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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세이_②丹楓
가을에세이_②丹楓
  • 김기원 국민대
  • 승인 2004.10.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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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시게 푸른 날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

단풍은 기후가 바뀜에 따라 식물의 잎이 초록색에서 붉은색, 갈색, 노랑색 등으로 변하는 것을 말한다. 잎이 색을 띠는 것은 잎 속에 들어 있는 색소 때문인데, 색소는 엽록소에 의해 광합성을 하는 과정에서 잎 속에 함께 만들어 진다.

계절이 가을로 접어들어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광합성 능력이 저하된다. 동시에 나뭇잎을 달고 있는 가지와 잎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는 이음새 부분에 ‘떨켜’라고 부르는 격리층이 생긴다. 이렇게 되면 잎에서 만들어진 물질들은 더 이상 줄기로 이동하지 못하게 되며 설탕과 같은 물질들은 잎에 남아 있게 된다. 잎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 색소들은 엽록소 때문에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광합성 능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엽록소가 퇴색하고 여태껏 숨어있던 다른 색소들이 드러나게 돼 여러 가지 빛을 띠게 된다.

잎이 붉게 물드는 것만을 단풍이라고 해야 옳지만 언어습관상 가을에 물든 모든 잎을 그렇게 부르고 있다. 단풍의 색은 크게 붉은색, 노랑색, 갈색 등 3가지로 구분한다. 나무마다 잎에 많이 함유하고 있는 색소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 단풍 색깔도 다르다. 붉은색 단풍은 안토시안이라는 색소 때문에 나타나는데 단풍나무, 산벚나무, 화살나무, 붉나무, 옻나무, 산딸나무, 매자나무, 윤노리나무 등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노란색 단풍은 카로티노이드 색소가 발현되기 때문인데 은행나무, 고로쇠나무, 느릅나무, 포플러, 피나무, 플라타너스, 너도밤나무 등이 노랑으로 물든다. 갈색으로 물드는 것은 타닌 성분 때문인데 느티나무, 마로니에 잎에서 볼 수 있다.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우리나라는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가을에 기온이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하는 때부터 단풍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보통 일평균기온이 15℃이고 최저기온이 7℃일 때부터 나타나며 일교차가 클수록 선명한 빛을 보인다. 설악산, 오대산에서부터 시작하여 지리적으로 하루 20~40km씩 남쪽으로, 해발고도 40m씩 산 아래로 물들어 간다.

가을 숲의 색을 감상하려면 멀리서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숲 속에서 감상하는 것이 眞味일 것이다. 숲속에 들어서서 시점을 어느 한 나무에 고정한 채 천천히 전후좌우로 움직여보라. 고정된 시점을 중심으로 주변에 있는 나무들이 움직이는 것처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이차원적으로 보이던 숲속의 풍경이 삼차원으로 보일 것이다. 마치 입체경을 쓰고 보는 듯이 숲 속의 풍경이 멋지게 바뀔 것이다. 이른바 매직 아이식 감상법이다.

봄 나뭇잎의 색깔이 나무의 외양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가을 나뭇잎은 봄부터 가을까지 익은 나무의 내면과 그 진실함을 나타내는 빛깔이다. 움, 담록, 신록의 세계를 지나서 단풍의 세계로 화색해 자연과 인간의 세상을 물들인다. 이처럼 나무는 일 년 사계절 동안 자기 생명을 바쳐 온몸으로 다양한 각색을 통해 자신을 연출한다. 때로는 벌거벗은 몸으로, 때로는 연둣빛 적삼으로, 신록과 색동옷으로, 그리고 때로는 하얀 소복차림으로 숲에 등장하곤 한다. 이 세상 그 어느 예술품이 이처럼 사시사철 각기 다른 모습과 아름다움으로 사람의 시선을 끄는 것이 있을까.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는 예술품이며, 숲은 그들이 살아 숨쉬는 생명체로 정갈하게 진열돼 있는 살아있는 미술관이요 박물관이다. 이러한 데에 가장 큰 기여를 하는 것이 잎이다.

길게 직립한 회색빛 줄기의 나무에 달려있는 물든 노란잎, 빨간잎들을 보라. 그것도 석양이나 이른 아침 떠오르는 햇살에 투영된 잎들을 보라. 잎은 밝고 맑고 투명하게 빛나고 우리들의 눈은 그 빛에 비춰져 환해질 것이다. 마치 창호지문에 투영되는 햇살처럼. 떨어진 낙엽을 집어 들어 햇빛에 비춰 보자. 까칠해진 살갗과 실핏줄들이 드러나 보이고, 해충들에 짓밟힌 흔적이랑 햇빛에 그을린 자국도 발견할 것이다. 불과 20㎠ 안팎의 넓이 속에서 공기와 물과 햇빛만으로 가지와 줄기를 먹여 살리며 또 하나의 나이테를 만들어낸 刻苦가 거기에 배어있다. 물과 이산화탄소와 햇빛만 가지고도 조그만 잎을 통해 거대한 몸체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면서, 같은 생명체로서 자연의 섭리에 그저 놀랄 따름이다. 봄부터 지난 수개월간의 가녀린 잎의 삶이 거기에 담겨있음을 확인하고 가지와 나무를 떠나서 그가 가는 길도 추측해 볼 일이다. 지난 6개월여 동안 양분을 공급해왔던 가지와 줄기로부터 떨어져 나와 이제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먼 길 가는 채비를 하는 것이리라. 자기 몸을 썩혀 양분이 돼 다시 잎으로 귀향하려는 것이다.

10월의 마지막 햇살이 아직 노란 서어나무 잎이나 계수나무 잎에, 혹은 붉은 화살나무나 산딸나무 잎에 머물러 있을 때, 그래서 태양이 더 남으로 향하기 전에 남쪽으로 그를 좇아 가야겠다.

김기원 / 국민대 산림자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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