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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리 가톨릭관동대 교수] 상식의 불편함, 철학과 시로 승화되다
[오주리 가톨릭관동대 교수] 상식의 불편함, 철학과 시로 승화되다
  • 정민기
  • 승인 2021.05.13 0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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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3세대 연구자 오주리 교수
시학의 꽃 ‘존재론’을 파고들다

올해 3월, 오주리 가톨릭관동대 교수(국문학·사진)의 학술저서 『존재의 시』가 출간됐다. 정지용, 이상, 윤동주, 기형도 등 한국 현대시에 선명한 이름을 남긴 시인 10명을 ‘존재론’이라는 주제로 묶었다.

저자를 만나 책의 부제 ‘한국현대시사의 존재론적 연구’에서 ‘존재론’이 무엇을 뜻하는 물었다. 오 교수는 존재론이란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와 같은 물음들을 모두 아우른다고 답했다. 

한국 문학 연구자는 3세대에 접어들고 있다. 1세대는 한국 문학의 기본적인 자료를 수집해 정립했고, 2세대는 문예사조나 문단의 진영과 같은 큰 틀을 잡았다. 오 교수는 한국 문학 3세대 연구자다.

“제 세대에 이르러 시학이 다룰 수 있는 근본적인 주제인 ‘존재론’을 깊이 다룰 수 있게 됐어요. 선배 연구자분들 어깨 위에 앉은 것이죠.”

지난달 26일 오 교수를 만났다.

오주리 시인(가톨릭관동대 교수)
오주리 시인(가톨릭관동대 교수)

△ 『존재의 시』에 실린 논문 중에서 보들레르와 오장환의 ‘우울’을 비교한 논문이 흥미로웠습니다. 특별한 연구 동기나 계기가 있었나요?
“학부 때부터 보들레르를 좋아했습니다. 3학년 때 불문과에서 ‘19세기 프랑스 시’를 배울 때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을 접하고 큰 감동을 받았거든요. 제가 타고난 성정이 울음이 많고 이유 없이 슬픔이 찾아오는 경향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오장환도 멜랑콜리한 성향 때문에 좋아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학회에서 ‘코로나 블루’에 대해 논문을 써보게 돼서 두 시인의 접점을 살펴보게 됐습니다. 코로나19가 가난한 계층에서 더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기사를 접하게 됐어요. 보들레르 시를 다시 읽어보니까 이러한 사회계층적인 통찰이 번뜩이는 부분이 많았어요. 마찬가지로 오장환도 실업이나 가치관 붕괴를 많이 다루고 있었어요.” 

△ 보들레르와 오장환이 우울을 대하는 방식이 미묘하게 다릅니다. 오 교수님은 어느 쪽에 가깝다고 생각하시나요?
“오장환은 현실을 극복해서 이겨내려고 했어요. 반면, 보들레르는 이 세상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예술로 승화하려 했죠. 저는 오장환보다는 보들레르 쪽에 가깝습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투쟁하기보다는 ‘어찌하리’라고 눈물을 흘리는 편이에요. 예를 들자면, 가난하고 비루한 삶을 극복하고자 하는 사람은 열심히 돈을 모으고 투자를 해서 건물주가 돼야겠다고 생각할 거예요. 저는 반대로 이 세상이 기본적으로 무상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돈을 더 모으겠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세상을 초월하고 싶어요. 예술을 통해 이상과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싶어요.”

△ 어릴 때 꿈은 화가였다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저희 아버지가 극작가이시거든요. 어렸을 때 아버지가 글을 쓰시면 혼자 놀아야 했는데 그때 그림을 많이 그렸어요. 하루는 화실에 앉아서 박제된 꿩을 그린 적이 있어요. 붓끝으로 깃털 하나하나를 그리다 보면, 어떤 아름다움의 세계에 몰입되는 순간이 정말 행복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 사춘기가 되자 인간적인 고뇌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아름다움의 세계에서 언어로 된 의미의 세계로 넘어오게 됐어요. 그때부터 철학책도 애독하기 시작했고요.”

△ 논문뿐만 아니라 시집 『장미릉』 에서도 철학 용어나 인용이 많이 들어가 있는데요. 특별한 이유나 원칙이 있나요?
“네, 철학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상식의 불편함 때문이었어요. 아니 불편함을 너머서 상식이 주는 고통 때문이었어요. 편견이나 규범, 이데올로기 같은 것들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어렸을 때부터 봐왔어요. 저희 첫째 큰아버지께서 월북을 하시면서 저희 가족이 연좌제에 묶였어요. 저는 태어날 때부터 전과자와 같았죠. 상식 때문에 많이 아팠어요. 그런데 철학책에는 순수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철학책만 읽었어요. 시에 철학 용어나 인용이 많은 건 자연스럽게 저의 배경이 녹아든 것 같아요. 사실 철학적인 시가 더 많은데 시집에서는 많이 걸러낸 편이에요.”

△ 시를 쓰는 특별한 시간이나 규칙이 있나요?
“영감이 찾아와서 한 문장을 빠르게 쓸 때도 있지만 대부분 한 문장을 쓰는 데 오래 걸리는 편이에요. 보석을 세공하듯 시를 다듬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려요. 마음속의 미로를 헤맬 때도 많습니다. 그리고 제 시가 조금 길고 복잡한 편인데요. 저는 근본적으로 세상이 명료하기보다는 불명료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오랜 시간 동안 제 얘기를 털어놓지 않고 살다 보니 제 안에 너무 많은 것들이 쌓였어요. 내면의 미로를 따라 끊임없이 이어지느라 시가 자꾸만 길어지는 것 같아요.”

△ 가톨릭관동대로 부임하면서 찾아온 변화가 있나요?
“네, 강릉에 와서 제 시가 조금 부드러워졌어요. 강릉의 바다, 눈, 바람과 같은 자연에 대한 감수성이 자연스럽게 시로 들어왔어요. 또 강의를 시작하면서 학생들이 사랑하는 윤동주나 김수영 같은 시인을 더 연구하게 됐어요. 서울대는 상아탑적인 학풍이 있어서 서울대 울타리 안에만 있었다면 몰랐을 것들을 알게 돼서 좋아요. 편협되지 않은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것 같아요. 또 봉사활동을 하면서 인간에 대한 마음이 열렸어요.”

정민기 기자 bonsens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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