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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연체로 불어가는 消滅의 장송곡
만연체로 불어가는 消滅의 장송곡
  • 박천홍 자유기고가
  • 승인 2004.10.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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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세이(1) - 바람

박천홍 / 자유기고가

가을 산에 오른다. 눈부신 계절은 정처 없이 길을 나서게 한다. 가을 바람은 유랑민의 등을 떠미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산 중턱에 이르자 암자로 길을 꺾어든다. 암자는 '風'자를 거꾸로 세운 듯한 형국이다. 隱者의 거처로는 제격이다. 스님에게는 그저 합장으로 길손의 예를 다할 뿐이다.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이 몸을 떤다. 그 소리가 갓 끓인 차 향처럼 그윽하다. 바람은 갇혀 있으면서도 제 존재를 알리고 싶은 모양이다.


목마르지 않아도 물을 마시고 싶은 게 산사의 정취다. 산사는 계곡 물을 잠시 가두어두고 지나는 이를 반긴다. 가을에는 소 발자국에 고인 물도 마신다고 했던가. 물을 뜨는 손이 무안할 만큼 맑다. 물 속에서 빛이 부서지며 흔들린다. 바람은 여기에도 제 자취를 남긴다. 온 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물은 차다. 울부짖고 탄식하고 비명을 지르며 산의 속살을 헤쳐왔을 물은 내 몸 안에서 고단한 생애를 마친다.


암자에서 발길을 돌린다. 이제 길은 제 높이를 드러낸다. 근육질의 화강암을 타고 오른다. 세월에 풍화된 단단한 물질이 발 밑에서 부서진다. 바람은 바위를 흔들지 못하지만, 살을 깎을 수는 있으리라. 호흡은 지도의 등고선을 닮아간다. 길이 가파를수록 호흡은 격렬해지고 공기의 밀도는 높아간다. 어디선가 까마귀 소리가 들려온다. 새의 바람칼이 공기의 저항을 물리칠 것을 생각하니 중력에 얽매인 인간의 숙명이 문득 슬퍼진다.


산정 아래서 잠시 발길을 멈춘다. 햇살이 따갑지만 바람이 이내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쳐준다. 가을 햇살은 살기를 품고 있지 않다. 대륙의 양쯔강 기단에서 불어오는 바람 탓이다. 그 때문일까. 옛 말에 가을볕에는 딸을 쪼이고 봄볕에는 며느리를 쪼인다고 했다. 육친에 끌리는 어머니의 심사를 탓할 바 아니다. 그저 한 뼘도 되지 않을 봄과 가을의 거리를 이렇게 분별해내는 민중의 지혜에 놀라워하면 그만일 뿐이다.


산을 등지고 아래를 내려다본다. 만산홍엽으로 추색이 완연하다. 봄 산이 화려체라면 가을 산은 만연체에 가깝다. 멀리 인간의 마을이 보인다. 아직 가을걷이를 하지 않은 들판을 바람이 빗질하고 있는지 황금빛으로 출렁인다. 올해는 풍년이란다. 지난봄에 바람할미가 비를 흡족히 뿌려주었는가. 아니면 고조선 적 바람을 다스렸다는 風伯이 수천 년의 후예들에게 風便으로 적선을 베풀었는가.


둔한 몸을 재우쳐 비탈길을 오른다. 단풍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는 장엄한 몰락을 향해 불타오르고 있다. 한 시절을 견딘 생명은 절정의 순간에 죽음을 맞이한다. 갈바람은 마지막 생명을 휘감아 잠시 허공을 맴돌다 대지 위에 떨구어준다. 천명을 다한 낙엽은 이제 風葬의 시간을 견디어 가리라. 모든 소멸하는 것들은 소리를 낸다. 발아래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바람이 風琴을 울려 죽음에 바치는 장송곡이리라.


산정에 선다. 바람이 분다. 죽음의 계곡을 타고 올라와서 그런지 서늘하다. 바람의 세기도 위계가 있다고 했던가. 영국인 보퍼트가 0에서 12까지 13등급으로 풍력계급을 나누었다는데, 이 바람은 몇 계급일까. 4급 건들바람이나 5급 흔들바람쯤일까. 非可視의 존재를 可視의 눈금으로 재려 하다니 우습다. 추상의 시간을 구체의 바늘로 분절하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일이 아닌가.


봄바람이 관능적이라면, 갈바람은 철학적이다. 관능이 밖으로 달뜸이라면, 철학은 안으로 잦아드는 일이다. 이 바람에 꼬리표를 달아준다면, 그저 쓸쓸한 바람이라고 부르는 것으로도 족할 것이다. 이 바람 앞에서 느닷없이 성경 한 구절이 떠오른다.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니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도다"('구약성경', '전도서' 1장)라는 솔로몬의 절규가 뼈를 저리게 한다.


누군가는 산을 '풍경의 영웅'이라 했다. 행동으로 가득 차 있는 이곳에서 허무에 사로잡히다니 바람이 마음을 비워 놓은 모양이다. 이제 저 풍진세상으로 귀환해야 하리라. 상승이 본능의 욕망이라면 하강은 운명의 수락이다. 내려가는 길은 언제나 허허롭다. 풍문으로 떠도는 속세가 가까워올수록 발은 엇갈리고 마음은 위태롭다. 골짜기가 감추어두었던 바람이 해일처럼 몰려온다. 風信이 발레리의 시를 일깨워준다.


"바람이 인다……살아야 한다. / 거대한 바람이 내 책을 펼치고 또 덮는다."('해변의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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