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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 인정하며 동시에 보편적 인식 가능할까
다름 인정하며 동시에 보편적 인식 가능할까
  • 김재호
  • 승인 2021.05.07 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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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왜 당신들만 옳고 우리는 틀린가』 다케다 세이지 지음 | 박성관 옮김 | 이비 | 320쪽

니체·후설이 극복하는 존재, 인식, 언어 문제 
자본주의의 해악 극복할 ‘철학’을 재생 

너와 내가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서로 인정할 수 있는 공통의 사상이 있을까. 특히 주관과 객관의 일치 문제는 여전히 어렵다. 다름의 차원은 도덕, 종교, 신, 우주의 문제로까지 확장된다. 이 책의 부제는 ‘인간과 사회를 사유 하기 위한 새로운 철학 입문’이다. 저자는 재일조선인 2세인 다케다 세이지다. 본명은 강수차(姜修次)이다. 필명인 다케다 세이지는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죽청(竹靑)'에서 따왔다. 그는 현재 와세다대 명예교수다. 

다케다 세이지는 와세다 대 명예교수다. 재인조 선인 2세로 본명은 강수차(姜修次)이다. 사진=도서출판 이비 

다케다 세이지는 철학의 역할과 본질을 “정신의 참된 전개를 위한 불씨”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 불씨가 희미해져 다시 불타오르게 할 필요가 있다. 보편 인식이 불가능한 것은 철학의 가장 중대한 수수께끼 세 가지 때문이다. 존재, 인식, 언어. 이 세 가지에 대한 수수께끼를 극복해 보편 인식의 가능성으로 나아가보려는 게 바로 다케다 세이지의 저술 의도다. 종교와 철학을 비교해보자면, ‘임의의 이야기 대 보편성’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가 임의의 이야기로 그 세계를 확장해간다면, 철학은 “보편적 인 공통 이해를 목표로 삼는 사고 방법”이다. 

그 출발점은 데카르트(1596∼1650)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제1의 원리이다. 그런데 데이비드 흄(1711∼1776)은 이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불가능하다는 강력한 주장을 내세운다. 인류의 보편 인식이 가능한지 회의론적 시각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 책의 출발은 그 유명한 고르기아스 테제와 상대주의다. 이는 둘 중 하나가 진리라는 전제 하에, 한쪽이 진리가 아니라는 걸 증명해 다른 쪽을 진리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고르기아스 테제를 직접 보자. 1) 무릇 그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다. 혹은 존재는 증명되지 않는다. 2) 설령 존재가 있다 해도, 결코 인식되지 않는다. 3) 설령 존재가 인식되었다 해도, 결코 언어에 의해 제시할 수 없다. 

회의론과 상대주의 극복 

다케다 세이지가 제시하는 해법은 니체(1844∼1900)의 ‘본체론 해체(다케다 세이지식 용어)’와 후설(1859∼1938) 의 ‘현상학적 환원’이다. 칸트(1724∼1804)는 ‘물 자체’를 상정함으로써 세계에 대한 완전한 인식이 존재한다고 봤다. 하지만 인간은 그런 완전한 인식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니체는 물 자체와 완전한 인식을 제거한다. 카오스의 세계에서 개별 존재로서의 세계만 있는 것이다. 여기서 올바른 세계 인식은 제거된다. 그리고 남는 건 세계 분절이다. ‘완전한 세계 인식(전지)’을 부정하면, 고르기아스 테제 역시 제거될 수 있다. 

후설은 ‘주관과 객관의 일치(조우)’를 부정한다. 그는 ‘내재와 초월’의 일치를 주장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현상학적 환원이다. 이를 통해 외부에 있는 객관과 내부에 있는 주관의 일치라는 오랜 고민은 제거된다. 대신, “인식 문제의 해명을 위해 의도적으로(=방법적으로) 일체의 인식을 주관 속에서 구성되는 ‘확신’이라고 간주한다”는 것이다. 외부 물체(원인)가 있어서 내가 지각(결과)한 다는 전통적 개념을 전복시키는 셈이다. 

사회정치철학의 측면에서도 올바른 혹은 보편적인 세 계관은 불가능했다. 마르크스주의는 철학을 넘어 정치경 제학적으로도 큰 의미를 갖고 있으나 그만큼이나 많은 반대파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끝내 마르크스의 이상은 실현되지 못했다. 적어도 아직까진. 이후 나타난 포스트모던주의는 인간을 더욱 파편화된 존재로 해체시켰다. 

다케다 세이지는 근대 시민사회를 형성시켰던 자유의 원리는 유럽 이외의 국가들에겐 오히려 폭력의 원리로 작용했다고 본다. 이런 흐름 속에서 보편 인식은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저자 다케다 세이지는 우리가 기댈 수 있는 단 하나의 보편 원리로서 사회 원리는 “자유로운 시민 사회라는 이념뿐”이라고 책의 마지막에서 밝혔다. 다케다 세이지는 어린이를 포함해 더 많은 사람들이 철학 테이블에 앉기를 바란다. 그래야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인식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전통적인 의미의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근대 시민사회 이념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기 위해선 부의 분배와 인구 억제가 관건이라고 주장한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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