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와 칸트의 결정적 차이 규명
저자는 이율배반론을 동서양 철학의 핵심 사유로 파악한다. 서양의 경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미 이율배반에 대한 논리적 해결을 추구했으며,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부처의‘無記’도 바로 이 이율배반의 철학을 담고 있다. 무기란 이율배반적인 물음에 단지 침묵으로서 답한 부처의 가르침을 의미하는데, 연기설이나 사성제 같은 불교의 주요 사상이 무기가 의미하는 바를 해결하려다 도달한 결론이라 할 수 있다.
‘무기’로부터 비롯된 불교 사상의 논리학은 중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와 원효에 의해 그 정점에 달했다.‘판비량론’은 원효가 55세(671년)때, 무기에 대해 중국의 현장이 전개한 논리(비량)가 얼마나 잘못됐는지 비판하기 위해 저술한 글이다.
저자는 원효의 ‘판비량론’의 제8절과 10절을 선별해 칸트의 이율배반론과 비교함으로써 원효 사상에 대한 하나의 접근을 제시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동일한 이율배반의 문제에 직면해 칸트가 이율배반이 없는 유토피아를 찾아 이상향적 도덕철학을 추구한 반면, 원효는 진여문과 생멸문이 서로 교통하고 서로 토대가 된다는 깨달음을 통해 이율배반이 부재하는 이상향을 찾지 않아, 서로 차이가 있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동서양에 걸쳐 장구한 이율배반의 철학을 통해 칸트와 원효의 사상을 짚어내고 있기 때문에 독해가 결코 쉽지 않지만, 1천 5백여 년 동안 주목을 받지 못한 원효 사상의 정수를 서양정신과 맞부딪치게 한 저자의 노력이 돋보인다.
최철규 기자 hisfuf@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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