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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성'을 지키는 교육
'주체성'을 지키는 교육
  • 최철규 기자
  • 승인 2004.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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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 교육 현실의 근원을 탐색하는 두 권의 책

교육 관련 이슈는 우리 사회의 전체 지형도를 주조할 만큼 큰 파급력을 지니고 있다. 고교등급제를 둘러싼 논란은 강남과 비강남으로 포착되는 ‘신지역주의’의 분열상을 제시하기도 하며, 사학법 개정 문제는 보수와 진보의 정치권 싸움으로 퍼져나가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교육=입시제도’라는 공식의 틀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이런 와중에 교육현실에 대한 진단과 해법을 사회학과 철학적 고찰에서 전개하는 두 권의 책이 발간돼 눈길을 끈다.

‘위장된 학교’(인물과 사상사 刊)와 ‘학벌사회’(한길사 刊)는 교육에서의 ‘개인’ 문제를 현실 진단과 해법의 출발점으로 삼는 공통점을 지닌다. 다만, 전자가 ‘교육 패러다임’을 통해 그리고 후자는 ‘학벌’이라는 개념을 통해 ‘개인’의 문제를 풀어나간다는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현재 한국 교육의 패러다임은 ‘공교육 부실’이 새겨진 면죄부를 쥔 사교육 광풍과 교육의 세계화라는 묵계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위장된 학교’의 저자는 승자와 패자로 나뉘는 입시 경쟁을 통해 명문대 인기학과 진학이 지상 목표인 교육계의 현실에서 모두에게 공평한 공교육이란 애초부터 허울에 불과하다고 질타한다.

또한 외국박사학위와 서울대로 이어지는 교육의 위계 구조에서 ‘최고’를 이야기하는 한국 교육의 초라한 현실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즉 외국의 평균 수준에 미치지도 못하는 외국학위와 서울대만을 앞에 두고 우물 안 개구리식 ‘최고 담론’에 함몰돼 있다는 것.

저자는 한국 교육의 근본적인 한계를 서구 근대성의 핵심인 개인주의적 인간관의 부재에서 찾고 있다. 한국 교육에는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존재로서의 개인이 아니라, 끊임없는 감시와 통제 및 처벌을 통해 집단주의적 규범을 주입해야 할 훈육대상으로서의 개인이 존재한다는 것. 근대성 지향이라는 사회적 위장망을 뒤집어 쓴 채, 정작 근대적 개인주의의 미덕을 외면하는 한국 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는 한 교육의 장래는 없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위장된 학교’가 훈육 대상이 되는 학생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 ‘학벌사회’는 스스로 주체성을 포기하는 개인들에 주목하면서, 개인의 주체성에 대한 저자의 철학적 고민과 일부 학벌에 의해 권력이 독점되고 지배되는 현상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최고의 학벌을 얻기 위해 인류대학 진학만을 목표로 삼는 만연된 사회풍조를 ‘학벌사회’라 한다면, 학벌의식이란 “본질적으로 주체인 개인이, 그리하여 사회적 존재를 확보하기 위해서 불행하게도 자기의 주체성을 스스로 양도하는 것”이다. 개별적 주체가 학벌이라는 집합적 실체의 속성으로 함몰되는 것이야말로 학벌이 지배하는 학벌사회의 가장 큰 비극이다.

따라서 저자는 학벌서열의 타파야말로 교육 문제의 근본 해결책이라 보고, ‘학교평준화 정책’, ‘권력의 제도적 분산’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학벌서열의 정점에 있는 ’서울대폐지론‘이라는 극약처방까지 주저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 저자는 학벌로 인한 권력의 독점과 사회적 불평등, 사회적 주체성의 문제, 교육의 파탄, 국가경쟁력의 위기, 교육의 이념과 학교 평준화 등의 제 문제를 꼼꼼히 살펴보고 학벌이라는 왜곡된 사회적 공동 주체성에 맞서 학벌 사회에서 학벌 없는 사회의 당위성을 제시하고 있다.

최철규 기자 hisfuf@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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