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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기획: 교수사회의 왕따현상, 어떻게 볼까
생활기획: 교수사회의 왕따현상, 어떻게 볼까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4.10.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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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지혜 필요...개인주의 문화가 원인

세계의 심리학자들 사이에서 한국의 ‘왕따(Wang-ta)’라는 용어는 악명을 떨치고 있다. 학술대회에 가면 ‘Oh~ 왕타’ 한다는 것이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는 거기서 얘기를 나누다가 한국에는 그뿐만이 아니라 ‘은따’(은근히 따돌림), ‘전따’(전교생이 따돌림), ‘찐’(특출한 사람을 따돌림), ‘개따’(왕따한테 찍히는 것) 등 ‘가학성’ 문화의 증식현상이 심각하다고 덧붙인다.

그러면 英美 교수들은 깜짝 놀란다고 한다. 그들은 ‘불링’(Bullying)이라 해서 한두 명이 다른 한명을 지독하게 괴롭히는 경우는 있어도, 전체 집단이 한 사람을 린치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일본의 ‘이지메’, 중국의 ‘링구르’ 등 전 세계에서 집단따돌림 현상이 연구되고 있지만, 한국은 워낙 연구할 게 많아서 그야말로 논문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잘 살필 것은 연구가 청소년 집단에 국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청소년 집단에서 특히 왕따가 심각해서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왕따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정신적 상흔을 갖게 되고, 마치 마약처럼 끊기 어려운 습관처럼 자리잡기 때문에 ‘예방’이 중요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거기에 하나 덧붙인다면 아이들은 복잡화가 덜 진행돼, 유형별 연구와 그에 따른 예방 프로그램까지 순조롭게 진행된다. 효과도 꽤 있다고 한다. 하지만 성인들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뤄지고 있지 않다. 미국의 심리학자들이 팀을 이뤄 제일 먼저 시도한 것이 ‘교원집단’의 왕따 현상이다. 그러나 중도 포기했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집단을 이루냐에 따라서 워낙 유형이 다양해서 확률 따지다가 지친다는 것. 이 집에선 왕따 안 당할 사람인데 저 집에 가면 큰일 나니 사례연구는 돼도 ‘방향’ 제시를 못해주는 것이다.

한국 교수사회도 왕따가 많다. 그런데 떠들썩하지는 않다. 여러 교수들에게 취재를 해본 결과, 주변에 그런 일이 없다는 걸로 인식하고 있다. 이건 당연하다. 교수사회에서 집단따돌림이 밖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 사람은 그냥 둬’ 정도의 집단합의가 대부분인지라 사회문제시 되고 있는 ‘왕따’ 현상과의 연결이 잘 안되는 것이다. 지방 사립대의 한 학과에선 ㄱ 교수가 원수 취급을 받는다. 한번은 교수들끼리 술자리에서 재단에 대해 이러저러한 얘기를 나눴다. 그런데 사석에서 오갔던 얘기를 ㄱ 교수가 학교당국에 고한 것이다. 물론 몰래 했겠지만 소문이 나서 ㄱ 교수는 술자리 기피인물로 찍혔고, 각종 모임에서도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왕따 당할만하다” 의견 많아

이런 사태에 대해 교수들은 “왕따 당할 만 하니까 그런 것 아니냐”라고 말한다. 특히 지방 사립대학에선 사학 이사장과 총장이 술자리 안주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러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건데 그걸 고자질한다는 건 ‘용서’가 안 된다는 것. 김원중 건양대 교수(중문학)도 “어느 학교에나 곡학아세하는 교수들이 있다”라고 말하지만, 왕따를 당하는 입장에서는 상처가 커질 수 있다.

사소한 잘못 하나 때문에, 가치관이 다르다고 ‘이물질’ 취급을 하면서 몰아세우는 걸 보면 기가 막힐 뿐 아니라 정체성 혼란 때문에 심각한 고민에 휩싸이기 십상이다. 요즘 들어 40대 남자들이 ‘우울증’으로 병원을 많이 찾는 이유도 이런 ‘고립문화’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서울소재 대학의 한 사회학과의 ㄴ 교수의 사례는 어떻게 봐야 할까. 그는 학과 내에 마음 터놓을 동료가 없다. 사실 사회봉사 활동으로 외부 일이 바쁘다 보니 학과 일에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지식인으로서 사회적으로 역할도 하고 명성을 쌓고 싶기 때문에 외부 일에 열정적이게 된다. 그러면 이를 지켜보는 학과 교수들은 사회적으로 명망을 떨치는 일에만 쫓아다닌다고 비난한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많은 학과에서 해당 교수를 멀리하는 경향이 있다. 어떻게 봐야 할까. 심리학자들은 ‘차이’를 인정해줘야 한다고 한다. 자신이 학과 일에 헌신한다고, 그렇지 않은 교수를 ‘타자’로 취급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김원중 교수는 과거 문인들이 서로 경시하는 ‘相輕’의 문화가 있었는데, 오늘날 에도 이 문제가 지속된다고 말한다. 남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오늘날 지식인들의 ‘병 중의 병’이 아닐까.

서울 한 여대의 ㄷ 교수는 얼마 전 사표를 썼다. 학과에서 고립되자 견디지 못하고 나온 것. 타 학교 출신이었던 그는 학과의 기존 위계질서를 따르지 않고, 그냥 내 연구나 해야지 하고 마음먹었다가 “나홀로주의”라는 질타를 받았다. 왕따의 요인은 사실 어느 집단이나 비슷하다. 교수사회에서 ‘타교 출신’은 왕따의 수원지다. 황임란 한국교원대 강사(교육심리학)는 “같은 학교 출신이나 학파가 아니면 자리에 못 끼는 경우가 흔하다”라고 말한다. 특히 해당 대학의 위계질서에 적응하지 않고 튀는 경우는 정말 ‘왕따’ 당한다고 한다.

윤범모 경원대 교수(미술이론)는 서울 명문대 미술학부의 ㄹ 교수의 사례를 말해준다. 어느 날 그 교수는 교수직을 팽개치고 전업작가를 선언했는데, 작품에 전념하기 위한 게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사회적으로 ‘스타’ 작가가 됐던 그는 작품 활동이 저조한 선배 교수들로부터 질시를 받은 케이스다. 이는 연구업적이 지나치게 좋은 교수가 “남을 밟고 혼자만 잘 되려고 그런다”는 시기를 받는 경우와 유사하다. 윤 교수는 “특히 미술 분야의 교수사회가 워낙 보수적이고 정체돼있기 때문”이라고 그 원인을 짚는다.

개인주의적 문화부터 바꿔나가야

왕따 문제는 풀기가 참 어렵다. 시키는 쪽과 당하는 쪽이 모두 피해자다. 한번 왕따문화에 익숙해지다 보면 마치 유전자처럼 따라다녀서, 그 사람을 집단논리에 기생하는 인간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한국의 왕따 문제는 집단문화의 특수성으로부터 풀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곽금주 교수팀의 조사에 따르면 일주일에 1번 이상 남을 따돌려본 경우가 영국의 경우 3%에 그친 반면, 한국은 24.5%나 됐다. 워낙 집단화가 잘 일어나기 때문에 집단에 속하면 자연스레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이는 교수사회처럼 ‘개인주의’가 강해 집단적 활동이 타 직종에 비해 덜한 곳도 예외는 아니다. 교수사회의 집단이라면 총장이나 학과 수장에서 내려오는 서열적 집단, 남녀로 구분되는 집단, 학파 등으로 나뉜다. 교수사회의 경우 다른 집단과 달리 폭행을 가하거나 악질적으로 괴롭히는 경우는 덜하지만, 재임용 심사 때 보복하는 식으로 피해를 입히고, 서열에서 배제시키는 ‘점잖지만’ 많은 방식의 따돌림 문화가 있다.

서열화 구조는 사회적으로 계속 문제시되고 있지만, 남녀 교수 사이의 문화적 차이로 인한 ‘왕따’ 현상은 잘 거론되지 않아 큰 문제다. 한 여 교수는 학과의 유일한 홍일점이었다. 그런데 은근히 소외당한다는 느낌이 점점 강해졌다는 것이다. 다들 지나가면서 “좀 어울려라”고 핀잔 섞인 소리를 한마디씩 던지면 나중에는 바위를 맞는 느낌이라고 한다. 그러나 남성문화에 먼저 손을 내밀기가 그렇게 쉽지가 않다. 손승영 동덕여대 교수(여성학)는 “여 교수가 이기적이라거나 남 교수들이 일부러 따돌린다고 잘라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남녀 교수들이 스스로 하던 대로 하다보면 자연스레  여성이 소외·배제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심리학을 전공한 황임란 박사는 “교수들이 공동체 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 같은 의도치 않은 문제가 발생한다고 본다. 개인들의 이해에 따라 뭉친 집단이 타인에게 공동체를 강요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이런 집단화는 남을 제치고 올라가려 하는 데서 선택적으로 다양하게 발생한다. 또 집단으로 행하기 때문에 책임이 분산돼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교수들은 언제, 어떻게 자신이 왕따가 될지 모르는 위험에 노출돼 있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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