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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헌재판결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
대학정론-헌재판결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
  • 최영진 주간
  • 승인 2004.11.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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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번재판소의 수도이전특별법 위헌판결은 노무현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해왔던 행정수도건설정책을 무산시켰다는 현실정치적 중요성도 있지만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우리사회가 추구하는 민주주의의 원칙과 운용에 관련된 중요한 논의거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 더욱 그러하다.

우선 헌법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헌재결정을 수용하는 방식과 관련된 것이다. 헌재의 위헌결정 이후 드러난 정부의 태도는 “헌재결정의 법적 효력을 부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변함없이 추진할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이러한 입장이 헌재의 결정을 법리적으로 해석해서 기술적으로 우회하는 방식으로 행정수도건설정책을 추진하려는 시도라고 한다면 사려깊지 못한 일이다. 위헌판결 이유의 법리적 타당성 여부를 떠나, 이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국가주권자의 일반의지는, 수도이전은 매우 중요한 사항이므로 보다 깊은 논의와 연구, 그리고 국민적 합의를 거쳐 추진하라는 주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가 진정 우선 해야 할 일은 국민적 합의를 확보할 수 있는 방안과 절차를 마련하는 일이다.

그러나 헌재의 결정에 승복해야 한다는 것이 헌재판결의 법리적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라는 의미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현 헌법체계에서 헌재의 판결은 최종결정으로서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인정되어야 하지만, 그러한 판결의 논거가 절대적 진리로서 독점적 지위를 누릴 수는 없는 일이다. 토론의 광장에서 격론과 논박의 과정을 거치면서 헌법정신과 이념에 대한 모종의 공감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헌재의 판결이 나왔으니 더 이상 올가올부하지 말자는 주장은 옳지 못하다. 진지한 심의와 토론을 통해 헌법이념과 원리에 대한 사회적 공감을 확대하는 일에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심의과정에서 우리는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와 국민주권에 기반한 민주주의 원칙이 상충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현 헌정체제에서 어떤 법률이나 정책이든 헌법심판에 의한 위헌판결을 받을 수 있다. 설령 그것이 국회의원 대다수의 찬성으로 통과된 법이라 할지라도 위헌심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 어떤 헌재의 판결도 궁극적으로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넘어설 수 없지만 현 헌법체계에서는 가상적이나마 그런 일이 가능하다. 헌법재판소의 권능이 강화되고 있는 만큼 의당 헌법재판소의 운영과 구성, 심판방식과 기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하겠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주권의 원칙이 훼손되지 않으면서 법치의 공정함이 유지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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