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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론 대 환경론으로 그려진 20세기 戰爭史
유전론 대 환경론으로 그려진 20세기 戰爭史
  • 최철규 기자
  • 승인 2004.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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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본성과 양육’(매트 리들리 지음, 김한영 옮김, 김영사 刊, 2004년 427쪽)

‘타불라 라사’(tabula rasa). 빈 서판을 의미하는 이 라틴어는 영국의 존 로크가 인간의 마음은 오직 경험에 의해 채어진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사용한 용어다. 뒤이어 루소와 칸트가 인간본성론을 제창하며 영국 경험론을 반박했다. ‘본성과 양육’에 대한 20세기 논쟁의 서막이었다.

‘게놈’의 저자 매트 리들리는 ‘본성(nature)과 양육(nurture)의 100년 전쟁’을 현대과학의 눈으로 새롭게 조명한다. 본성의 진영에는 다윈, 골턴, 윌리엄 제임스, 콘라트 로렌츠 등이, 양육의 세력에는 프로이트, 보아스, 뒤르켐, 파블로프 등이 포진해 있다.

20세기 전반 나치즘으로 흡수된 생물학적 결정론의 폐해는 환경결정론의 타당성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언어 능력을 강조한 촘스키와 이를 승계한 진화심리학자들은 유전의 의의를 재부각시키며 반격에 나섰다.

2001년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완료 결과, 유전자수가 10만개라는 당초 예상치에 훨씬 못 미치는 3만개로 밝혀지자 유전자 결정론이 큰 타격을 받고 환경결정론이 각광을 받았다. ‘고작’3만개의 유전자로 인간의 ‘자유의지’를 규정하기 어렵다는 회의적 시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 이에 ‘언어본능’의 저자 스티븐 핑커가 ‘빈서판’(2002)에서 인지과학과 진화심리학의 연구 성과를 근거로 유전론을 강조함에 따라 논쟁의 불씨는 되살아났다. 그러나   사실 핑커는 인간행동에 대한 유전과 환경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것에 가까운데,  매트 리들리도 이러한 맥락에 서 있다.

저자는 ‘양육을 통한 본성’이라는 대안적 틀로 본성과 양육간의 이분법적 대립을 화해시킨다. 미네카의 실험을 보자. 미네카는 실험을 통해서 뱀에 대한 원숭이들의 공포가 반복 학습에 의해 대리적으로 획득되는 것임을 증명하였다. 이어 미네타는 조작한 테이프를 통해 꽃에 대한 공포의 학습을 시도했으나 어떠한 원숭이도 꽃에 대한 공포를 보이지는 않았다. 실험은 공포증이 전적으로 학습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지만, 그 공포는 무의식적 본능으로 미리 구비돼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것이 ‘양육을 통한 본성’의 의미다.

“학습은 선천적인 학습 능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천성은 경험이 없으면 표현되지 못한다. 각 개념의 진실은 서로의 오류를 입증하지 않는다.”각 개념의 진실을 이해하는 키워드는 유전자. 저자는 1980년대 이후 유전자에 대해 발견된 새로운 사실들을 통해 “유전자는 자궁 속에서 신체와 뇌의 구조를 지시하지만, 환경과 반응하면서 자신이 만든 것을 거의 동시에 해체하거나 재구성한다”고 결론짓는다.

그렇다면 본성과 양육간의 기나긴 논쟁은 종식되는가. “어쩌면 이분법 자체가 유전자에서 비롯되는 하나의 본성일지 모른다”는 저자의 말대로, 굳이 성급한 결론을 내릴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최철규 기자 hisfuf@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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