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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OX 교육의 보복
대학정론-OX 교육의 보복
  • 최원식 논설위원
  • 승인 2004.10.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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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총리가 최근 자신의 심경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서한을 언론에 공개했다. 교육계의 현안들에 대해 조정적 역할을 하려고 하면, 진보쪽에서는 시장과 경쟁만을 앞세우는 신자유주의자로 몰리고 보수쪽에서는 평등에만 집착하는 민중주의자로 매도되는 고충을 토로한 이 공개서한은 요즘 한국에서 교육부 수장 노릇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실감케 한다.

이 편지에 대해 한쪽에서는 국감을 앞둔 일종의 정략적 의도를 지닌 것으로 판단해 비판하기도 하지만, 참으로 세태가 야박하다. 아마도 참여정부에 비판적인 인사들의 반응일 터인데, 그 역도 성립한다.

한국은 목하 두 쪽이 났다. 발언의 적실성을 따지기 전에 먼저 그 발언자가 어느 쪽에 속하는지를 추정하여 옹호와 비난을 주저 없이 선택한다. 인터넷을 타고 단순한 흑백논리가 무한히 증식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분열을 어찌 치유할 수 있을지 난감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이 현상에 교육계 역시 책임이 없지 않다. 아니 어쩌면 교육계의 책임이 가장 중할지도 모른다. 지난 시대의 독재정권 아래서 교육계는 대체로 자발적이건 비자발적이건 독재에 굴종했다. 학생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가르쳤던가. 진정한 교육은 권력이 요구하는 뻔한 정답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질문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교사들은 끊임없이 OX만 가르쳤다. 사물 또는 사태의 복잡성을 곡진히 이해하도록 유도하기는커녕 흑백 어느 하나로 때려잡는 훈련만 반복적으로 주입했다. 교육을 배반한 이 관행은 민주화 이후에도 입시제도의 의구한 지속 속에 개혁되지 못했다. 지난 시대의 교육에 대한 반성이 때로 반대쪽 정답에 대한 정열을 부추기기도 했다. 우리는 지금 정답교육의 보복을 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교육개혁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분열을 치유하는 관건이다. 물론 제도개혁은 중요하다. 그런데 흑백논리를 넘어설 때 제대로 된 개혁의 대안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때, 제도개혁의 주체인 우리 교육자들이 먼저 변해야 한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교육계의 금언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우리 교육자들이 자신을 갈고 닦는 모범을 보일 때 학생들도 종이에 물 스미듯 훈습될 것이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정답을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교실에서, 교사와 학생이 함께 진실을 찾아가는 탐구학습의 교실로 변혁될 때 진정한 교육개혁은 시작될 터인데, 이 바탕에서만 우리 사회의 고질인 흑백논리에 기초한 분열을 넘어 건설적 합의에 의거한 통합적 지평이 열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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