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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43] “권위를 부정하고 맞서 싸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나키스트”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43] “권위를 부정하고 맞서 싸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나키스트”
  •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 승인 2021.05.03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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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스티앙 포르

 

‘라 뤼세’(La Ruche)

 

예술가들이 많이 사는 곳으로 유명한 파리 15구의 몽파르나스에 ‘벌집’이라는 뜻의 ‘라 뤼세’(La Ruche)라는 특이한 건물이 있다. 지금은 약 50 명의 예술가의 작업장과 전시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같은 이름의 기숙학교가 20세기 초엽에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50킬로미터 떨어진 랍부예(Rambouillet)에 있었다. 1904년 1월부터 1917년 2월까지 13년간 운영된 이 학교는 아이들이 아주 어려서부터 자신의 자율성을 장악하고 연대감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자유를 추구하도록 열렸다. 자유롭고 형제적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자유의 실천, 평등주의적이고 자율주의적 사회적 맥락에서 개인이 평등주의적이고 자율주의적 가치와 행동 양식을 발전시킨다는 것을 실제로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그 설립자인 아나키스트 세바스티앙 포르(Sébastien Faure, 1858~1942)는 러시아의 소설가 레프 톨스토이(Lev Tolstoy), 프랑스의 교육가 폴 로뱅(Paul Robin, 1837~1912), 스페인의 교육가 프란시스코 페레르(Francisco Ferrer)의 자유교육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특히 로뱅이 1869년에 체계화한 통합교육이론을 1880년부터 1894년까지 켐푸이스(Cempuis)에서 시도한 실험교육의 영향이 컸다. 어린이의 예술적 방향을 개발하고 어린이의 욕구를 고려하며 남녀 공학을 하는 것이 기본규칙이었고, 매년 여름 등 2개월 동안 바다로 데리고 가는 것을 포함한 육체적, 지적 교육은 19개의 서로 다른 워크숍으로 보완되어 적어도 한 번의 완전한 직업(제빵, 인쇄, 사진, 벽돌 등) 형성을 제공했다.

 

세바스티앙 포르(Sébastien Faure, 1858~1942)
세바스티앙 포르(Sébastien Faure, 1858~1942)

 

교육에 대한 포르의 견해는 인간의 모든 면이 발전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육체적, 정신적, 도덕적이라는 세 가지 측면을 확인했다. 그는 남성이나 여성이 신체적 수작업을 수행하고 최소한의 문화를 가지고 생각하고 아이디어를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존중하고 상호적이며 평등하고 자유로운 환경에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그는 강의 투어와 지역 사회의 노동과 클럽, 협회, 노동조합, 협동조합 등이 모금한 돈으로 당시 꽤 큰 농가, 과수원, 숲, 초원 및 경작지가 있었던 시골 지역에 25헥타르의 토지를 임대하고 3년 만에 자급자족을 이루어 내었다.

 

육체와 정신 함께 가꾸는 아나키즘 아카데미

 

처음에는 20명으로 시작했으나 뒤에 약 40명의 소년(6~13세)과 20명의 도우미가 포함되었다. 모든 학생은 자발적으로 기부하고 무료로 입학했다. 포르의 협력자들은 지역 안팎에서 살았으며 특정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했다. 그들은 지역 사회의 문제와 논란을 조사하고 관련 결정과 옵션을 해결하기 위해 때때로 소년들의 자유롭고 비공식적인 면전에서 매주 회의를 열었다. 모든 것은 자율적이었고, 모든 사람은 자신의 재능을 알고 자발적으로 의무를 받아 들였다. 개인의 책임을 지배하는 것은 그의 능력과 양심뿐이었다. 교육의 목표는 건강하고 균형 잡히고 개방적이며 배운 수작업 기술을 생산하는 교육 및 훈련을 고안하는 것이었다. 요컨대 미래의 남녀를 생산하는 것이다. 따라서 야외 생활, 건강관리 및 위생, 건강한 식단, 경쟁과 무관하게 즐거움만을 위한 여러 스포츠에 참여하고, 걷기와 춤에 중점을 두었다. 이 모든 것 외에도 과학적 사고방식에 따라 비교리적 관찰력과 비판적 교수진을 육성하기 위한 합리적 학교 교육이 있었다. 그리고 성인과 어린이 사이의 토론, 성교육, 처벌이나 상벌의 부재가 특징이었다.

다수의 방문객들은 아이디어와 경험을 교환하고 기여를 높이고 식민지와 주민들을 풍요롭게 하는 기술을 모색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여름철에 아이들은 길고 흥미로운 그룹 여행을 했고 합창단원들은 스위스나 알제리와 같은 먼 곳으로 모험을 떠났다. 이 모든 것이 다른 지역과 외국에서 새로운 실험과 아나키즘적 아이디어를 홍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1914년부터 포르는 1천명 이상의 구독자를 끌어 들였지만 10호로 끝난 잡지와 함께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학교는 문을 닫았다.

 

주간지 '르 리베테르(Le Libertaire)'
주간지 '르 리베테르(Le Libertaire)'

 

프랑스 아나키즘 교육의 선구자이자 아나키스트 운동의 주역이었던 포르는 부유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나 예수회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아버지의 죽음 이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보험 회사에서 일했고 군 복무 후 영국에서 1년을 보낸 뒤 결혼하여 보르도에서 살았다. 그 뒤 사회주의자가 되었으나 르클뤼와 크로포트킨의 글을 읽고 아나키스트가 되었다. 그 뒤 가족과의 인연을 끊고 그와 뜻을 달리한 아내와도 헤어진 뒤 1888년에 파리로 이주하여 죽을 때까지 대중 연설자로서 전국을 순회하며 아나키즘 사상을 전파했다.

그는 독창적인 아나키스트가 아니라 여러 경향의 아나키즘을 망라하는 종합적인 아나키스트였다. 그는 1890년대 후반의 새로운 생디칼리스트 운동에 확신이 없었지만 그 자신은 활동적인 노동조합원이었고, 개인주의자는 아니지만 개인주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였으며, 폭력적인 방법을 지지하지 않았지만 그 방법을 사용한 사람들에게 공감했다. 그는 결코 단순한 안락의자 이론가가 아니라 자주 수색, 체포 또는 기소를 당했고 때때로 그의 활동으로 인해 투옥되었다. 국가, 자본주의, 그리고 무엇보다도 종교에 대항하는 투쟁을 전파한 그는 1895년에 루이즈 미셸과 함께 주간지 <르 리베테르(Le Libertaire)>를 시작해 리버테리안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고 1898년 이후에는 드레퓌스를 위해 일했다. 1903년부터는 피임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1904년부터는 위에서 설명한 교육에 종사하고 제1차 대전 중에는 평화주의와 반군사주의 사상을 옹호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백과사전 쓰고 노선 종합해낸 아나키즘 큰손

 

1920년대 후반에 포르는 종파주의에 반대하고 개인주의적 아나키즘, 집단주의적 아나키즘, 생디칼리슴적 아나키즘이 공존할 수 있는 '종합 아나키즘'(Synthesis anarchism, 종합주의자 아나키즘synthesist anarchism이라고도 한다)을 옹호했다. 종합 아나키즘이란 참여자에 대한 다양성을 추구하고 ‘형용사 없는 아나키즘’의 원칙에 따라 서로 다른 경향의 아나키스트에 합류하려는 아나키스트 조직의 한 형태를 말한다. 포르에 의하면 “이러한 흐름들은 모순되지 않고 보완적이며, 각각 아나키즘 내에서 역할을 했다. 즉 대중 조직의 힘이자 아나키즘의 실행을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서의 생디칼리슴적 아나키즘, 각자의 필요에 따라 노동의 과실을 분배하는 것에 근거해 제안된 미래 사회로서의 사회주의적 아나키즘, 그리고 억압의 부정과 모든 면에서 그들을 기쁘게 하려는 개인의 발전에 대한 개인의 권리를 긍정으로서의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의 공존이다.” 종합 아나키즘은 1880년대부터 소위 ‘형용사 없는 아나키즘’을 비롯하여 여러 나라에서 제안되었으나, 이탈리아 아나키스트 말라테스타(Errico Malatesta, 1853~1932)와 함께 포르가 가장 중요한 추진자라고 할 수 있다.

 

에리코 말라테스타(Errico Malatesta, 1853~1932)
에리코 말라테스타(Errico Malatesta, 1853~1932)

 

그러한 추진의 일환으로 그는 1926년부터 1934년까지 수많은 전문가를 동원하여 거의 3천 쪽에 이르는 방대한 『아나키스트 백과사전(L 'Encyclopedie Anarchist)』 4권을 편집하고 발간했다. 그 사전에서 러시아 아나키스트인 볼린(Volin, 본명은 Vsevolod Mikhailovich Eikhenbaum, 1882~1945)은 ‘종합 아나키즘’ 항목에서 “운동을 통합하기 위해 모든 진지한 아나키스트들이 수용해야 하는 세 가지 핵심 아이디어”를 “1. 사회 혁명의 진정한 방법론을 가리키는 생디칼리즘 원칙의 확실한 수용. 2.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조직적 기반을 마련하는 사회주의적 아나키즘의 원칙의 확실한 수용. 3. 개인의 완전한 해방과 행복이 사회 혁명과 새로운 사회의 진정한 목표가 된다는 개인주의 원칙에 대한 확실한 수용”이라고 했다. 포르 자신은 “권위를 부정하고 그에 맞서 싸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나키스트”라고 했다.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일본 오사카시립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영국 노팅엄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연구하고, 일본 오사카대, 고베대, 리쓰메이칸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영남대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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