사콘텐츠를 제작해 시민사회에 내놓음으로써 전문 역사가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보려고 했다. 교과서 지식을 가공한 것 이상의 역사콘텐츠를 찾아보기 어려운 시민사회에 역사란 사료에 근거하되 다양한 시선에서 재해석되는 것임을 말하고 싶었고, 그것이 지금의 내 책무라고 생각했다. 눈에 보이는 성과도 얻었다. 팟캐스트 ‘역사공작단’의 최근 1년간 조회 수는 약 335만 회에 달한다. 공저 『만인만색 역사공작단』은 출간 4개월 만에 2쇄를 찍었고 3쇄를 앞두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활동으로 역사가로서의 삶의 문제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얻은 것은 아니다. 젊은 나이의 신진 연구자임에도 일모도원(日暮途遠)의 조급함이 나를 덮친다. 읽어야 할 책과 사료는 방대하고, 갈고닦아야 할 지식과 언어, 글쓰기는 끝없이 남아있다. 여기에서 기원한 불안감은 설익은 지식을 섣불리 세상에 내놓는다는 자책으로 이어진다. 대학 강단을 넘어 시민사회에서 전문 역사가가 생계를 유지할 공간을 만들고자 했지만 표면적인 성과에 비해 실질적으로 얻는 수입이 적어 여전히 생계를 위한 별도의 활동을 영위해야 한다. 나와 내 동료가 서 있는 상황이 학계의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했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난 다음에는, 사실 내 역량과 노력이 부족해서 핑계 대는 것은 아닌지 홀로 되씹는다. 앞으로도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쉽게 얻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내가 어떤 역사가이자 인간이 되고 싶은지,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사료에 천착하고자 한다.

 

 

 

현수진
성균관대 사학과 박사수료

성균관대 사학과에서 「고려시대 관인상의 형성과 변화」라는 제목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신진 역사연구자 모임인 ‘만인만색연구자네트워크’의 미디어팀 팀장을 역임했고, 『달콤 살벌한 한·중 관계사』(서해문집, 2020)와 『만인만색 역사공작단』(서해문집, 2021)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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