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교수생활 하면서 개인적으로나 가족적 환경에서 가장 큰 변화가 찾아오는 때가 연구년인데, ‘자녀교육’이라는 또 하나의 숙제가 딸려 온다. 한참 민감할 시기에 다른 문화와 교육제도를 접하는 아이들 때문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학교생활에 적응 잘 할까…
외국학교에서의 새로운 생활에 아이들이 ‘적응’한다는 건 세 가지 측면에서 말할 수 있다. 하나는 기본적인 생활, 그 다음은 교과과정 적응, 마지막은 문화적 차이 극복이다. 초등학생들은 덜한 데 비해 이미 한국에 젖은 중·고등생은 적응에 좀더 어려움을 겪는다. ‘의사소통’ 부분은 초기엔 좀 어렵지만 ‘가장 쉽게’ 해결되는 문제라는 게 경험자들의 말이다.
중 1년생을 데리고 미국에 나갔던 이동일 한국외대 교수(영문학)는 “ESL을 배우기도 하는데, 그 여부와 관계없이 애들은 언어에 금방 익숙해진다”라고 말한다. 중학생과 고등학생 자녀 각각 한 명씩 데리고 미국에 나갔던 김규원 경북대 교수(사회학)는 “어학은 뛰어나지 않아도 큰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다인종·다문화 사회라 비슷한 처지가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려움을 겪는 건 과목별 수업에서다. 중 2년생 자녀와 함께 나갔던 김혜숙 건양대 교수(영문학)나 초등 5년생을 뒀던 황훈성 동국대 교수(영문학), 그리고 이동일 교수 자녀들 모두 ‘작문’을 가장 힘들어했다. 김혜숙 교수는 “영문학은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쓰는 것이라 가장 어려워했다”라고 털어놓는다. 사회과목도 마찬가지다. 중 2년생을 뒀던 김문성 경원대 교수(행정학)는 “사회나 역사과목은 많이 읽고 많이 써야 해서 고생했다”라고 말한다.
학교 시스템이나 문화적응도 만만찮다. 예컨대, 미국은 중학교 때부터 한 클래스로 묶이는 게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과목에 따라 매시간 교실을 이동하며 수업을 듣는다. 대학과 똑같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뛰어다니기 바쁘다’라는 문제는 제쳐두고라도, 새롭게 온 아이들에게는 이런 환경이 무척 낯설다. 한내창 원광대 교수(사회학)는 “클래스를 이동하다보니, 애들이 또래와 어울리는 데 있어서 더욱 어려움을 호소한다”라고 털어놓는다. 한국에서 정확한 정보를 모르고 가서 기대와 배치되는 학교생활 때문에 불만을 터뜨리는 경우도 있다. 김규원 교수는 “아이가 미국교육은 한국보다 좀더 느슨할 거라고 기대하고 갔는데, 훨씬 더 타이트한 교육 때문에 자정이 넘어 숙제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라고 말한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또 다른 민감한 문제로 아이들이 혼란을 겪을 여지가 있다. 소수민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기 시작한다는 것. 김규원 교수는 “아이들이 시민권을 갖고 있는데도, 묘한 인종간의 갭을 느껴 심리적 어려움이 있었다”라고 말한다.
현지대학생 과외도
이러니 교수들은 연구년에도 ‘연구’만 할 수는 없고 국내에서보다 자녀교육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처음 가서 과외를 시킨다. 현지 대학생들에게 부탁하는데, 영어발음은 물론이고 작문이나 기타과목들도 얼마간 지도를 받게 한다는 것. 황훈성 교수는 “경제적으로도 큰 부담 없는 가격이며, 개인지도라 확실히 효과가 있다”라고 말한다. 이동일 교수는 “부모들이 적극 나서서 교과목 지도를 담당하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라며 적응기간 중 아이들에게 교과목 선생이 돼줄 것을 권한다.
미국은 끊임없이 학부모의 참여를 요구한다는 점에서도 한국과 다르다. 이른바 학생, 교사, 학부모의 ‘삼두마차체제’로 학교를 이끌어간다. 소풍이나 견학, 과외활동을 할 때 학부모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수업보조교사나 자원봉사 활동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연구년을 다녀온 교수들은 “아이들의 교과과정에만 신경을 쓸 게 아니라, 부모가 끊임없이 학교활동에 참가해 보살펴 줘야 한다”라고 충고한다.
자녀들이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내는 반응도 잘 받아줘야 한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반항하거나 짜증을 많이 내기도 했다고 연구년 경험교수들은 털어놓는다. 그럴 때 다그치기보다는 아이와 같은 처지에서 공감해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두고 올까 vs 데리고 올까
연구년 나간 교수들 중 열에 일곱은 아이들과 부인을 두고 온다고 한다. ‘기러기 아빠’와 조기유학생이 탄생하는 셈. 이동일 교수는 “객관적으로 보자면, 아이들 10명 중 8~9명은 외국학교시스템을 훨씬 좋아한다”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과 가족과 떨어져 사는 단점을 감수하고라도 아이들을 두고 온다는 것이다. 사실 교수들은 좀 특이한 케이스인데, 일반인과 달리 교수 자녀들은 해외경험을 한번씩 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이들도 적응에 어려움을 덜 느낀다는 것이다. 김문성 교수는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온 케이스다. 물론 아이들의 불만이 거셌다. “국내 고등학교는 규제가 심하고 수업도 따분하다”라며 들어와서의 어려움도 토로한다. 김 교수는 “가족들은 최소한 대학 전까지는 함께 있어야 한다”라고 본다. 하지만 이미 외국경험을 맛본 둘째 아이는 대학입시 즈음 외국으로 떠날 것을 결정했다.
‘남겨두는 것’을 전혀 생각지도 않는 교수들도 있다. 김혜숙 교수 자녀들은 자기들끼리만이라도 남아있고 싶어 했다고 한다. 하지만 “가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라는 김 교수의 생각 때문에 결국 같이 들어왔다. 황훈성 교수는 경제적인 부담감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정체성 문제가 걱정돼 같이 들어왔다. 김문성 교수도 “대학생이 됐을 때 다시 내보내는 게 더 나은 것 같다”라고 말한다. 유운성 선문대 교수(교육학)는 내년에 연구년을 갈 예정인데, “국내에서도 나름대로의 교육방법이 있기에 두고 오는 것은 염두에 두지도 않는다”라고 한다. 최악의 경우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부모 없이 아이들만 남겨두는 건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게 경험자들의 충고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미국 중고교 교육제도의 특징 미국의 공교육제도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12학년을 정점으로 하는 K-12 시스템이다. 각 주마다 제도를 달리 채택하는데, 메릴랜드 주 등에서 실시하는 6-3-3 제도가 일반적이다. 미 동부 일부사립학는 8-4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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