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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다가서서 ‘화두’를 던져주는 철학강의
마음으로 다가서서 ‘화두’를 던져주는 철학강의
  • 김직수
  • 승인 2004.10.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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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대학 명강의 : 안규남 가톨릭대 강사의 ‘철학개론’

 

▲안규남 가톨릭대 강사 ©

김직수 (가톨릭대·3학년)

교양 필수과목을 많이 접하게 되는 저학년 학부생들은 저마다 좋은 수업을 찾기 위해 선배들의 입소문을 추적하기 마련이다. 그 이유가 정말 ‘좋은 수업’을 듣기 위해서이든,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해서이든 말이다.

 

물론 교양과정의 강사 수업이 대개 그러하듯 많은 학생들이 강의실을 가득 메우는 데에다 무작정 좋은 학점과는 거리가 멀 뿐더러 열악한 수업환경과 강사의 효과적인 수업의 어려움 등의 아쉬움을 주기 마련이지만, 그래서 더욱 훌륭한 선생님은 입소문을 타는 듯하다.

 

나 역시 교양과정의 철학수업을 듣기 위해 주변의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들의 대답은 망설임 없이 안규남 강사의 ‘철학개론’이었다.

강의를 듣기 전부터 ‘철학대사전’의 공동편집인 색인에서 선생님의 이름을 보았던 기억 때문에 더욱 그러했겠지만 작은 체구의 선생님이 강의실에 들어오셨을 때의 첫인상은 ‘정말 철학 선생님 같다’는 것이었다. 차분한 말투와 논리 정연함은 금세 마음을 빼앗는다. 그래서인지 이따금 던지시는 선생님의 어색한 농담은 더욱 재치 있게 다가온다.

첫 수업시간에 많은 학생들은 당황해하곤 한다. 강의 계획서를 받아들면서 그러한 당황은 더욱 증폭된다. 이 평범하지만 심상치 않은 철학 수업의 강의계획서에는 누구나 예상했던 위대한 철학자들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과학기술과 정보사회, 자유주의 국가론과 맑스주의 국가론과 같은 화두들이 던져져 있을 뿐이다. 흔히 철학사 위주의 교양철학 수업들이 정작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는 소홀하게 만들고 학생들로 하여금 거리감과 지루함을 주기 쉬운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안규남 선생님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실들과 우리가 당연시 해 온 것들에 대해 의심하는 것이 바로 철학임을 역설하신다. 그리하여 첫 수업은 세계의 대립 구도를 크게 4개의 대립축으로 알아보고, 그 중에서도 남반구와 북반구의 빈부 격차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으로 시작됐다. 물론 이와 같은 거시적인 이야기들로만 수업을 채워 가지는 않는다. 선생님의 수업의 강점은 마음으로 다가가는 이야기를 통해 철학적 사고를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생활방식의 변화를 알아보는 시간에는 수업 내내 TV와 자동차 등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 채워졌다. 선생님은 먼저 과학기술의 양면성이 어떻다는 등의 이야기는 무의미할 수 있으며 과학기술의 정신 뿐 아니라 그 산물들로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말씀과 함께 많은 이야기를 해주신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선생님의 아이가 비디오 게임에 빠졌던 이야기, 어색했던 자동차 운전 경험 이야기 등은 빼놓을 수 없다. “시간이 늦어 달려 들어가는데, 글쎄 자동문이 버릇없이 저를 턱 가로막는 거예요.”라는 선생님의 이야기에 자연스러운 인간의 행동을 차단하는 과학기술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안규남 선생님 수업의 또 하나의 강점은 쉽게 다가가기 어렵지만 자주 접하게 되는 현대 사상가들의 생각들을 일상적인 언어들로 풀어내어 주신다는 것이다. 동일성, 도구적 이성, 타자, 판옵티콘 등의 개념들에 대해서도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의 문제의식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예컨대 ‘동일화’란 대상에 대한 지배 욕구가 인간의 이성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변화하고 흐르는 세계 속에서 변하지 않는 무엇을 찾아내도록 부추기는 것이라 설명하시면서 이성은 동시에 대상에 대해 차이 또한 부여한다고 강조하신다.

 

판옵티콘은 ‘시선의 비대칭성’, 즉 눈높이를 다르게 하여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알아서 기도록’ 만드는 메커니즘이라고 접근해 볼 수 있었다. 인간의 이성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흔히 그럴 듯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하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끔 됐다.

앞으로의 대학 생활을 통해 철학적 사고를 놓치지 않도록 ‘화두’를 던져주는 안규남 선생님의 교양필수과정 ‘철학개론’ 수업은 이성 뿐 아니라 인간의 마음으로 다가가는 인문학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선생님은 수업을 마무리 지으며 ‘20대 80의 사회’에서의 ‘나눔’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그리고 그 나눔은 80의 빈자들 가운데에서 선행돼야 한다는 말씀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차분하고도 열정이 담긴 강의 가운데에서 최근에는 ‘간디 평전’을 번역하시는 등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시는 선생님의 강의를 나도 모르게 학우들에게 추천해 주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즐거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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