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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성 교수 주장한 '불문헌법'근거 반영한 듯
전기성 교수 주장한 '불문헌법'근거 반영한 듯
  • 손혁기 기자
  • 승인 2004.11.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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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 헌법재판소 결정의 이론적 근거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행정수도이전 특별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것과 관련해 정치적 파장만큼, 법학계 내부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 법학자들은 한결같이 “외국에서도 수도이전과 관련한 판례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답했다. 법적 경험보다는 논리에 근거한 판단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학계는 성문헌법체계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 국가에서 관습헌법에 위배한 것으로 위헌 결정을 내린 것도 매우 이례적이라고 보고 있다. 이번 결정에 대한 학계의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헌재가 이번 결정을 내리기까지 수십 명의 연구관들이 폭넓은 조사를 하고, 논리를 마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번 결정처럼 중요한 사안일 경우, 국내법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문헌, 외국의 사례도 전면적으로 조사하는 것이 헌재의 관례다. 올해 상반기까지 헌재 연구관을 지냈던 한수웅 홍익대 교수(헌법)는 “(양측의 입장을 취하는)복수의 연구보고서를 작성하는데 이때 영어, 불어, 독어, 일어 4개 국어로 된 모든 자료는 다 소진한다”라고 말했다. 역시 헌재 연구관이었던 신봉기 동아대 교수(행정법)도 “이번 판결에는 연구관이 대대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엄청난 자료가 조사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럼에도 수도이전과 관련해서 헌재가 판례를 찾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는 게 관련 법학자들의 판단이다. 심희기 연세대 교수(법학부)는 “헌재가 관습헌법을 인정한 사례는 조사했겠지만, 수도이전과 관련한 이와 같은 사례는 찾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양영욱 법무부 법무실장도 위헌 결정 이후 열린 국정감사에서 “수도가 서울이라는 관습헌법이 인정된 전례가 없고 외국에서도 일부 헌법에 대한 해석과 관련한 관습헌법만을 인정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이 전기성 한양대 겸임교수(수도이전반대국민연합 입법이사)의 논지다. 전 교수는 헌재판결에 앞서 5월 20일 자유기업원 홈페이지에 올린 ‘새 정부, 국회는 신행정수도법을 전면 재검토할 것을 제안합니다’라는 글에서 “187개국의 헌법 중 85개국 헌법이 수도규정을 두고 있고, 30개 국가는 명문화 하지 않았는데, 이는 헌법 규정 이상으로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프랑스는 헌법 제2조에 수도규정은 없고, 國旗, 國歌, 프랑스어 규정을 두고 있는데 이것은 대통령과 국민 누구도 수도 파리를 다른 도시로 옮길 수 없다는 정서에 공감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 뒤 7월에 같은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김 교수는 구체적으로 “수도를 이전하려면 이전할 도시와 ‘수도의 법적지위, 운영은 법률로 정한다’라는 내용을 성문헌법에 추가하는 헌법개정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 불문헌법의 이론이다”라고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또 수도는 “국가의 최고통치기관과 의회의 소재지로 헌법에 규정돼 있거나 헌법의 지위에 있는 도시”라며, (헌재가) 검토하는데 지침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결론적으로 헌재의 결정은 전 교수의 주장 내용과 상당부분 일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헌재가 결정문에서 관습헌법에 대해 계속성, 항상성, 명료성, 국민적 합의를 전제조건으로 달았지만 결정적인 위헌의 근거를 불문헌법에서 찾은 것, 또 “충청권의 특정지역이 우리나라의 수도라는 조항을 헌법에 개설하는 것에 의하여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헌법은 폐지될 수 있는 것”이라던가, 수도의 기능에 있어 “헌법기관들 중에서도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결정하는 국회와 행정을 통할하며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소재지가 어디인가 하는 것이 수도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요소”라고 판단한 부분도 전 교수의 논지와 일치했다.

전 교수는 “위헌소송에서 관련 자료를 모두 제출했는데, 헌재 결정 이후 주변에서 내 논지를 읽는 것 같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라고 말했다. 헌법에 수도를 명시하지 않은 국가가 수도를 불문헌법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근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것이 불문헌법의 논리”라고 간단히 답했다.

물론 헌재가 이번 판결에서 전 교수의 글만을 인용한 것은 아니다. 57쪽에 달하는 이번 결정문에서 헌재는 관습헌법상 서울이 수도임을 논증하면서, ‘조선왕조실록’, 경국대전, 남조선과도입법의원 속기록, 제헌의회속기록, 서울특별시가 발행한 ‘서울육백년사’, 정신문화연구원이 발행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의 자료를 인용했다고 밝혔다. 

헌재 위헌 결정의 논리적 근거에 대해 헌재는 조사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다고 밝혔다. 김승대 헌법재판소 연구부장은 “굉장히 많은 조사를 했다”라고만 밝히고, 언론보도나 축약본을 보고 감정적으로 평가하지 말고 “결정문 원본을 자세히 읽어 달라”고 주문했다. 법관이 판결로 말하듯이 헌재도 결정문으로 말한다는 입장이다.

청구인단 주장과 헌재의 결정

전기성 교수의 논지 헌법재판소 결정
187개국의 헌법 중 85개국 헌법이 수도규정을 두고 있고, 30개 국가는 명문화 하지 않았는데, 이는 헌법 규정 이상으로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기 때문 서울이 수도라는 점은 제정헌법이 있기 전부터 전통적으로 존재하여온 헌법적 관습. 관습헌법의 요건은 계속성, 항상성, 명료성, 국민적 합의
수도를 이전하려면 이전할 도시와 ‘수도의 법적지위, 운영은 법률로 정한다’라는 내용을 성문헌법에 추가하는 헌법개정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 불문헌법의 이론이다 충청권의 특정지역이 우리나라의 수도라는 조항을 헌법에 개설하는 것에 의하여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헌법은 폐지될 수 있는 것
국가의 최고통치기관과 의회의 소재지로 헌법에 규정돼 있거나 헌법의 지위에 있는 도시 헌법기관들 중에서도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결정하는 국회와 행정을 통할하며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소재지가 어디인가 하는 것이 수도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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