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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기획: 안식년 자녀교육
생활기획: 안식년 자녀교육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4.10.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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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작문 예습 필수...불만과 짜증 잘 받아줘야

대학에 자리 잡고 얼마 지나면 연구년을 맞는다. 올해 신임교수 평균연령대가 37.7세였던 것으로 볼 때, 보통 40대 중반 쯤이 될 것이며, 많은 경우 영·미 등 해외로 떠난다. 이때는 또 자녀들이 한창 중·고등학교에 진학할 시기다. 물론 초등학교 자녀들을 둔 교수도 있을 테고, 지방사립대에선 연구년을 제때 못 챙겨 먹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교수생활 하면서 개인적으로나 가족적 환경에서 가장 큰 변화가 찾아오는 때가 연구년인데, ‘자녀교육’이라는 또 하나의 숙제가 딸려 온다. 한참 민감할 시기에 다른 문화와 교육제도를 접하는 아이들 때문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학교생활에 적응 잘 할까…


외국학교에서의 새로운 생활에 아이들이 ‘적응’한다는 건 세 가지 측면에서 말할 수 있다. 하나는 기본적인 생활, 그 다음은 교과과정 적응, 마지막은 문화적 차이 극복이다. 초등학생들은 덜한 데 비해 이미 한국에 젖은 중·고등생은 적응에 좀더 어려움을 겪는다. ‘의사소통’ 부분은 초기엔 좀 어렵지만 ‘가장 쉽게’ 해결되는 문제라는 게 경험자들의 말이다.


중 1년생을 데리고 미국에 나갔던 이동일 한국외대 교수(영문학)는 “ESL을 배우기도 하는데, 그 여부와 관계없이 애들은 언어에 금방 익숙해진다”라고 말한다. 중학생과 고등학생 자녀 각각 한 명씩 데리고 미국에 나갔던 김규원 경북대 교수(사회학)는 “어학은 뛰어나지 않아도 큰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다인종·다문화 사회라 비슷한 처지가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려움을 겪는 건 과목별 수업에서다. 중 2년생 자녀와 함께 나갔던 김혜숙 건양대 교수(영문학)나 초등 5년생을 뒀던 황훈성 동국대 교수(영문학), 그리고 이동일 교수 자녀들 모두 ‘작문’을 가장 힘들어했다. 김혜숙 교수는 “영문학은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쓰는 것이라 가장 어려워했다”라고 털어놓는다. 사회과목도 마찬가지다. 중 2년생을 뒀던 김문성 경원대 교수(행정학)는 “사회나 역사과목은 많이 읽고 많이 써야 해서 고생했다”라고 말한다.


학교 시스템이나 문화적응도 만만찮다. 예컨대, 미국은 중학교 때부터 한 클래스로 묶이는 게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과목에 따라 매시간 교실을 이동하며 수업을 듣는다. 대학과 똑같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뛰어다니기 바쁘다’라는 문제는 제쳐두고라도, 새롭게 온 아이들에게는 이런 환경이 무척 낯설다. 한내창 원광대 교수(사회학)는 “클래스를 이동하다보니, 애들이 또래와 어울리는 데 있어서 더욱 어려움을 호소한다”라고 털어놓는다. 한국에서 정확한 정보를 모르고 가서 기대와 배치되는 학교생활 때문에 불만을 터뜨리는 경우도 있다. 김규원 교수는 “아이가 미국교육은 한국보다 좀더 느슨할 거라고 기대하고 갔는데, 훨씬 더 타이트한 교육 때문에 자정이 넘어 숙제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라고 말한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또 다른 민감한 문제로 아이들이 혼란을 겪을 여지가 있다. 소수민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기 시작한다는 것. 김규원 교수는 “아이들이 시민권을 갖고 있는데도, 묘한 인종간의 갭을 느껴 심리적 어려움이 있었다”라고 말한다. 

현지대학생 과외도 


이러니 교수들은 연구년에도 ‘연구’만 할 수는 없고  국내에서보다 자녀교육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처음 가서 과외를 시킨다. 현지 대학생들에게 부탁하는데, 영어발음은 물론이고 작문이나 기타과목들도 얼마간 지도를 받게 한다는 것. 황훈성 교수는 “경제적으로도 큰 부담 없는 가격이며, 개인지도라 확실히 효과가 있다”라고 말한다. 이동일 교수는 “부모들이 적극 나서서 교과목 지도를 담당하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라며 적응기간 중 아이들에게 교과목 선생이 돼줄 것을 권한다.


미국은 끊임없이 학부모의 참여를 요구한다는 점에서도 한국과 다르다. 이른바 학생, 교사, 학부모의 ‘삼두마차체제’로 학교를 이끌어간다. 소풍이나 견학, 과외활동을 할 때 학부모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수업보조교사나 자원봉사 활동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연구년을 다녀온 교수들은 “아이들의 교과과정에만 신경을 쓸 게 아니라, 부모가 끊임없이 학교활동에 참가해 보살펴 줘야 한다”라고 충고한다.


자녀들이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내는 반응도 잘 받아줘야 한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반항하거나 짜증을 많이 내기도 했다고 연구년 경험교수들은 털어놓는다. 그럴 때 다그치기보다는 아이와 같은 처지에서 공감해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두고 올까 vs 데리고 올까


연구년 나간 교수들 중 열에 일곱은 아이들과 부인을 두고 온다고 한다. ‘기러기 아빠’와  조기유학생이 탄생하는  셈. 이동일 교수는 “객관적으로 보자면, 아이들 10명 중 8~9명은 외국학교시스템을 훨씬 좋아한다”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과 가족과 떨어져 사는 단점을 감수하고라도 아이들을 두고 온다는 것이다. 사실 교수들은 좀 특이한 케이스인데, 일반인과 달리 교수 자녀들은 해외경험을 한번씩 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이들도 적응에 어려움을 덜 느낀다는 것이다. 김문성 교수는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온 케이스다. 물론 아이들의 불만이 거셌다. “국내 고등학교는 규제가 심하고 수업도 따분하다”라며 들어와서의 어려움도 토로한다. 김 교수는 “가족들은 최소한 대학 전까지는 함께 있어야 한다”라고 본다. 하지만 이미 외국경험을 맛본 둘째 아이는 대학입시 즈음 외국으로 떠날 것을 결정했다.


‘남겨두는 것’을 전혀 생각지도 않는 교수들도 있다. 김혜숙 교수 자녀들은 자기들끼리만이라도 남아있고 싶어 했다고 한다. 하지만 “가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라는 김 교수의 생각 때문에 결국 같이 들어왔다. 황훈성 교수는 경제적인 부담감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정체성 문제가 걱정돼 같이 들어왔다. 김문성 교수도 “대학생이 됐을 때 다시 내보내는 게 더 나은 것 같다”라고 말한다. 유운성 선문대 교수(교육학)는 내년에 연구년을 갈 예정인데, “국내에서도 나름대로의 교육방법이 있기에 두고 오는 것은 염두에 두지도 않는다”라고 한다. 최악의 경우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부모 없이 아이들만 남겨두는 건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게 경험자들의 충고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미국 중고교 교육제도의 특징

미국의 공교육제도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12학년을 정점으로 하는 K-12 시스템이다. 각 주마다 제도를 달리 채택하는데, 메릴랜드 주 등에서 실시하는 6-3-3 제도가 일반적이다. 미 동부 일부사립학는 8-4 제도다.


미국 중·고등학교의 교과과정은 마치 대학과 같다. 즉, 필수과목과 선택과목이 폭넓어 학생들의 선택학습이 가능하다. 워싱턴의 한 중학교를 예로 들어 보자. 중 1의 필수과목은 영어, 수학, 과학, 미국사, 체육 등 5개 과목이며, 학기당 두 개의 다른 과목을 선택해서 수강하면 된다. 선택과목 종류는 23개나 된다. 예술입문, 연극, 저널리즘, 외국어 입문, 문예창작, 컴퓨터 등과 오케스트라, 합창, 밴드 등 음악관련 과목들도 있다. 예능은 주로 실기과목이라 소질에 따라 선택하며, 기능방면은 목공, 프린트, 기계조립 등이 있다. 이런 면이 학부모와 학생들의 만족감이 큰 부분이다.


미국에서도 선행학습이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다.  고등학교에서는 대학학점 인정과목으로 AP(Advanced Placement) 클래스와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과목이 있다. IB 프로그램은 주로 성적이 낮은 학교에서 실시하도록 배려된 것이지만, AP 과목은 대부분의 학교에 개설돼있다. 학교마다 AP 전담교사와 카운셀러가 있으며, AP 과목은 31개가 있다. 예술사, 생물학, 수학, 화학, 컴퓨터과학, 거시·미시경제학, 영어, 영문학, 환경과학, 유럽사,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비교정부 및 정치, 미국정부 및 정치, 인류지리학, 라틴문학, 음악이론, 물리학, 심리학, 통계학, 미국사 등이 대학학점인정과목이다. 고등학교 때 이를 많이 수강하면 대학진학 시 유리할 뿐만 아니라, 대학에 가서도 한결 여유를 갖게 된다. 특히 명문대학 진학이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AP 과목 이수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미국의 외국어 교육 열기는 뜨겁다.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이머전 스쿨’(Immersion School)로 불리는 외국어 집중훈련학교가 운영된다.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중국어, 일본어 등의 이머전 학교가 있는데, 기본 과목을 전부 외국어로 수업 받거나 혹은 수학, 과학 등 특정 과목을 외국어로 교육받는다. 이런 교육과정을 밟으면 거의 원어민과 같은 언어구사능력을 갖추게 된다. 교육청에 신청하면 거주지 학교가 아닌 외국어 학교로 배정받을 수 있다. 혹 영어실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하나, 몇 년이 지나면 일반 학교 학생들에 비해 영어실력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미국학교에서는 학부모의 참여가 필수다. 학부모와 교사들의 연합회인 PTA(Parents and Teachers Association)가 운영된다. 학교 재정지원이나 도서, 비품 구입재원 마련도 학부모들의 몫이다. 소풍이나 견학 등 학교 밖을 떠날 때도 학부모들이 자원봉사자로 나서 1인당 4~5명의 학생을 인도해 다닌다. 수학, 미술, 음악, 공예 등 수업의 보조교사로 참여하는 것도 쉽게 볼 수 있다. 축구나 농구 등 운동팀, 보이/걸스카우트 같은 활동은 전적으로 학부모 책임이다. 바쁜 직장생활을 쪼개서 학생들의 활동대장이 돼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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