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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연구, 교육, 농성
[교수논평] 연구, 교육, 농성
  • 최갑수 / 서울대
  • 승인 2004.11.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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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갑수 / 서울대 서양사학과 ©
우리 대학은 고작해야 반세기를 겨우 넘는 짧은 역사를 지녔지만, 우리 사회의 격변을 반영하듯 그간 엄청난 변모를 경험해왔다. 두드러진 현상 가운데 하나는 대학교수의 역할 변화이다. 필자가 대학 강단에 처음 섰던 1980년대 초 만해도 대학교수의 주업은 교육이었다. 주당 강의시간이 10시간이 되지 않는 경우는 보직교수가 아니라면 전무했고, 20시간이 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이는 해방 이후 고급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단기간에 각계의 전문 인력을 양산해야 했던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시기에도 연구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가르치기 위한 것에 그치기 십상이었고, 그야말로 전문적인 연구자는 많을 수가 없었다.

 

이 어려운 시기에 대학교수를 지탱해 준 것은 지식인으로서의 면모였다. 엄혹한 독재라는 시대적 상황이 그렇게 만들기도 했지만, 역시 교육자로서의 역할이 큰 작용을 했을 것이다. 당시 대학생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고, 사회에 대해 강한 책임의식을 가졌던 이들과의 만남에서 교수들은 현실에 대해 고민하는 법을 배웠음직하다. ‘敎學相長’ 이라고나 할까. 그 가운데 일부는 ‘현실’에 참여했고, 도덕적 권위도 갖출 수 있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다. 오늘날 우리의 대학교수들은 전문적인 연구자가 되기를, 교육이나 연구의 여건에 관계없이 모두 그렇게 되기를 강요받고 있다. 대학은 이미 대중교육의 장이 돼 더 많고 좋은 강의 및 교육을 필요로 함에도 연구능력만을 유독 강조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근대화의 과제를 일정 수준에서 마무리하고 대학에 독자적인 지식생산을 주문하기에 이른 상황변화와 함께, 교수사회를 통제하려는 사학재단, 교육당국, 더 나아가 재계를 비롯한 기득권 집단의 속내도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교수들의 연구역량을 외쳐대는 시대적 추세를 탓할 생각은 없다. 그것이 참으로 우리가 바라는 자생적인 학문생산기반의 구축으로 이어진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대학의 현실은 그런 바람을 운위하기에는 너무도 비참하다. 학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교수 1인당 학생수, 교육재정, 시간강사, 대학의 운영과 비리, 시설과 연구 인프라 등에서 대부분이 열악하기 짝이 없다. 더욱 한심한 것은 교육당국의 대응이다. 국가발전전략의 핵심으로서 대학의 발전을 사고해야 할 당국이 내놓는 정책들을 보노라면 과연 그런 의지가 있는 것인지, 경우에 따라서는 사학재단의 하수인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드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연구의 압력은 거의 전적으로 교수의 개인적 부담으로 떨어지고 있다. ‘노동의 강도’가 높아지고 교육이 소홀한 대접을 받고 학생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가운데 교수사회는 파편화되고 있다. 자신만의 살 길을 찾는 가운데 연구 성과는 현실적합성을 상실해가고 아무도 그것을 읽지도, 보지도 않는다. 학문의 ‘소외’가 일어나는 것이다. 학문의 근대화(연구논문의 양적 증가)와 식민화(미국학문에의 종속)가 동시에 일어나고, 전문가는 많지만 지식인은 찾아보기 어려운 역설적인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대학은 사회재생산장치로서의 성격을 강화하고 비판적 성찰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면서 사회적 영향력을 급속하게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반지성주의’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학이 연구능력, 교육적 역할, 성찰적 기능을 결합시킬 수 있는 공동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그런데 사회는 경제적 이해관계라는 동력이 있어 스스로 자신의 보존을 위한 제도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대학은 그 자체로는 그런 능력을 결여하고 있다. 대학과 학문의 발전을 위해 대학에 제대로 된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주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지난 2001년 6백17명의 교수들이 발기인이 돼 결성한 ‘교수노조’를 중심으로 교수단체들이 오는 10일까지 광화문 한 복판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을 벌이는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사립학교법의 민주적 개정을 비롯한 교육개혁과 대학민주화를 위해, 무엇보다 대학의 공동체성과 지식인의 위상 회복을 위해, 함께 매서운 가을바람에 맞서기를 동료교수들께 감히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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