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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여명 중 극소수만 '반짝'…운동 안하면 사회부적응자
1만여명 중 극소수만 '반짝'…운동 안하면 사회부적응자
  • 이민선 기자
  • 승인 2004.10.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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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체육특기자, 소수의 영광 다수의 절망

▲정기 연고전을 대비해 연세대 농구팀이 연습경기 중이다. © 연세춘추

연세대 농구팀의 김태술 씨(21세)는 대학 최고의 포인트가드다. 이미 대학 1학년 때부터 ‘대어급’ 선수로 주목받아 국가대표팀에 차출될 정도로 그의 기량은 출중하다. 지난 9월 27일부터 10월 11일까지 이란에서 개최된 ‘2005 세계영맨농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한 그는, 대표팀 성적은 4위에 그쳤지만, 대회 내내 펄펄 날았다. 현재 김 씨의 관심사는 오로지 하나.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프로팀에 입단해 농구선수로서 성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농구선수들이 김 씨처럼 국가대표팀 선수로 뛸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03년 9월 기준으로 대한체육회에 대학 남자농구팀 선수로 등록돼 있는 농구종목 체육특기자 수는 3백2명이었지만, 김 씨처럼 세계영맨농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선수는 김 씨를 비롯해 11명뿐이었다.

바늘구멍 통과한 이는 302명 중 11명

엘리트 체육 정책의 총화인 체육특기자 제도는 김 씨와 같은 학생 운동 선수들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제도다. 운동으로 뛰어난 기량만 보인다면 선수로서 대성할 수 있고, 일반 학생들처럼 학업에 열중하지 않아도 대학 간판까지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 대학마다 ‘제2의 홍명보’, ‘농구 대통령 허재’를 꿈꾸는 체육특기자 학생들로 넘쳐난다. 2003년 9월 현재 대한체육회에 선수로 등록돼 있는 대학 체육특기자는 51개 종목에 1만4천2백20명이다.


하지만 뜻하지 않는 부상이나 자신의 성장가능성에 대한 회의로 운동을 포기할 수도 있는 시점이 찾아올 수 있는 법. 그 때부터 감춰졌던 체육특기자 제도의 암울한 이면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ㅇ대 축구선수였던 박 아무개 씨(30세). 그가 고등학교 3학년으로 재학하던 때인 1993년, 축구 명문 ㅇ대는 그의 축구실력을 알아보고 스카웃을 제의해왔다. 축구로 성공하겠다는 그로서는 대단한 행운이었고 고민의 여지없이 ㅇ대 진학을 전격 결정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 불행이 찾아왔다. 입학이 확정된 1993년 11월, 해당 대학에서 연습경기 중 무릎연골이 파열되고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중상을 입었다. 오랫동안 해온 축구를 포기할 수 없어 2년간 재활을 해가며 축구부 활동을 계속했지만 1995년 끝내 축구를 그만뒀다.

그 이후로 박 씨의 삶은 1백80도 달라졌다. ‘운동선수’가 아닌 ‘학생’으로 졸업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중·고등학교 시절 축구만 해왔고, 대학진학 이후에는 이따금씩 수업에 들어왔던 게 전부였다. 시험 역시 “잘 부탁드립니다. 운동 때문에 수업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라고 시험답안지를 갈음하면, 주는 대로 학점을 받으면 그만이었다. 그로서는 뜬금없는 역사학을 ‘전공’한다는 것은 거대한 벽과 다름없었다. 잠시 휴학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체육특기자는 휴학을 할 수 없다는 학교규정 때문에 그것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다행히 박 씨 자신의 노력에 더해, 같은 학과 동기들이 시험 때마다 어느 부분을 공부해야 할지, 보고서는 어떻게 작성해야 할지 알려주는 등 학교생활에 큰 도움을 줘 무사히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결코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박 씨는 4년 전 ㅍ생명에 입사했고, 현재 보험영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박 씨의 사례는 체육특기자 학생이 ‘일반 학생’으로 대학 졸업까지 일궈낸 흔치 않는 경우다. 대부분 운동을 포기하게 되면 그들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거의 없게 된다. 이는 대학을 졸업해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수능변환표준점수 1백50점, 평균평어성적 1.2 이상이라는 최저학력기준을 무사히 통과해 대학에 입학하고, ‘틈틈이’ 대학수업에 들어간 후 졸업하더라도 사회에 적응하기 쉽지 않다. 대학에서 받은 학점은 학생 선수의 학력과는 무관하게 주어진 것이었고, 운동을 포기한 학생들에 대한 교육도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은 공부하러 오는 곳”

최근 축구를 그만 둔 박 아무개 씨(26세)가 그러한 사례다. 고등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박 씨는 청소년 대표까지 지낼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자랑했지만, 대학을 거쳐 부천을 연고로 하는 모 프로축구단에 입단하는 과정에서 점차 경쟁에서 낙오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2군으로 추락했고, 이후 실업팀을 전전하다 급기야 축구를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막상 운동을 그만 둔 박 씨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경제학 전공으로 대학을 졸업했지만 영어는 고사하고 컴퓨터 사용조차 쉽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대학 때까지 ‘운동으로 먹고 살 수 있다’라고 착각 속에 살아온 날들이 후회됐다. 현재 박 씨는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채 군복무차 지원한 교육청 산하 중등학교 코치 임용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이러한 현실을 두고 이용수 세종대 교수(체육학과)는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대학 본연의 임무를 강조한다. 이 교수는 “대학이야말로 공부하러 오는 곳이므로 공부할 능력이 되는 학생만을 받아들여야 하며, 그렇지 못한 학생은 프로팀으로 가도록 유도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또 체육특기자 학생들에 대해 엄격한 학력평가를 반드시 실시해야 한다는 게 이 교수 의견이다. 이 교수는 “학생선발시 수능점수 50점이라는 무의미한 선발기준을 없애고 2백점 이상으로 조정해야 하고, 재학시에는 일반학생과 동일하게 엄격한 학사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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