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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미얀마 항쟁 3개월, 봄은 오고 있는가
[글로컬 오디세이] 미얀마 항쟁 3개월, 봄은 오고 있는가
  • 장준영 한국외대 동남아연구소 연구교수
  • 승인 2021.05.05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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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한국외대 동남아연구소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이 말은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방화(Localization)의 합성어다. 세계 각 지역 이슈와 동향을 우리의 시선으로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국내 유수의 해외지역학 연구소 전문가의 통찰을 매주 싣는다. 세계를 읽는 작은 균형추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국제사회의 승인을 받고자 애쓰고 있는 미얀마 공동통합정부(NUG)가 90년대 미국 망명정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거리의 시민들과 공동 투쟁 전략과 노선 강구해야 한다. 사진은 지난달 26일 미얀마 양곤에서 반군부 시위에 나선 미얀마 시민들의 '세 손가락 경례'. 사진=EPA/연합
국제사회의 승인을 받고자 애쓰고 있는 미얀마 공동통합정부(NUG)가 90년대 미국 망명정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거리의 시민들과 공동 투쟁 전략과 노선 강구해야 한다. 사진은 지난달 26일 미얀마 양곤에서 반군부 시위에 나선 미얀마 시민들의 '세 손가락 경례'. 사진=EPA/연합

 

국가 폭력과 시민 저항이 꼬박 3개월을 지나고 있다. 사망한 시민의 수는 800명에 가까워졌고, 체포나 구금된 자의 수도 3천 명 이상이다.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은 4월 24일 정상회담이 아닌 국가지도자 특별회담을 개최하고 5대 사안에 합의했다. 그간 아세안의 역할과 활동을 고려할 때 진일보한 성과로 볼 수 있으나 미얀마 군부가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않으면 합의안은 휴지 조각이 될 수 있다. 누가 특사가 될 것인지, 언제까지 어떠한 방법으로 현 상황을 종식할 것인지, 궁극적으로 미얀마를 옥죌 방법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민 아웅 흘라잉(Min Aung Hlaing) 군사령관은 현 상황이 종료된 뒤 아세안 특사를 수용하겠다며 애초 합의를 뒤엎을 기세다.

2011년, 군부는 정전협정을 비롯한 주요 현안에만 정치적 권한을 행사한다는 조건으로 반세기 만에 통치권을 내려놓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예상보다 빨리 그들의 기득권에 대한 문민정부의 도전이 가시화하자 무력을 전면에 내세워 군부 주도의 무소불위 사회로 환원시키려고 한다. 군부는 스스로 판도라의 상자를 다시 열었다. 군부의 과오에 침묵했던 국민은 거세게 저항을 시작했다. 각 직능단체는 파업으로 시민불복종운동(CDM)을 전개했고, 여전히 군부가 두려운 국민은 소극적이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 의지를 이어간다. 다만 식자층과 고위 관료의 가족을 비롯하여 군부에 포섭된 일부는 밀고자(dalang) 역할도 하고 있어 전 세대를 아우르는 반군부 연대는 쉽지 않아 보인다.

 

‘#SAVE MYANMAR’를 위한 안팎의 조건들

 

미얀마 현대사에서 독재체제에 도전한 국민의 저항 가운데 소위 ‘8888’혁명으로 불리는 1988년 민주화 운동이 우리에게는 가장 익숙하다. 한때 전국적으로 100만 명 이상의 시민이 군부정권을 타도하기 위한 시위를 벌였다. 일부는 민주화의 ‘제 3의 물결’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해석하기도 했으나 26년간의 군부독재를 무너뜨리기에는 국민의 행동 양식과 의식 수준 등 모든 면에서 성숙하지 않았던 정황을 고려할 때 외부의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는다.

헌팅턴(S. Huntington)과 쉐보르스키(A. Przeworski)는 각각 1인당 국민소득이 3천 달러, 6천 달러를 돌파할 경우 독재정권이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는 소위 근대화 이론을 강화하는 주장을 했다. 1988년과 2021년 기준 미얀마의 1인당 국민소득은 각각 190달러와 1천400달러 수준으로 두 학자의 기준에 한참 못 미친다. 그러나 여기에는 숫자의 함정이 존재한다.

 

사진=EPA/연합
사진=EPA/연합

 

정치적 개혁과 시장 개방에 따른 컨벤션 효과로 볼 수 있으나 2011년부터 2018년까지 미얀마의 연평균 성장률은 세계 평균(2.5%)보다 훨씬 높은 6~8%대였다. 과거 군부정권에는 생활 수준의 향상이 없었으므로 개혁 이후 경제성장으로 인한 체감은 성장 수치보다 몇 배 더 높았을 수도 있다. 또한, 군부정권과 비교하여 정치적 자유화의 수준도 높아져 각 기관에서 발표하는 민주주의 지표도 개선되었다.

 

MZ세대의 시대정신 방관하는 국제기구

 

전례 없는 정치발전과 경제성장 속에서 1980년대 중후반 이후 출생자들은 미얀마의 사회구조를 바꾸기 시작했다. 소위 MZ세대는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사회적 가치와 현실적 문제에 관심을 표명하며, 심지어 성인(聖人)과 같은 아웅산수지를 비판하는 대범함도 보였다. 그들은 군부의 잔학성을 경험하지 못했고, 군부 통치는 과거의 유산이자 언젠가는 극복하고 청산해야 할 ‘거악(巨惡)’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계를 과거로 돌리려는 군부의 시도는 MZ세대의 시대정신(Zeitgeist)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이번 사태를 두고 ‘유엔 무용론’이 제기되었다. 미얀마 국민은 유엔의 보호책임(R2P) 발동과 평화유지군의 투입을 간절히 요청했다. 이미 2000년대부터 중국과 러시아는 안보리 내 미얀마 문제에 한해서는 ‘반대를 위한 반대’ 원칙을 고수해 왔다. 특히 중국은 국가전략으로서 일대일로와 그 일환으로 추진 중인 미얀마 내 인프라 개발사업의 안전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미얀마의 급변을 원치 않는다. 중국은 가치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외교 기조를 유지하므로 미얀마 정부가 ‘친서방화’하지만 않는다면 정권의 유형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70일 동안 겨우 700명이 죽었을 뿐이다. UN은 천천히 해라. 아직 '수백만명'이나 남았으니." 소셜을 중심으로 퍼진 미얀마 청년의 메시지. 사진=트위터 캡처.
"70일 동안 겨우 700명이 죽었을 뿐이다. UN은 천천히 해라. 아직 '수백만명'이나 남았으니." 소셜을 중심으로 퍼진 미얀마 청년의 메시지. 사진=트위터 캡처.

 

나아가 국제질서 속에서 미국의 권력은 약화되는 한편, 중국은 미국의 유력 경쟁국으로 부상 중이다. 이에 미국은 외교안보정책의 비용을 동맹국에 할당하는 패권 축소전략으로 중국을 견제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국가전략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는 미얀마는 경쟁하는 두 강대국으로 인해 더 많은 기회를 부여 받아 왔다. 미국에 종속되었던 냉전 시기 한국 군부정권과 미얀마 군부는 분명 다르다. 따라서 미얀마 군부는 굳이 중국에 의존할 필요가 없지만, 미국의 압력 강도가 높아질수록 중국으로 향할 것이다. 그 반대도 언제든지 가능하지만, 미국이 군부를 품을 가능성은 작다.

 

국민통합정부는 민족과 진영 아우를 수 있을까

 

한편, 지난 4월 16일 민주진영은 국민통합정부(NUG)를 선포했다. 구금 중인 윈민 대통령과 아웅산수지 국가고문이 같은 직위에 임명되었으므로 전임 정부의 틀이 유지되는 것으로 보인다. 소셜에서 NUG를 지지하는 사진과 퍼포먼스가 확인되지만, 국민적 수준은 아닌 것 같다. NUG에 포함된 내각 중 로힝자족 학살에 동의한 인물도 있고, 아웅산수지에 대한 소수민족의 여론도 호의적이지 않다. 아웅산수지 정부에서도 배척 받은 소수민족이 단지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NUG가 추진하는 연방군에 가담한다는 것은 가당찮다. NUG가 단시일에 버마족과 소수민족 간 뿌리 깊은 반목과 갈등을 봉합할 역량을 갖추었는지도 궁금하다.

NUG는 국민민주주의연합(NLD)의 전철을 밟아 국제사회에서 합법적 정부로 승인 받는데 천착하는 듯 하다. NUG가 목적을 달성한다면 미얀마 땅을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군부가 순순히 정치 권력을 내려놓을 것인가? 1990년 미국에서 설립됐던 민주진영의 망명정부는 서방국가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내적 동력을 상실하여 실패했다. 정치적 정통성은 국내를 벗어나지 못하고, 국제관계는 국익에 따라 작동한다는 것을 여과 없이 보여준 사례였다. 지금 NUG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 행보보다 거리의 시민과 공동 투쟁할 전략과 노선을 수립하고 이를 이행하는 것이다.

 

 

장준영

한국외대 동남아연구소 연구교수

한국외대에서 미얀마 군부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미얀마를 포함한 동남아의 정치변동과 국제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한국외대 동남아연구소 책임연구원, HK연구교수를 지냈다. 대표저서로는 『하프와 공작새: 미얀마 현대정치 70년사』(눌민, 2017)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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