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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지식의 소비와 생산,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인문지식의 소비와 생산,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 이만영
  • 승인 2021.04.29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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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서글픈 질문의 반복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갈 무렵, 나는 처음으로 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다. 학자의 삶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학문에 대한 열정과 그에 준하는 성실함이 수반되어야 하겠지만, 사실 그때부터 박사 논문을 집필할 무렵인 2017년까지 나에게 가장 큰 걸림돌로 여겨졌던 것은 경제력이었다. 물론 풍족한 상태에서 공부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14세 무렵에 사고로 부모님을 모두 잃은 나에게 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대학원에서 보낸 모든 시간은 우울감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 같다. 수능 시험을 치른 직후 논술학원 등록비를 마련하기 위해 거리에 나가 군고구마 장사를 해야 했고, 대학에 들어와서는 3개의 아르바이트를 동시에 하느라 잠을 4시간만 청해야 했으며, 대학원에 다니면서는 교내 자판기 컵을 갈아주는 아르바이트와 학원 강사 일을 병행하면서 공부를 해야 했다. 공부를 하기 위해 돈을 벌었지만, 정작 돈을 버는 데 시간을 허비한 나머지 공부를 할 수 없었던 시간. 어쨌든 나는 학문에의 길을 걷기 위해 이 슬픈 역설의 시간을 견뎌야만 했다.

박사 과정에 입학했던 2012년, 첫 아이가 태어났다. 박사 과정에 진입하자마자 결혼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첫 아이를 가졌으니, 내가 갖고 있었던 심리적 부담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명색이 박사 과정이니 연구자로서의 역량을 한껏 발휘해야 했고, 또 명색이 한 사람의 남편이자 아비이니 가정의 경제적 책임도 다해야만 했다. 물론 나와 함께 연구자의 길을 걷고 있었던 아내의 도움이 심적으로 넉넉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연구와 생업을 함께 하기란 버거운 게 사실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우스운 소리처럼 느껴질 테지만, ‘분윳값’과 ‘기저귓값’이라도 벌어야 한다는 그 상투적인 말이 그때처럼 실체감 있게 다가온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버티다 못해 결국 나는 학원 일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일을 하긴 했지만, 그 수익만으로는 한 가정을 꾸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도 나는 잠을 줄여가면서 주말에까지 학원을 나가서 일을 했었고, 또 일을 하는 만큼 공부하는 시간은 계속 줄어들었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해 공부하는 시간을 줄여야 하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나는 박사 논문을 빨리 제출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는 2015년 모든 일을 그만 두고 논문을 쓰겠다는 일념으로 대출을 받았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간 해보지 못했던 ‘전업 연구자’의 길을 당분간만이라도 걸어보기 위해 애를 썼다.

내가 연구 대상으로 삼았던 1900~1920년대 초의 문학적 사료들을 두루 검토한 지 2년이 지날 무렵이었던가. 대출받았던 돈은 거의 고갈되어가고 있었다. 논문을 집필하려면 2학기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는데, 여전히 나는 시간보다는 돈에 쫓기고 있었다.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나를 깊게 고민하던 무렵, 나는 한국학 연구자를 지원하는 프로그램 대상자로 선정이 되었다. 박사 논문 집필이 유예되거나 좌초될 뻔한 시기에 찾아온 소중한 기회였고, 그 지원금 덕택에 나는 박사 논문을 무사히 집필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내 자전적 이야기를 쓴 이유는 사실, 인문지식이 생산되는 환경에 대한 내 나름의 고민 때문이다. 내가 대학에 입학했던 1998년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돌이켜볼 때, 요즘처럼 인문 지식이 널리 소비되는 상황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인문학 관련 지식을 소개하는 TV프로그램이나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인문학 관련 인플루언서도 이제는 적지 않은 듯 보이고, 각종 시·군·구청에 개설된 인문학 관련 대중강좌도 제법 많아진 것 같다. 그런데 요즘 나는 인문지식이 생산되는 환경이 얼마나 개선되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 한국 사회에서 인문학이 소비되는 영토는 점차 확장되고 있지만, 인문학 분야에 있어서 생산적 역량은 제대로 갖춰졌는가. 특히나 4차 산업혁명이나 AI 시대로의 진입과 같은 풍문들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어서인지, 인문학에 대한 대중적 관심에 비해 그에 대한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굳이 여기에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될 만큼 각종 통계지표에서 인문학에 대한 지원, 인문학 연구자들의 수, 각 대학의 인문학 강좌 개설 수 등은 모두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남겨진 자들, 그러니까 새로운 인문학적 질문과 담론을 생산해야 하는 젊은 연구자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들이 젊은 날 세웠던 수많은 학문적 계획들은 대체 어디로 어떻게 사라진 것일까. 이 남겨진 자들이 갖고 있는, 그 사라진 꿈과 계획들이 더 소실되지 않게끔 우리는 어떤 환경을 만들어야 할까. 이 서글픈 질문이 더 반복되지 않도록, 연구 환경의 문제가 한 개인적 역량과 노력의 문제로 환원되지 않도록, 인문학의 위기가 젊은 연구자들의 책임으로 귀속되지 않도록, 이제는 실천적인 답변이 요청되는 때가 아닌가 싶다.

 

 

이만영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에서 연구팀장을 맡고 있다. 계간 『실천문학』 신인평론상(2014)과 지훈신진학술상(2018)을 수상했고, 한국 근대 초기 문학에서 진화론 전유 양상에 관한 박사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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