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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된 여성 주체화 시도…젠더이론 탄생 예고
억압된 여성 주체화 시도…젠더이론 탄생 예고
  • 교수신문
  • 승인 2001.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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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5-03 17:21:00
허라금 / 이화여대·여성학

1949년 출간된 보봐르의 ‘제 2의 성’이 이제 페미니즘의 고전이 됐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고전으로 분류되는 이유를 단지 그것이 남녀 평등권을 주장하고 있다는데서 찾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오히려 그 이유는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되어지는 것이다” 는 ‘제 2의 성’을 관통하고 있는 기본 통찰이 제 2 기 여성주의 정신을 출발시키고 또 대변한다는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여성과 남성은 생물학적 차이로 인해 서로 다른 성 역할을 하게 된다는 기존 관념에 근본적 도전을 하지 않았던 제1기 여성주의와 구분되는 대목이다.

철학, 문학, 인류학, 심리학, 역사 등의 학제적 경계를 넘나드는 방대하고 해박한 지식들을 통해 어떻게 ‘여성’이 사회·문화적인 맥락 속에서 두 번째 성으로 만들어져 왔는가를 밝히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 살아있는 여성의 일상적 경험들에 접근해 가는 이 책의 서술 전개 방식은 그 후 많은 여성주의 담론의 전범이 되어왔다. 남성이 주체가 되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성의 타자로 머물게 되는 ‘여성’은 생물학적 성이기 이전에, 사회·문화적으로 매개된 열등하고 종속적인 이등의 신분이라는 그녀의 분석이 그 후 60, 70년대, 사회적으로 구성된 젠더를 여성 억압의 주된 원인으로 보는 2기 여성주의자들의 기본 인식을 이미 그대로 예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을 관계 속에서 규정되는 타자가 아니라 그 관계를 실존적으로 넘어서는 주체로 세우고자 하는 그녀의 시도가 때로 ‘제 2의 성’에서, 출산과 양육의 성역할 속에서 내재적 사유를 체화하는, 여성의 상황을 열등한 것으로 그려내고 있지 않느냐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상대를 타자화함으로써만 주체가 되는 실존적 ‘주체’ 개념을 문제 삼지 않고, 다시 말해 끊임없이 대립하는 무한 투쟁의 고리를 벗어날 수 없는 남성적인 주체 대 주체의 관계를 문제삼지 않고, 여성을 또 하나의 주체로 세우고자 했던 그녀의 시도가 과연 여성주의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인가라는 우려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녀가 여성으로서의 의식을 무엇보다 중시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한 지나친 의심일 가능성이 높다. 최근 페미니즘 연구에서 보봐르는 제 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제 2의 성’이 출판된 50주년을 즈음하여, 99년 미국의 대표적인 여성철학지인 ‘하이파시아’Hypatia는 보봐르 특집을 기획하여 출판하기도 하였다.

이뿐 아니라 ‘제 2의 성’과 관련된 학술대회가 파리에서 시작하여, 미국, 유럽 등지에서 열렸으며, 여러 보봐르 연구 저서들이 줄을 잇고 있는 것이다.

기존연구들이 대부분 제 2 의 성을 사르트르의 철학적 토대 위에서 이해했던 반면, 최근 연구에서 이런 접근은 근본적으로 도전 받고 있다. 그것은 그녀의 사후 발견된 초기 글들, 20년대의 일기라든지 개인적인 서신들 덕분이다. 1943년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가 출간되기도 훨씬 이전 1927년 그녀의 글들에서 이미 주체적 자아와 타자의 대립 문제가 고민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사르트르의 빛을 통해 보봐르를 해석하는 또 하나의 편견을 거두어야 할 시점에 있는 것이다.

직접 보봐르의 자타관계를 들여다보자면, 거기에는 상호인정에 의해 해소될 수 있는 주체 대 주체의 관계의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다는 연구가 이미 나오고 있다.

지배적이고 억압적인 남성 중심적 담론들에 의해 은폐되어 왔던 여성의 살아있는 체험을 서술함으로써 여성을 주체로 세우고자 하는 ‘제 2의 성’은 페미니즘의 고전일 뿐 아니라, 다른 지배적 관계 속에서 침묵 당했던 타자들을 불러내는 다른 많은 해방적 논의들이 돌아가 반추해야 할 고전이기도 하다. 서구 철학사상의 많은 부분이 살아있는 경험의 실재성을 가리고 왜곡하는 반성적 관점의 활동 범위 안에서 제한적으로 행해져왔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도 역시 ‘제 2의 성’은 어떻게 철학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고전임에 틀림없다.

시몬 드 보봐르(Simone De Beauvoir) (1908-1986)

보봐르의 이름은 언제나 사르트르와 함께 호출된다. 사르트르와 함께 지식인 커플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그녀는 프랑스 실존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사상가이다. 실제 사르트르의 글 가운데 상당수가 보봐르의 착상으로 쓰이고 그녀의 ‘검열’을 거쳐 발표되었다. 그녀는 포스트구조주의라는 신사상의 흐름 앞에서 실존주의를 마지막까지 지키려 애썼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녀의 주저 ‘제2의 성’은 실존적 페미니즘의 대표적 저서로,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길러진다’는 금언을 남기고 있다. ‘레 망다랭’을 발표해 여성으로 드물게 공쿠르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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