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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조사, 무엇이 문제인가
발굴조사, 무엇이 문제인가
  • 이민선 기자
  • 승인 2004.11.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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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법인의 난립…문화재청 '교통정리' 해야


최근 유적 발굴장에 ‘보이지 않는 손’이 유입되면서 고고학계를 비롯한 발굴 관련 단체들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유적발굴이 짭짤한 수익을 올려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소문이 돌자 너도나도 발굴에 뛰어 들면서 유적 발굴장 ‘군기’를 흩트리고 있기 때문이다. 순수 학문적인 의도에서 실시하는 연구발굴의 경우 잡음이 나오지 않고 있지만, 댐·도로 공사 등의 대규모 공사로 인한 매장문화재 손실을 막는 구제발굴에서 탈이 생기고 있다. 부실 발굴, 졸속 보고서 남발은 물론 발굴 수입 전용 등 갖가지 문제점이 봇물 쏟아지듯이 터져 나오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개발붐 타고 발굴전문법인 난립

1990년대 이후 전국적으로 택지 재개발과 건설열풍이 불면서 구제발굴 수요는 급속히 늘어났다. 문화재청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1991년 구제발굴수는 모두 30건이었으나, 1995년 97건, 2000년 2백46건, 2003년 6백2건으로 늘어났다. 13년 사이에 20배 이상 증가할 정도로 구제발굴 수요가 증가한 것이다.


하지만 폭발적으로 늘어난 구제발굴 수요는, 직업적으로 유적발굴을 전문으로 하는 발굴전문법인 차지가 됐다. 2004년 상반기 경우 총 5백4건의 발굴 건수 중 79%에 해당하는 3백90건(발굴비 총액 5백83억원)의 발굴조사를 발굴전문법인이 담당했다. 전통적으로 유적발굴을 담당하던 대학기관은 독점적 지위에서 밀려났다. 2004년 11월 현재 발굴전문법인 수는 모두 24개 기관이다.

하지만 발굴전문법인 수는 늘어났으나 매장문화재 발굴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대해 이남규 한신대 교수(고고학과)는 “개발수요와 발굴 공급역량간의 불균형이라는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다”라고 풀이한다.

지난 달 경남 김해시 ‘가야의 숲’ 조성공사에 앞서 진행된 발굴조사가 대표적인 사례. 경남 김해시로부터 옛 김해공설운동장 터 발굴 수주를 받은 ㄷ발굴전문법인은 지난 7월부터 발굴에 들어갔었다. 두 차례나 발굴완료신고서 제출을 늦추는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9월 말 발굴을 ‘완료’했다고 생각하고 수습에 들어갔다. 그러나 조사하지 않고 방치했던 목관묘에서 칠기, 와질토기, 철기 등 유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주위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하지만 ㄷ발굴전문법인은 유물이 나온 지 이틀 후 야밤을 이용해 발굴장을 흙으로 덮어버렸다.

▲한 발굴전문법인이 아직 조사가 덜 끝난 발굴현장을 포크레인을 동원, 흙으로 덮고 있다. © 이상길 경남대 교수

이 과정을 처음부터 지켜봐왔던 이 아무개 교수는 “최소한의 지표면에 드러난 유구는 생토암반까지 조사하는 것이 발굴의 원칙이나 조사자가 의무를 다하지 않고 매몰했다”라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ㅇ대의 어느 교수 역시 “쉽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제대로 발굴을 했다면 굳이 야밤에 발굴장을 흙으로 덮을 필요가 있었겠느냐”라고 발굴능력에 의구심을 표했다. 이 아무개 교수는 “이런 문제는 ㄷ발굴전문법인만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전제하고, “24개 발굴전문법인 중 F학점을 받을 기관이 수두룩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능력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채 발굴에 뛰어드는 전문발굴법인들의 도덕성을 탓할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매장문화재 발굴은 이미 하나의 ‘사업’이 됐고, 발굴전문법인은 ‘기업’이 됐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비난의 화살은 아무런 원칙도 없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장’이 움직이도록 내팽개치는 문화재청에 집중돼야 한다는, 고고학계의 주장에 수긍이 간다. 이백규 한국고고학회 회장(경북대)은 “시장논리가 적용되는 것도 문제지만 문화재청이 부실한 게 더욱 문제다”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발굴전문법인 허가 단계부터가 문제라는 것. 발굴전문법인의 허가를 담당하는 문화재청 매장문화재과 관계자에 따르면, “책임조사원 1명, 조사원 2~3명, 조사보조원 그리고 수장시설 및 보존처리시설 등의 발굴시설이 있다면 발굴 1건 정도는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모두 허가를 내주고 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관계자는 기준이 다소 미흡하더라도 크게 문제될 게 없다는 투다. 어차피 발굴허가를 내줄 때 문화재위원회가 각 법인들의 속성과 능력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말썽을 피우는’ 법인들은 허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고학계에서는 이 기준이 부당하다고 말한다. 신경철 부산대 교수(고고학과)는 “이러한 기준은 문화유적의 발굴조사를 돈벌이 수단으로 목적으로 하는 자도 너무나 쉽게 발굴조사를 할 수 있는 요건이다”라고 꼬집는다.

학회와 함께 제도개혁위원회 조직 필요

이와 함께 문화재청이 마련한 ‘2년 내 발굴조사보고서 간행의무’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02년부터 문화재청은 유적발굴 완료 뒤 2년 이내에 발굴조사보고서를 간행을 의무화하고, 이를 2건 이상 어길시 발굴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상습적으로 발굴 보고서 발간을 연기하는 악습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모든 발굴에 대한 획일적인 기준 적용을 함으로써 문화재청이 졸속 보고서 양산을 부추기고 있는 꼴이 됐다.


이남규 한신대 교수는 “문화재청이 고고학회와 같이 제도개혁위원회 등을 조직해서 직면한 제도적 문제를 해결하고, 중장기적 로드맵을 가지고 매장문화재 관리하는 데 협조적이어야 한다”라고 대책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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