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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학제도의 정치학
대학입학제도의 정치학
  • 김재웅 서강대
  • 승인 2004.10.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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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웅 / 서강대 교육학 ©
지난 8월 26일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제 폐지와 내신 비중 확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200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안’이 발표됐다. 이번 개선안의 특징은 수능 시험의 원점수와 백분위 점수를 주지 않는 대신, 등급에 관한 정보만 주고, 내신의 경우 ‘수우미양가’의 절대평가 방식을 과목별 평균과 표준편차, 그리고 석차 등급 등을 제공하는 상대평가 방식으로 전환하는 데 있다. 아울러 특별활동, 봉사활동, 독서활동 등 비교과 영역도 균형있게 반영하도록 한다는 것도 들어 있다. 한 마디로 이번 개선안은 고등학교 교육의 정상화와 지역간(또는 사회계층간) 형평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중학교 3학년 학생들부터 적용되는 새 대입제도가 발표되자마자 교육계에서는 갑론을박 말이 많다. 이러한 논쟁의 근저에는 고등학교의 내신평가를 믿지 못하겠다는 대학의 입장과 대학에 학생선발권을 줬을 때 그 선발기준과 방법을 신뢰할 수 없다는 고등학교와 대학 간 상호불신이 깔려 있다. 이 와중에 일부대학들이 최근 학생 선발에서 ‘고교 등급제’를 적용했다는 의혹마저 제기돼, 교육부의 조사를 받고 있다. 이들 대학들은 학생들의 실력을 보고 선발하다 보니 일부 특정 지역과 특정 고등학교 학생들이 많이 들어오게 된 것이지 결코 ‘고교 등급제’를 시행한 적이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 새 대입제도에 대한 논란이 가시지 않자 교육부도 최종안 발표를 늦추고 있는 실정이다.

 

차제에 대학입학제도의 본질에 대해 한번 검토할 필요가 있다. 대학입학제도는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기능과 함께 대학교육의 이념에 맞추어 대학교육을 받을 잠재능력을 평가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 더 중요하게는 개인의 사회경제적 배경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대학입학제도의 이러한 기능으로 말미암아 고등학교, 대학, 정부는 각각의 관점에서 대입제도에 관심을 갖고 자기의 입장을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까지의 대입제도는 이 삼자의 타협과 힘의 균형 속에서 이루어져 왔다고 할 수 있다. 고교 내신, 면접과 논술(또는 대학별 고사), 수능 등 선발 요소 간의 비율 변화는 이것을 잘 보여 준다.

 

대입제도의 개선을 위한 해법은 좋은 대학의 입학을 놓고 벌어지는 수험생 간 경쟁은 불가피한 사회적 현상이며, 따라서 이것을 관리하는 대학입학제도는 일종의 정치적 결정임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 경쟁의 과정을 얼마나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관리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 경우 모든 학생의 선발에서 지역이나 고등학교의 차이를 전혀 무시하고 고교 내신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라는 주문은 일종의 폭력일 수 있다. 그렇다고 당사자의 능력과 상관없이 선배들이 이루어 놓은 역사와 전통에 힘입어 입학에서 특혜를 보거나 손해를 보는 것도 합리적이지 않다. 대학입학제도에서 소위 ‘고교 등급제’의 적용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새 대입제도가 성공적으로 시행되려면 정치적 측면과 교육적 측면이 함께 고려돼야 한다. 먼저 정치적으로, 정부, 대학, 고등학교의 삼자가 모두 만족할 만한 접점을 찾는 데 다시 한번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주기를 바란다. 이 과정에서 각자 자기의 입장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한발씩 양보하는 미덕이 요청된다. 이러한 갈등해결은 학생들과 국민들에게 좋은 잠재적 교육과정의 역할을 할 것이다. 예컨대, 고교 내신성적을 고려하여 일정 비율(예: 20%)을 지역이나 학교의 특성을 기준으로 소수자 배려 차원에서 선발하고, 나머지는 대학의 자율적 결정에 맡기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새 대입제도는 사회적 평등에도 기여하면서 동시에 대학의 자유와 이념의 실현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교육적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입학시험을 준비하는 가운데 학생들이 의미있는 교육적 경험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내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새 대입제도 개선안은 분명히 이러한 점을 의식하고 있다. 그러나 내신제도가 등급제로 고착될 때 나의 경쟁 상태가 한 학급 또는 한 학교 안에 있게 되는데, 이 경우 학습공동체가 형성되기 어려웠다는 과거의 경험도 한번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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