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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목적 SCI 신봉 높아져 … 단기 과제 양산 우려
맹목적 SCI 신봉 높아져 … 단기 과제 양산 우려
  • 허영수 기자
  • 승인 2004.10.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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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기획] 대학가에 불어닥친 승진기준 강화 바람 - 교수업적평가 분석 

<편집자주> 교수들의 교육·연구 성과가 세밀하게 관리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연구논문 실적에서부터, 강의평가 점수, 학생 상담 횟수, 언론기고, 학내 행사 참여에 이르기까지 세세히 기록되고 점수화돼 승진과 재임용에 반영되고 있다. 해마다 국내·외저명학술지에 논문 여러편을 게재하기 위해, 정작 중요한 장기적인 과제들에는 손도 못대고 있는 게 교수사회의 현실. 그러나 교수들의 직무는 촘촘히 계량화됐지만, 교수 자질에 대한 주관적 평가 등 임명권자가 재량권을 남용할 수 있는 평가항목들은 여전히 굳건히 버티고 있는 실정이었다. 교수신문이 최근 전국 4년제·전문대 교원인사규정·업적평가규정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상당수 대학들의 업적평가에서 교육·학문 등의 객관적 항목 뿐 아니라, 주관적인 요소로 가득한 평가항목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부지불식간에 SCI를 통하지 않고서는 대학에 머무를 수 없는 교수사회가 됐다.

교수신문이 최근 최순영 의원(민주노동당)이 교육인적자원부로부터 건네 받은 각 대학의 교원인사규정·업적평가규정 등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02년 계약제 시행 이후 바뀐 대부분 대학들의 업적평가규정이 승진의 필수요건으로 일정정도의 SCI(A&HCI, SSCI 포함) 논문 편수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각 대학별로 개정 이전에 임용된 교수들과 개정 이후에 임용된 교수들의 승진 기준을 달리하는 양상도 나타났다. 기존에 재직하고 있는 교수들의 승진·재임용 기준을 한 단계 높이는 한편, 신규로 임용되는 교수들에게는 그 보다 높은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것. 기준 강화에 대한 재직 교수들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과도기를 두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기간제로 임용된 교수, 2002년 이후에 임용된 계약제 교수, 업적평가규정이 개정된 이후에 임용된 교수 등 임용 시기별로 각기 다른 승진·재임용 기준을 '경과조치'를 통해 마련하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 나타났다.

전남대의 경우, 기간제 부교수의 교수 승진 요건으로 연구실적 500점 이상을 제시한 반면, 자연계 계약제 부교수의 승진요건으로는 SCI급 국제지 논문 게제 300점을 포함해 연구실적 500점 이상을 제시했다.

중앙대는 개정전에 임용된 자열계열 부교수일 경우, 2005년 2월 28일까지는 종전의 규정에 따르도록 했지만, 내년 3월 이후 승진대상자부터는 국내전문학술지 논문 3편 이상 또는 JCR(Journal Citation Reports) 논문 2편 이상(논문환산율 50% 이상, 승진심사 잔여기간 2.5년)이라는 승진 요건에 따르도록 했다. 반면, 개정 후에 임용된 자연계열 신임교원의 교수의 승진요건은 일층 강화돼, JCR 논문 환산율이 140%이면서 국내외전문학술지논문이 5편 이상돼야 교수로 승진할 수 있다.

지난 2002년 일찌감치 승진·재임용 기준을 손질한 이화여대는 지난해까지 승진·재임용에 구업적평가규정을 적용했지만, 올해부터는 신업적평가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가령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 분야의 부교수의 교수 승진은 'SCI A·B급 논문 5편'이라 기준을 충족해야 승진이 가능하도록 했다.

승진기준을 해마다 달리하는 한양대의 경우, 2005년 8월 31일 이전의 승진·재임용 대상자에 대해서는 2002년 3월 규정을 적용하고, 2005년 9월 이후의 승진·재임용 대상자와 2003년 9월 이후 신규채용된 계약제 교수는 2003년 9월 규정을 적용하고 있는 중이다.

연구실적을 환산하는 방식과 기준이 대학별, 전공별, 분야별로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1∼2년 전 사이에 신규로 임용된 학자들, 아직 정년을 보장받지 못한 교수들에게 한층 강화된 기준을 들이대고 있는 것이 사실.

이는 연구실적이 부진한 교수들에 대한 외부의 따가운 시선, 대학의 경쟁력이 SCI 논문수로 평가되는 교육계의 분위기뿐만이 아니라, 교육·학문 등 객관적인 사유가 아니고서는 교수를 쉽사리 자를 수 없게된 최근의 교수재임용 관련 법규 변화에서도 기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과거에 기간이 만료되면 당연 퇴직시킬 수 있는 교수재임용제로 교수들에 대한 관리가 충분히 가능했던 것과 달리, 이제부터는 승진·재임용 기준 등을 강화하지 않고서는 교수 통제, 재임용 탈락 등이 용이하지 않게 된 것.

대학들의 업적평가 강화가 신진학자들의 신분불안으로 이어질지, 내실있는 연구경쟁력 강화로 이어질지 미지수지만, SCI 논문 증가에 대한 맹목적인 신봉과 그에 뒤이을 부작용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할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한때, 미국에서 유행했던 'Publish or Perish'의 구호도 '쓰레기 논문'만 양산했다는 비판 속에 사라졌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경우 논문의 양보다 질을 중심으로 평가하고, 특히 인문사회게의 경우 대학출판부에서 단행본을 출간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정년보장심사 기준으로 평가하는 등 우리가 전혀 다른 평가 기준을 적용하고도 있다.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 [표] 주요 대학 교수 승진 필수요건(인문·사회 계열)

최근 2년 사이에 승진기준이 대폭 강화됐다. 살아남기 위해 장기적이고 공력이 많이 드는 연구보다 단기 과제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 'SCI 논문 증가'라는 외형적 성장을 마냥 반길 수만 없는 것은 그 이면에 '학문의 위기'가 가로놓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 승진대상자 교수 승진의 필수 요건
서울대 인문대학 부교수 ·학술진흥재단 등재(후보)지 발표논문 또는 이에 상응하다고 인정되는 연구논문 및 기타 연구실적이 500점 이상인 자로서
·탁월한 연구실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단독학술저서 1종 이상, 혹은 단독학술번역 1종 이상일 때
고려대 사회과학 부교수 ·학술진흥재단 등재(후보)지 혹은 SCI 또는 SSCI 논문, 혹은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해외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이 500점 이상일 때
연세대 인문·사회 계열 부교수 ·학술논문 5편
성균관대 인문분야 부교수 (연간 강의 학점수 12∼14학점) ·국내 1등급 이상 학술지 논문 4편
경희대 사회분야 부교수 (연간 강의 학점수 12∼14학점)

·국내 1등급 이상 학술지 논문 4편(국제 1·2등급 논문 1편 포함)

서강대 인문·사회 계열 부교수 (2001∼2002 임용자) ·총점 800점 중 국내 A급 이상 450점 포함
경북대 인문·사회 계열 부교수 · 국내 1급 이상 학술지에의 게재 실적이 550점 이상이고, 연구실적이 800점 이상인 자
· 신규임용 이후 누적기준으로 국내 1급 이상 학술지에의 게재실적이 1,320점 이상이고 연구실적이 2,040점 이상인 자
전북대 인문·사회 계열 부교수 ·국내저명전문학술지 등급 이상 논문게재실적이 500점 이상인자(국내 전문학술지 게재 논문 1편 인정)
  부교수 ·연구실적물 400%
  부교수(2002년 이후 임용된 계약제 교수) ·국제지 또는 전국지 논문 4편 이상 포함

※ 출처 : 각 대학 교원인사규정·업적평가규정, 국회 교육위원회 최순영 의원(민주노동당) 국감자료,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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