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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계 풍경_‘화가와 여행’展(서울대박물관, 9.9~10.30)
예술계 풍경_‘화가와 여행’展(서울대박물관, 9.9~10.30)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4.10.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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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를 이어준 ‘길 떠나기’

▲동문송별도 ©
16세기 독일화가 뒤러의 이탈리아 여행이 독일회화세계를 변화시킨 계기가 됐던 것처럼, 화가에게 여행은 새로운 영감의 세계로 들어서는 문이다. 지금 서울대 박물관에선 ‘화가와 여행’이란 주제로 한국 전통미술 46점과 현대미술 29점을 한 자리에 모아 전시하고 있다. 조선중기 화가 조속이 상상 속을 여행한 ‘策杖圖’부터 시작해 유근택, 김천일 등의 젊은 화가들로 이어지는 이 범시대적인 테마공간은 동양과 서양, 구상과 추상, 이데아와 현실 등 다양한 층위들이 겹쳐있지만, ‘여행’이라는 공간 속에서 묘한 연속성과 친화력을 내뿜고 있어 색다른 감흥을 안겨준다.

둥근달이 뜬 밤에 한 인물이 동자와 함께 멀리 보이는 사찰을 향해 ‘月行’하는 장면을 표현한 조선중기 조속의 ‘책장도’, 매화를 찾아나선 맹호연이 시흥에 잠긴 모습을 그린 김홍도의 ‘기려도’ 등은 상상의 산물이고, 고전 속의 여행이다. ‘臥遊’라고 일컬어지는 조선 중기까지의 이런 흐름은 이후로 오면서 명승지에 대한 유형화된 그림과 많은 회화지도로 변해간다. 백은배, 이방은을 비롯 많은 ‘필자미상’의 그림들이 관동팔경, 관서십경을 표현하고 있다.

조선후기의 진경산수화에 오면 유교적 도교적 이상이나, 여행을 통한 화가의 감동보다는 대상 본래의 모습을 표현한다. 따라서 한국적 풍경들이 구체적으로 잘 드러난다. 실경에 충실한 건 현대 한국 화가들에게 전통으로 이어지는데, 김천일, 유근택, 정재호는 각기 다른 기법의 붓질과 먹을 사용해 여행길을 화폭에 담아냈다. 유근택이 지방대 강의를 위해 유성으로 떠난 게 여행이라면, 그건 ‘일상’과 동의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천일과 정재호의 풍광도 일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보리밭 ©
장욱진의 ‘자화상’은 한국전쟁 중 피난길에 나선 작가자신을 그린 것. 하지만 보리밭길에 서있는 화가의 모습은 마치 여행처럼 고독하고도 평화로워 보인다. 추상화가들에게 풍경은 사유의 근거지일 뿐이다. 그것들은 내면으로 해체되는 과정을 거쳐 추상적인 이미지로 나타나지만, 최욱경, 설원기, 김혜련 등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강렬함은 여행에서 받은 화가 자신의 충격이라는 차원에서 잘 다가온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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