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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로 내면화한 원초적 관계
이데올로기로 내면화한 원초적 관계
  • 교수신문
  • 승인 2001.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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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데올로기 해체하기 -
『가족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권명아, 책세상 刊)와
『가족주의는 야만이다』(이득재, 소나무 刊)

김수영 / 고려대 강사·사회학

얼마 전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는 한 일본인 친구와 차를 마시다가 한국 TV의 드라마는 가족을 벗어난 이야기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 친구 말이 한국 드라마는 직접적으로 가족을 소재로 삼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트랜디 드라마에서도 스토리의 전개에 있어서 가족이 결정적이라는 점이 매우 독특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또한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질문이 가족과 관련된 질문이라고 하면서, 특히 어머니가 보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을 듣게 될 때마다 너무나 당혹스럽다는 말을 덧붙였다. 한 외국인의 이러한 지적은 현대 한국 사회에서 가족이 얼마나 신화화되어 있는가를 새삼 느끼게 해준다. 이처럼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가족은 절대적인 가치를 가진 신성한 무엇으로 여겨져 왔다. 최근 이러한 한국 사회의 가족신화를 본격적으로 비판하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

신화화한 우리의 가족주의

‘가족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한국 근현대의 문학작품들에 대한 검토를 통해 한국사회에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만연되어 있는 가족관념, 가족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지금까지 가족이데올로기에 대한 연구는 주로 근대 속의 전근대라는 층위에 국한되었고, 그 결과 근대를 구성하는데 작용하는 가족이데올로기의 문제는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또한 지금까지의 연구는 어떠한 기제들을 통해 가족이 가장 자연적이고 인간적인 가치로 본질화되는가라는 문제를 간과해왔다고 비판한다. 저자가 보기에, 오늘날 가족이데올로기는 소위 ‘근대적인 것’의 내용과 형식을 구성하는 과정에 깊이 침윤되어 있으며, 식민지, 전쟁, 분단에 이르는 한국사회의 고유성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면서 구성되어왔다. 이러한 관점에 입각하여 저자는 이 책에서 가족이 근대의 ‘상상력’과 근대 기획의 현실적 작동방식에서 주요한 가치범주이자 상상적 근거로 작동해왔다는 점을 꼼꼼히 밝히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근대 기획을 고찰하는 방법론으로서 가족관계 속에서 개인의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대한 프로이트의 ‘가족 로망스’ 이론을 적용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그동안 페미니즘 작업이 근대라는 역사적 구성물 속에서 개인을 특정한 정체성으로 구성하는 호명기제와 사회적 기제들이 근본적으로 젠더화된 것이라는 점을 규명했다고 평가하면서, 이 책의 분석에 페미니즘의 시각을 도입한다.

저자는 50년대 전후소설에서 전쟁에 대한 복합감정에서 비롯되는 죄의식과 자기구원 욕망의 딜레마가 해소되는 것이 주로 ‘모성’으로 상징되는 집으로의 회귀라는 점에 주목한다. 이들 소설에서 모성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자기 헌신과 사랑으로 승화한 어머니의 표상으로서 신화화된다.

또한 저자에 따르면, 박완서의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가 근대의 역사적 발현물로서의 한국전쟁과 ‘근대화’ 과정이라는 파시즘이 우리 사회의 생존법칙의 시원이자 가족의 기원이라는 점, 이러한 ‘지속되는 전쟁’에 의해 가족이 재생산되며, 동시에 가족은 ‘전쟁’을 재생산하는 기제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가족적’이라는 수사에는 ‘따뜻하고 화목한’, ‘신성불가침’의 가치라는 환영을 통해 타자에 대한 배제와 계급적이고 적대적인 차별화 그리고 침해할 수 없는 차별적 위계를 주장하는 허위의 정치학이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한국사회에서 가족은 철저하게 혈연적 배타성을 보이는 동시에 계급적 차별화의 재생산 기제로 작동해온 것이다. 그러나 가족주의 이데올로기는 가족을 계급과 성의 경계를 없애는 용광로로 의미화하며, 이러한 의미화 과정을 통해 가족 속에서 사회적인 것이 구축되는 방식과 사회 속으로 확대되어가는 가족의 이데올로기는 은폐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가족은 무역사적이고 본래적이며 자연스러운 것으로 이데올로기화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또한 한국의 근대 기획에서 주체의 변화를 추적한다. 즉 개화기 근대 기획에서 ‘소년’으로서의 주체가 70년대에는 ‘청년’으로서의 주체로, 80년대에는 ‘동지’로서의 집단적 주체로 자기규정의 변화가 있어왔다는 것이다. ‘소년’과 ‘청년’으로서의 근대적 주체의 자기규정이 부재하거나 부정한 아비라는 ‘기성세대’와의 결별의 방식으로 전형적인 가족 로망스를 형성한다면, ‘동지’로서의 집단적 주체의 자기규정은 ‘형제들’의 가족 로망스로 드러난다.

그리고 저자는 이러한 근대적 주체의 상상적 구조에서 새로이 구성한 정치적, 인간적, 사회적 관계의 모델에 있어 권력관계의 중심이 남성적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이런 점에서 90년대에 소위 ‘여성 작가’들의 텍스트들에서 형제애의 세계와 갈등의 목소리가 드러나는 것은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家國體制’

이 책은 한국에서 근대적, 또는 근대극복 기획들이 새로운 정치적, 사회적, 인간적 관계를 구성하는데 ‘가족모델’이 상상적 근거로 작동하는 방식과 차이점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문학작품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가족을 역사적으로 사유하는 연구방법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한국의 근대성에 대한 연구와 한국 가족에 대한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가족주의는 야만이다’는 현대 한국사회를 ‘家國體制’라고 주장하면서, 들뢰즈와 가타리의 욕망이론을 연구방법론으로 삼아 한국의 가국체제를 분석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사회는 ‘사회’가 부재함으로써 국가의 유지를 위한 모든 책임과 의무를 전적으로 ‘가족’이 떠맡고 있다. 그리고 가족이 맡아야 하는 책임과 의무는 다시 가족의 대표자인 ‘가장’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한국사회의 가국체제가 사회적 억압을 가족적 억압으로 대체해왔다는 지적이다.

국가의 복지책임 가족에 전가

또한 저자는 가국체제가 파시즘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즉 개발독재시절에 국가는 국가소멸이라는 공포심을 동원해 가족을 동원하더니,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는 국가부도라는 공포심을 동원해 가족을 동원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가국체제는 역사적으로 가족을 동원의 대상으로 삼아왔으며, 현재는 가족을 파시즘의 온상으로 만들고 파시스트적인 주체를 생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국가의 모든 책임을 가족에게 전가하는 것이 가족주의의 실체이며, 가족의 사랑, 가족간의 정이라는 말들은 실제로 가족주의를 강화하는 이데올로기적인 표현들이라고 본다.

저자에 따르면, 가족사회는 이러한 가족주의를 이용하여 가족을 신화화함으로써 사실은 가족을 억압하고 개인의 욕망을 거세하는 사회이다. 따라서 저자는 ‘가족사회’를 폐기하고 ‘시민사회’를 건설함으로써 가국체제를 해체하는 것이 욕망의 탈주전략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각 개인의 욕망, 가족으로서 누려야 할 각 시민의 권리를 국가에 요구하는 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한국사회에서 국가가 산업화 이래로 복지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고 가족주의를 이용하여 그 책임을 전적으로 가족에게 떠맡겨 왔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국가가 유교의 가족주의에 내재하는 위계제와 국가주의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또한 가족을 강조하는 시기는 위기의 시기로서 파시즘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현재 한국사회에는 일상적으로 파시스트적 주체를 생산하는 거대한 매카니즘이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은 이 책이 갖는 중요한 의미라고 생각한다. 다만 한국사회에 대한 들뢰즈와 가타리의 욕망이론의 적용이 다소 거칠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으며, 한국사회에서 가장이 짊어지고 있는 책임과 의무의 부담만을 강조하면서 실제로 여성이 가족을 책임지고 있는 부분에 대한 고찰이 부재한 점이 못내 아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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