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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_ 오래된 문제지에 답 달기
학이사_ 오래된 문제지에 답 달기
  • 나기정 충북대
  • 승인 2004.10.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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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빨리 변한다고는 하지만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다. 그 말의 위력은 추억속의 세상과 손을 잡을 때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는 듯 하다. 결국 빠른 변화와 끈질기게 변하지 않는 것의 공존이 ‘지금’이라는 시간을 구성한다. 새삼스레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얼마 전에 서울 모 대학에 근무하는 교수님이 강의를 하기 위해 우리 대학을 방문했다가 내 연구실의 책꽂이에 꽂혀있는 표지가 바랜 자료집 한권을 꺼내들고 나눈 이야기 때문이다. “와, 이렇게 좋은 내용들이 여기에 실려있었네! 지금 상황들을 점검해서 여기에 있는 자료들과 비교하면 많은 답들이 나올 거야!”

그 자료집은 학창시절 일이년 전후의 선후배들이 모여서 ‘청년수의사회’를 만들고 수의학의 발전에 대한 고민을 체계화하며,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문제제기를 위해 만든 자료집이었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대표적인 국가에서 수의사를 만들기 위해 실시하는 교육의 내용과 수의사의 사회적인 진출방향 및 사회적인 기여도 등에 대한 것을 조사했다. 그것을 우리나라의 현실 및 제도와 비교하여 수의학 관련 영역별로 각자가 문제의 해답을 제시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었다. 자료집이 만들어 진 것이 약 18년 전의 일이다.

그 사이에 아시안게임, 서울올림픽, IMF 그리고 전국을 붉게 물들였던 월드컵 등이 지나갔다. 우리의 일상을 다양하게 변화시킨 큰 사건들이었다. 옛날 셈법으로 치더라도 강산이 두 번 정도 변했을 세월이다. 나 개인적으로도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고, 수의학이 발전해야 한다며 자료집을 만들어 교수님들을 불편하게도 하였을지도 모르는 학생의 신분에서 또 다른 영역의 답을 써야하는 교수의 신분으로 바뀌었다. 돌이켜 보면 어제의 일들 같지만 결코 짧지 않은 시간 속에서 우리나라의 수의학도 많은 발전과 변화를 위해서 노력해왔다. 5년제 수의학교육의 시도와 다시 4년제 교육으로의 환원이 있었고, 전국 수의과대학의 통폐합이 있은 후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노출되어 지금과 같은 9개의 국립대학으로 수의학과가 만들어졌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발전한다고 한다. 지금 흐르는 물이 어제의 물이 아니듯이 지난 과거의 교훈에서 얻는 것이 없다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그래서 먹이조차도 얻을 수 없는 다람쥐 쳇바퀴 돌리기가 될 수 있다. 체세포복제의 성공, 구제역과 조류독감의 성공적인 방제, 바이오산업에의 기여, 반려동물에 대한 현대인의 관심증가 등등이 어우러져서 국내 수의학도 많은 발전을 하였다. 이런 것들이 원동력이 되어 6년제 수의학교육을 다시 채택하게 되고, 졸업생이 처음으로 올해에 배출됐다. 이들의 사회진출과 국가적 기여도에 대한 점수가 나오려면 시간이 꽤 지나야겠지만 교육을 담당한 주체로서는 여간 마음 졸이며 지켜봐야하는 일이 아니다. 이제 다음의 화두는 수의과대학의 통폐합 문제일 것이다. 충남대학교와 충북대학교의 통합문제가 나오면서 수의학과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듯하다. 통합의 골격이 학생수의 감소와 교수진의 증가라니 전국의 수의사들이 관심을 가져 볼 만하다.

지나간 실패의 경험이 있으니 섣불리 결론을 내릴 문제도 아니다. 각론을 포함하여 충분히 논의해야 할 것이다. 문제해결 능력이 없는 학교와 교수에게는 학생이 오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학생들이 자료집을 만들어 찾아와서 답안지를 내놓으라고 하기 전에 문제를 풀고 싶은 것이 간절한 소망이다.

나기정/충북대·수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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