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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길 잃은 한국 서사,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나
갈 길 잃은 한국 서사,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나
  • 김재호
  • 승인 2021.05.13 0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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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지 리뷰_〈영화가 있는 문학의 오늘〉 솔 | 384쪽

다양한 플랫폼들과 장르적 혼합이 대세지만 
문학은 서사의 바탕이 되는 새로운 상상력 제공 

요즘 소설을 소설로 제대로 읽는 독자가 얼마나 될까. 웹툰, 유튜브, 넷플릭스 등에 밀려 ‘소설’이란 말이 조금은 낯설어질 지경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계간지 <영화가 있는 문학의 오늘>(38호, 2021 봄호)가 특집 ‘한국 서사가 나아갈 방향’으로 다뤘다. 소설에선 작가의 영혼이 부여하는 주제의 깊이와 넓이, 영화에선 고전을 바탕으로 한 끊임없는 도전이 거론됐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어국문학과)는 「심층적, 확장적인 소설을 위하여」에서 소설의 위상을 서두로 시작했다. 그는 “영화나 그 밖의 동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1차 저작물로서의 소설의 지위는 웹툰 같은 것에 밀려나고 있고, 소설은 나날이 영락해버리는 것 같은 상황” 을 한탄했다. 

그럼에도 방 교수는 소설이 지닌 주제적 깊이의 문제를 고민한다. 그는 단편소설을 중심으로 『쇼코의 미소』(최은영), 『할로윈』(정한아), 『너무 한낮의 연애』(김금희)를 언급하며 작중 인물들의 ‘내성성’에 주목했다. 내성성은 자신의 내면을 잘 살피고 스스로를 지켜내는 일이다. 아무리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말이다. 방 교수는 세 작품에서 인물들의 내면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살펴보는 것 역시 읽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앞서 언급한 소설들과 퀴어를 다룬 박상영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동경 너머 하와이』 등은 소재 자체에 머물지 않고 다른 차원으로 작가의 예민함이 뻗어 나간다고 평했다. 

방 교수는 “한국소설 서사의 문제는 그것을 쓰는 작가가 어떤, 얼마만한 용적을 가진 영혼의 소유자인가 하는 데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며 “그것이 바로 주제의 깊이와 넓이인 셈이다”라고 진단했다. 

작가가 지닌 영혼의 깊이와 넓이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서사가 실종된 시대, 세상이 조금씩 무너져가는 시대」에서 진짜 이야기란 무엇인지 알려준다. 2018년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하나레이 베이」가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오 평론가는 “하나의 이야기가 전체의 이야기를 가져오고 전체의 이야기는 하나의 이야기로 집약된다”라면서 “이런 게 진짜 이야기”라고 평했다. 

오 평론가는 근래 한국영화 작품들의 서사 빈곤을 비판했다. 영화 「반도」(연상호 감독, 2020)는 철학의 빈곤, 「승리호」(조성희 감독, 2021)는 서사의 모방이 문제점으로 꼽혔다. 그는 한국영화가 항상 새로운 곳을 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바탕은 고전소설들이 주는 영감과 문학적 상상력이다. 

특히 현재 언론이 기득권층을 옹호하고, 팬데믹으로 생계가 어려워진 시대에 영화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래서 오 평론가는 “한국영화의 서사는 당분간 의도적으로 좀 더 진지하고, 사회정치적일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는 삶을 견디는 힘의 제공을 위해 “읽는 이로 하여금, 보는 이로 하여금, 서사의 주인공이 겪는 삶에 동참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전혜진 추리문학 평론가는 「오덕후가 장르 은하계를 여행하는 법」에서 장르‘문학’은 비대중적이지만 장르적인 것들은 대중화 했다고 강조한다. 비대중적인 이유는 호러나 추리, SF나 로맨스 판타지 등을 즐기는 마니아들이 자신들의 세계에 자부심이 있지만 잘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드라마, 게임, 유튜브, 넷플릭스의 세계에선 장르적인 것들을 혼합해 중층적 구조 로 구현한다. 장르적 혼합은 독자들의 호응으로 더욱 왕성해진다. 

전 평론가는 “장르문학의 젊은 도전자들은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고전하는 대신 장르적 코드를 반복하면서 독자와 소통하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듯 보인다”고 적었다. 하지만 그는 “이 멈추지 않는 반복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열정의 형식으로 주목될 가치가 있다”고 평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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