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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복제' 혹은 세련된 모방...서사와 사색의 부족
'자기복제' 혹은 세련된 모방...서사와 사색의 부족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4.10.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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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진단_한국영화의 우울한 현실(3)-미학적 소진

▲왼쪽부터 강제규, 김기덕, 박찬욱, 임권택, 홍상수 감독. ©

한국영화사를 빛낸 고전들은 뛰어난 원작소설의 영화화가 많았다. 전후 지식인의 실존적 고뇌를 그린 이범선의 ‘오발탄’을 영화화 한 유현목 감독에서 시작해, 김성동의 ‘만다라’와 이청준의 ‘서편제’를 동양적 허무와 한의 미학으로 승화시킨 임권택까지 그 전통은 이어진다.

그런데 지난 1990년대 후반부터 영화계에 이창동, 김기덕, 홍상수 같은 작가감독이 등장하고, 박찬욱 등 해외유학파가 본격 진입하면서 달라졌다. 감독이 시나리오를 직접 쓴 작품들이 높은 수준의 작품성을 구가하고 있다. 크게 세 그룹으로 나눠 이들 작가의 미학적 특징과 한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기덕, 홍상수, 이창동 등 작가주의 감독들, 한국적인 것을 전혀 다른 식으로 풀어내는 임권택과 강제규, 장르영화를 따르면서 독특한 미학을 보여주는 박찬욱, 봉준호 등의 젊은 감독들이다.

‘자기 동어반복’의 한계, 김기덕과 홍상수 

김기덕과 홍상수는 전혀 다른 극단에 위치해 있다. 김기덕이 강렬한 ‘파국’과 ‘주변인’의 삶을 통해 인간구원의 문제를 다뤄왔다면, 홍상수는 카메라를 한 구석에 세워두고 ‘지식인’들의 현실을 오래 응시하는, 모던한 보여주기 기법으로 의식과 행위의 이율배반성을 잘 추구해왔다. 평단에서는 이 둘을 빼놓지 않고 주목해왔는데, 김기덕은 호평과 악평 사이를 오갔고, 홍상수는 대부분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기점으로 홍상수에 대한 평단의 시각도 달라지고 있다.

이들에게 동시에 가해지는 비판은 “자신을 더욱더 단순하게 모방하고, 그 상상력에 갇혀 있다”라는 김기덕에 대한 평론가 김영진의 지적처럼 ‘자기 복제’다. 삶의 잔혹성과 대비되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회화의 언밸런스 미학도 이제 익숙하다. 하지만 화면의 강렬한 상징성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높다. 최근작 ‘빈집’은 주인공 선화가 남편과 포옹하면서 반대편에서 태석과 키스를 나누는 충격적 장면을 보여주는데, 인간의 반윤리적 존재성을 너무나 기묘하게 잘 부각시켰다는 것.

반면, 홍상수 미학의 행보는 불투명해 보인다. 영화평론가 심영섭 씨 등은 “인과론적 문법을 파괴한 낯선 리얼리즘”이 심화되고 있다는 평가를 고수하고 있지만, 영화평론가 정승훈 씨 등은 “10년 가까이 불가지론과 부정의 철학을 변함없는 안주 삼아 술주정을 읊어댄다”라고 신랄한 비판한다. 이병창 동아대 교수(철학)는 홍상수가 “지식인을 현실로부터 추상시킴으로써 생명력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라고 지적한다. “지리멸렬한 일상에 대한 나르시시즘적 대응”이라 할만한 홍상수의 세계는 현실 속의 변화하는 지식인을 보지 못하고 자신의 고유한 애증을 변주하는 데 그친다는 지적이다. “독특한 실험도 왠지 자기도취적”라는 이상용 씨의 지적도 홍상수의 출구마련을 촉구한다.

‘한국적’인 것을 다루는 두 시각 

임권택은 곧잘 ‘대륙’이라는 말로 표현되는데 이것은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을 오간 폭넓음을 의미하기도 하고, 한국문화의 근원성과 그것의 퇴락을 조명하는 老 작가의 뚝심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하류인생’을 통해 1950년대 명동을 그린 그는 기존과는 다른 ‘휴머니즘’을 보여주긴 했지만, 소품에 머물렀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이런 갑작스런 변화에서 임권택 감독은 또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강제규 감독의 특징은 빠른 스피드로 표현된다. 이병창 교수는 “기존의 느려터진 한국영화에 속도감을 불어넣었다”는 말로 강제규를 칭찬하지만 “역사에 대한 피상적이고 편파적 인식이 한계”로 작용한다는 점도 덧붙였다.‘태극기 휘날리며’는 가족애를 전쟁 블록버스터 형식에 숨가쁘게 심어넣고 빛을 자유롭게 활용해 “외양적으로 볼만한 영화”라는 성공적인 평을 얻었다. 기술적 수준도 할리우드를 많이 따라잡았다고 하지만, 다음 평가와 비교해보면 ‘감싸기’라는 판단이 든다.

영화평론가 허문영은 ‘지옥의 묵시록’이나 ‘블랙호크다운’과 같은 전쟁영화와 비교할 때, “집단살육에만 집중해 치유불가능한 광기도, 전투 직전의 죽음 같은 고요도, 살육의 들판에서 피어나는 기적 같은 아름다움도, 인간사를 탈색시키는 육중한 스펙터클의 입체감도 없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단순히 테크닉과 철학적 사색의 부족 때문이었을까. 그런 판단은 이르다. 다만 허문영 씨가 말한 ‘광기’나 ‘기적’은 전쟁이라는 보편적 테마가 간직한 비극성에서 나오는 것이란 점을 주목해 보자. 따라서 그 비극성에 대한 심도깊은 통찰을 스펙터클한 화면으로 구조화하는 집중력을 선택하기보다, 민족상잔이라는 교과서 코드에 기대 리얼리즘과 휴머니즘을 에피소드로 연결한 것이 그의 한계는 아니었을까.

박찬욱과 젊은 감독군의 가능성

박찬욱은 할리우드와 유럽예술영화, B급 무비를 모두 흡수해 자기만의 독특함을 구가하는 이른바 ‘짬뽕미학’의 대가로 불린다. ‘오대수’라는 한 인물을 통해 ‘복수’라는 주제를 그린 그는 작품의 형식적 실험성과 완결성, 그리고 주제의 보편성을 두루 소화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원색의 미학은 장예모 감독의 ‘연인’에 비유될 만큼 강렬했고, 과잉의 기법은 복수의 들끓는 에너지와 잘 어울렸다는 찬사도 쏟아졌다. 그러나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영화평론가)는 박찬욱에게서도 어떤 한계를 읽어낸다. 그것은 “‘올드보이’가 한국영화의 고정된 의미를 일부 해체했지만, 새로운 사회에 대한 자기성찰엔 역부족인 면을 보여왔다”라는 것. 이병창 교수는 ‘올드보이’에 나타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보편적 인간철학의 구현으로 높이 평가하지만, 이런 서구 내러티브의 재생산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많다.

그 외에 ‘살인의 추억’에서 필름 누아르의 한국적 버전을 구현한 봉준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아라한 장풍대작전’ 등의 류승완, ‘아는 여자’의 장진,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유하 등은 주목받는 신예들이다. 이들은 장르화된 ‘80년대 코드’를 리바이벌하는 차원에서 실험을 벌여오고 있다. 하지만 후속작을 내놓지 않은 봉준호를 제외하면 다른 감독들의 작품은 전작을 능가하지 못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류승완의 ‘아라한 장풍대작전’은 성룡과 이소룡에 대한 애착을 실천한 야심작인데, “특수효과 만능주의와, 빈약한 상상력”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장진의 ‘아는 여자’ 또한 ‘날렵한 멜로’라는 등의 칭찬을 들었지만 작품완성도가 많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다.

한국영화의 ‘미학’에 대해서 평단은 말을 아낀다. 아직 다양성이 전개될 공간이 넓어서이다. 하지만 ‘다양성의 역설’이라는 것도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새로운 것을 추구하다보면 아무래도 재현의 테크놀로지에만 매달려, 화면의 세세한 부분까지 배려하고 매만지는 장인적 수행의 과정이 미약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적어도 ‘미적인 것’을 추구하겠다면 말이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예술영화 어디까지 왔나

"작가정신, 영상적 완성도 모두 부족"

지난해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는 예술영화로는 ‘송환’과 ‘영매’를 들 수 다큐멘터리로 작품성도 인정받고, 관객동원에도 성공했다. 지난  9월 27일부터 예술영화관 네트워크인 아트플러스는 예술영화 열 세편을 선정해 상영중이다. 고아원을 배경으로 인간의 욕망과 믿음을 다룬 ‘천사를 본 소년’의 감독 신재인이나, 여성의 몸, 소외, 섭식장애, 임신 등을 다룬 ‘그집 앞’의 감독 김진아, ‘당시’의 감독 장률이 눈에 띈다. 독특한 자기 미학을 가지고 있고 완성도도 높다는 평가들이다. 하지만 그 외에는 고만고만한 작품들도 있고, 또 주류영화를 찍다가 밀려나 이 곳으로 넘어온 감독들도 몇몇 있다.
사실 많은 평론가들이 현재 한국영화가 예술적 지평을 열기엔 한계가 있다고 진단한다. 김경욱 세종대 교수(영화평론)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감독들의 역량이 안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중요한 건 감독의 메시지 전달과 미학적 완성도라 할 수 있는데, “다수의 감독들이 자기가 뭘 얘기하려는지 모르고 헤매며, 영상적인 완성도도 떨어진다”라는 것이 김 교수의 지적이다. 젊은 감독들 중 겉멋 때문에 유럽영화 기법들을 모방하는 데 그친 작품들도 많다. 즉 창조적 ‘작가 정신’이 살아있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예술영화에 대한 적극적 지원을 요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관객들이 안 오는 게 당연하다”라는 평론가들의 반응을 듣고 있는 예술영화 및 감독 후속세대들의 현실은 한국영화가 처한 미학적 미래를 묵시록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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