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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_'중국화'된 지식인들
학이사_'중국화'된 지식인들
  • 조명화 서원대
  • 승인 2004.10.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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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수천 년 세월을 중국과 부대끼며 살아왔으면서도 중국을 너무 모른다. 해방 후 50여 년이나 중국과 단절됐던 것이 근인이기는 하다. 그러나 청나라가 서방세력과 일본에 무너지면서, 그리고 그보다 2백여 년 전에 명나라가 여진족에게 무너지면서, 원명교체기에 새로 일어나는 명의 힘에 가탁한 이성계의 쿠데타가 성공하면서, 이렇듯 우리의 중국관이 멀리서부터 점점 비뚤어져 온 이유가 더 크다. 중국의 실체나 힘에 대한 인식에는 소홀한 채 관념적 명분론만 가지고 중국을 바라보았던 조선조 지식인의 태도는 딱하기 짝이 없을 정도였다. 자존심이었다고 아무리 미화하더라도 그건 주눅에 불과하다. 小中華라는 자부심은 우리나라의 중국화를 이상으로 내건 것이었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중국의 실체와는 먼 중국관만을 갖게 됐다.

수교 후 12년이 지난 요즘, 중국전문가들이 도처에 생겨났지만 그들의 중국관 역시 실체와는 너무 어긋나 있다는 감이 든다. 수교 직후에는 3백 년 전 선조들의 태도와 비슷하게 중국을 얕잡아보는 자세로 출발하더니, 최근에는 도리어 미래의 패권자 대접으로 바뀌어 간다. ‘아시아적 가치’ 운운하면서 중국의 고전에 관심을 기울이는데, 공맹에 대해 한 마디씩 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 위에 노장에 대해서도 약간 풀어놓을 줄 알면 제법 품위를 갖춘 사람으로 통한다. 

최근에는 중국의 신화까지 들먹인다. 도대체 우리가 알고 있는 신화라는 개념이 언제 중국에 있어본 적이 있다고 야단인지 모르겠다. 인도라면 인민의 삶을 지배하고 해결하는 신화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 힌두교에 여전히 많이 남아 있지만, 지금 중국의 신화라고 내세우는 것들은 모조리 권력과 관계있는 특정인의, 특수한, 한때의 기록들일 뿐 인민의 삶과 밀착했던 신화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것들인데 말이다.

한 마디로 딱하다. 공맹이나 노장에 대해 언급하면 분연히 떨고 일어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므로, 일단 중국의 고전 가운데 삼국지와 수호지에 대해 말해보자. 거기에 등장하는 인간들의 가치관이란 어떤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삼십육계로 대표되는 온갖 계략을 동원하고, 호기 있는 대장부란 살인과 인육 먹는 일이 다반사이며, 천하는 모조리 탐욕스런 차지의 대상일 뿐, 자연에 대한 호기심이나 외경스런 태도라곤 티끌만큼도 볼 수 없다. 삼국지나 수호지를 통해 중국인의 이와 같은 전통적 가치관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면 모르되, 오늘날 청소년의 가치관을 정립하는데 도움이 되는 고전이라거나 처세의 지혜가 담긴 보고라고 말하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대문호 대학자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중국의 고전을 들고 나서는 것을 보면 참으로 딱하다. 노후대책 때문에 삼국지에 손댔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황석영이 그나마 낫다고 말하고 싶을 지경이다.

우리의 중국관이 이처럼 수백 년을 겉돌고 있다면 그건 분명 시대 상황 탓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치우천황을 내세우는 요즘의 젊은이들이 더 걱정이다. 자기를 둘러싼 객관적 환경에 대한 이성적인 판단, 스스로를 돌아보고 평가할 줄 아는 안목과 지혜, 나와 남과의 연관성에 대한 통찰력, 이런 것을 도외시한 채 중국과 중국의 고전을 자기 입맛대로, 또는 자기 현시욕대로 상품화하여 내놓는 지식인들은 바로 중국화한 사람들이다. 가장 중국적인 사람들이다. 우리는 아직도 중국화를 이상으로 삼고 있는 모양이다, 바로 얼마 전까지는 서구화를 부르짖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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