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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여성화 하는데 왜 여전히 ‘브로그래머’일까”
“AI는 여성화 하는데 왜 여전히 ‘브로그래머’일까”
  • 김재호
  • 승인 2021.05.12 1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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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국제 심포지엄 개최
12일, ‘페미니스트 관점으로 본 코로나 시대 디지털 교육의 방향’ 논의

젠더 편향 가득한 디지털 세계
사회 구조적 차원의 여성 연대가 필요
 

지난 12일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은 오전 10시부터 온‧오프라인 하이브리드 국제심포지엄 ‘페미니스트 관점으로 본 코로나 시대 디지털 교육의 방향’을 개최했다. 나윤경 원장은 “어떻게 보면 코로나19가 만들어 낸 ‘피해의 격차’ 중 재난의 젠더 격차는 매우 심각하다”라면서 “코로나19가 가져온 경제를 비롯한 다양한 시스템의 붕괴를 재건하려 할 때, 기존의 시스템이 망각한 ‘조용한 학살’이라는 젠더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디지털 교육 환경에서 젠더 시각의 통합이 더욱 요구된다는 뜻이다. 

윤형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평등문화교육연구센터 부연구위원은 「젠더-몸으로 이해하는 온라인 교육」 발표에서 디지털 교육으로 인해 피교육자들이 반수면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장기간의 단순 운전으로 인해 반쯤 눈이 감기는 것처럼 디지털 경험에 종속돼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하루종일 모니터 앞에서 교육을 받는 학생들이나 재택 근무를 하는 직장인들은 여전히 낯설고 어색한 디지털 경험을 지속해야 한다. 윤 부연구위원은 “디지털 기술 매개로 하는 우리의 몸짓은 결코 반복될 수도 추억이 물건에 깃들 수 없다”라면서 우리 몸과 사람들, 심지어 주변 환경의 물건들과의 상호작용을 강조했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개최한 국제심포지엄에서 발표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사진=심포지엄 동영상 캡처

특히 윤 부연구위원은 인공지능 챗봇 ‘이루다’의 성차별적인 혐오발언 사건을 예로 들며 젠더 편향을 지적했다. 그는 “인공지능의 여성화는 결코 우연이 아니라 기존의 젠더 기반 성폭력 문화 및 젠더 불평등 체제가 반복되는 현상”을 비판했다. 과학기술이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상태로 발전해온 것이다. 토론에서 윤 부연구위원은 인공지능 음성서비스는 대부분 여성의 목소리이지만 비대면 인공지능 의료서비스에서 남성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상황을 젠더 편향의 사례로 언급했다. 

윤 부연구위원은 평등하고 안전한 디지털 교육을 위해 △기술이 아닌 젠더-몸-경험으로 소통하기 △‘텅 빈 공간’ 메타포들의 한계와 디지털 중독 위험성 직시하기 △디지털 성폭력, 여성 신체 상품화, 혐오 조장 온라인 문화로부터 거리두기를 제안했다. 

‘텅 빈 공간’ 메타포들이란 정보고속‘도로’, 사이버‘공간’, 싸이‘월드’, 카톡‘방’ 등에서 정보통신 기술을 이해하는 방식을 말한다. 실제로 도로, 공간, 월드, 방은 없지만 이해와 소통을 위해 이렇게 표현한다. 윤 부연구위원은 “메타포에 익숙해지면 기술에 의해 만들어진 경험이 우리 몸과 별개로 주어진 공간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라며 공간적 메타포의 한계를 지적했다.   

왼쪽부터 조혜림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국제교류센터장, 임소연 숙명여대 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윤형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평등문화교육연구센터 부연구위원. 여성들을 위한 멘토링과 교육, 연대 등도 디지털화 하고 있다. 12일 개최된 국제심포지엄의 토론 장면. 사진=심포지엄 동영상 캡처

과학기술, 성인지 감수성 부족한 상태로 발전

로라 비에르마 미국 조지아대 교수(평생교육·행정·정책학과)는 「펨토링 : 페미니즘 관점의 온라인 상호호혜적 성장」을 발표했다. 비에르마 교수는 페미니스트 기반의 멘토링인 ‘펨토링’을 설명했다. 펨토링은 정의, 평등, 다양성, 포용성을 추구한다. 구체적 방법은 경계 없고 평등주의적인 e-멘토링이다. 

비에르마 교수는 미국의 여성 해군을 대상으로 한 e-멘토링 사례 연구를 설명했다. 과거에는 여성 해군들이 남성 멘토와 직접 대면 등 전통적 방식으로 멘토링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펨토링 차원의 e-멘토링으로 다른 여성 멘토들을 만날 수 있게 됐다. 비에르마 교수는 “여성 해군은 자신의 커리어를 전략적으로 개발하며 젠더화된 조직 구조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라며 “군인으로서 일과 생활의 균형, 가족과의 관계 등에 대해 여러 멘토들에 대해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비에르마 교수는 ‘BIE 코칭(Bug-In-Ear)’ 사례를 들었다. 이 방식은 코치가 웹캠으로 실시간으로 인터넷 영상을 관찰하며 조언해주는 것이다. 피코치자만 블루투스 헤드셋으로 코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즉각적인 피드백과 행동 변화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그는 향후 도전 과제로 “말로 표현되지 않는 사회·환경적 신호를 최소화 하는 것”이라며 “멘티가 말을 잘 하지 못할 때 대화의 미묘한 부분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회·환경적 신호는 눈빛 등 비언어적인 것들이다. 비에르마 교수는 줌 회의 때도 모니터 안의 사람이 아니라 카메라를 응시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평등주의적인 e-멘토링으로 젠더 격차 해소

임소연 숙명여자대 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는 「디지털 어펙트: 디지털 젠더 격차 해소를 위한 여성 IT 교육 방안」을 발표했다. 임 연구교수는 디지털 젠더격차의 세 층위를 설명했다. 첫째 접근성(IT 디바이스와 인터넷 활용 시간), 둘째 기술, 셋째 리더십이다.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여성들의 인터넷 활용 시간은 남성들과 비슷해지고 있다. 하지만 IT·컴퓨터 분야 여성인력 문제와 기술 개발과 리더십에서 남녀 격차 해소가 있다는 연구는 부족한 현실이다. 

임 연구교수는 디지털 젠더격차의 역설을 설명했다. 첫 번째 역설은 대학교 재학생 중 여성비율 현황에서 나타난다. 공학 분야 여성비율은 24.4%(9만4천301명)이고, 자연계는 52.1%(8만8천449명)이다. 두 번째 역설은 IT·컴퓨터 분야 성비균형이다. IT·컴퓨터 분야 성비균형은 사회의 성평등 수준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17년도 코딩기술 플랫폼 해커랭크 자료에 따르면, 젠더 불평등지수 상위 5위에 속하는 노르웨이, 스위스, 호주, 아일랜드, 독일은 IT·컴퓨터 분야 여성비중이 높지 않다. 인도, 아랍에미리트, 루마니아, 중국, 스리랑카 등이 상위에 올라와 있다. 

임 연구교수는 실리콘밸리의 프로그래머를 ‘브로그래머’로 부르는 현상을 지적했다. 또한 IT·컴퓨터 분야에서 나타나는 남성 중심의 ‘브로 컬쳐’를 언급했다. 임 연구교수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여성과 기술적 능력은 양립가능하다”는 점을 제안했다. 2016년 설립된 IT업계 페미니스트 모임 ‘테크 페미’나 여성들을 위한 IT 커뮤니티 ‘XXIT’ 등은 여성 중심의 상징과 담론을 이끄어가고 있다. 그는 “여성들이 디지털 기술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즐거움을 느끼며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안전한 공동체 및 여성 연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여성과 남성, IT·컴퓨터 기술력과 리더십 차이나

리나 구룽 네팔 카트만두대 연구원(교육학과)은 「코로나 시대의 디지털 격차 현황 : 네팔 사례 중심으로」를 통해 네팔의 현실을 드러냈다. 네팔 정부는 코로나19의 2차 대유행으로 일부 지역에 봉쇄 조치를 내렸다. 네팔 인구 약 2천967만 명 중 5분의 4는 농촌에 거주한다. 봉쇄 조치로 인해 8백만 명 이상의 학생이 영향을 받았다. 특히 빈곤 계층이 디지털 교육에서 기기부족과 인터넷 보급 등 때문에 소외됐다.  

네팔에서 여성들은 팬데믹의 영향으로 △실직 △재정 부담 △가정폭력 △아동 결혼 △정서적 안정 △사회적 배제 △비효율적 메커니즘에 놓여 있다. 리나 구룽 연구원은 “코로나19는 디지털 격차를 분명하게 노출시켰다”라며 “제한된 사람들에게만 제공되는 학습과 경제적 기회”를 지적했다. 

그는 두 가지 사례를 제시했다. 네팔에서 첫 번째 코로나19 양성 판정 환자는 남성이었는데 별 사회적 비난 없이 회복하도록 했다. 하지만 두 번째 코로나19 환자가 19세 여성으로 드러나자 사회적 낙인이 찍혔다고 한다. 격리 등 모든 방역 지침을 지켰다고 항변에도 비난을 받은 것이다. 한편, 유엔 주최 하에 진행된 ‘포스트 팬데믹 세계 질서’라는 웨비나에서 연사들은 전부 남성들이었다. 마지막에 여성 단체의 주장으로 1명이 추가된 일이 있다. 여성 단체는 웨비나에 참석 가능한 여성들의 목록을 만들어 제안하기도 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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