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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백조'의 물밑 발길질...콘텐츠와 배우충원이 관건
화려한 '백조'의 물밑 발길질...콘텐츠와 배우충원이 관건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4.10.04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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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진단_한국영화의 우울한 현실(2)-구조적 한계

그동안 한국영화시장에 대한 구조적 분석은 작은 단위들의 취약성을 확대해석하거나, 현실의 일부분일 뿐인 통계수치를 비교하는 ‘숫자의 세계’에 갇혀 있었다. 다시 말해 세계영화시장 속에서 한국영화산업의 큰 그림과 그에 따른 제작 및 배급시스템, 소비자 층에 대한 분석이 종합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해외진출의 성공여부가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는 요즘 한국영화산업의 구조를 좀더 넓은 시야에서 그려보고 문제점들이 무엇인지 짚어볼 필요성이 있다.

메이저 영화사들이 시장점유

현재 국내영화시장 규모는 연간 1억명 정도며, 이 가운데 한국영화 관람객수는 50%인 5천명 규모다. 많게는 1백억원대의 돈이 투입되는 제작현실에서 이는 대형영화사 한둘이 나눠 갖기에도 부족한, 따라서 중소영화사에는 돌아올 떡고물이 거의 없는 시장규모다. 최근 호황을 누렸던 한국영화가 실속이 없었던 근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영화산업의 성장은 세계시장의 개척과 맞물려 있다. 이와 관련 지난해보다 2배 늘어난 올 상반기 수출실적은 고무적이다. 39여개국에 총 111편의 영화를 판 것.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국영화가 매우 낮은 단가로 팔린다”라는 점과 “실제로 돈이 되는 미국시장 개척에서 전망이 밝지 않다”라고 지적한다. 최근 미국에서 장예모 감독의 ‘연인’을 앞지른 ‘태극기 휘날리며’의 성공도 해외교포들의 열광에 힘입은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태극기’의 블록버스터로서의 작품성 도 과장됐고, 민족적 코드도 흥행요인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이런 안팎의 악조건들 때문에 메이저 투자배급사, 제작사들은 게임, 음반, DVD, CATV 등 미디어복합센터로 시장을 확장해가고 있지만, 선발주자들이 있어 그 ‘진입가능성’이 불투명하다. 오히려 현재 영화시장을 둘러싼 가장 두드러진 생존방식은 대기업이 투자사, 배급사, 상영관을 갖추는 수직통합체제로 영화계를 합병하는 것이다. 얼마 전 양대 산맥인 CJ엔터테인먼트와 시네마서비스 등이 투자→제작→배급의 수직통합체제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최근 CJ가 시네마서비스 소유의 멀티플렉스 프리머스를 인수함으로써 CJ의 시장점유율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런 양상에 대한 전문가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최영준 경희사이버대 교수(경제학)는 “자본이 풍부하지 않을 때 대자본은 영화발전의 동력이 된다”라고 본다. 특히 영화는 리스크가 높은 산업이라 대기업화가 불가피하다는 것. 임정수 서울여대 교수(미디어산업)도 “수직통합은 자연스런 흐름이다. 그 통합구조 속에서 소규모 제작사, 배급사들은 외주를 받아 생존해나갈 수 있다”라고 말한다. 즉 계열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반면, 아무런 견제장치 없이 시장에 맡기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수범 인천대 교수(매스커뮤니케이션)는 “대형영화사들의 독과점으로 흥행위주의 코미디나 조폭 등 장르영화 쪽으로 편중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나아가 배급에 있어서도 대기업의 영화만 유리한 시간대에 배치하는 등 제작, 배급, 유통에 있어 공정치 못한 사례들이 나올 것이라고 진단한다. 영화평론가 이상면 씨도 “미국에서조차 메이저 영화사들이 투자사부터 극장까지 소유하는 수직통합이 금지된 마당에 우린 거꾸로 가고 있다”라고 비판한다. 시장형성 초기단계에선 효과가 있겠지만, 결국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지적이다. 우려 섞인 지적들은 영화산업의 빈약한 콘텐츠와 인력에 비춰볼 때 좀더 설득력을 가진다. 우선 ‘시나리오의 부재’를 꼽을 수 있다. 현재 연간 생산되는 국내영화가 60~70편인데, 50% 이상은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쓴다. 나머지도 PD가 아이디어를 던져주고 시나리오 작가에게는 ‘미용사’ 역할을 시키는 ‘기획영화’들이 대부분이다.

양영철 경성대 교수(영화연출)는 “흥행을 노리는 머리 좋은 프로듀서들이 아이디어로 투자자에게 돈을 받아내고, 이 돈으로 시나리오작가를 섭외해 투자자의 입에 맞는 작품을 생산해낸다”라고 지적한다. 때문에 최근 코미디나 공포물들은 안전한 장르적 코드를 반복·답습하는 데 그치고 있다. 영화평론가 이상용 씨는 “대자본들이 잘 팔리는 아이돌 스타가 소화하기 쉽도록 시나리오를 조립하고 있다”라며 개탄한다. 그는 ‘어린신부’나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를 그러한 사례로 꼽는다. 최근엔 인터넷 소설이 뜨니까 영화사들이 시나리오 작가를 네티즌으로 가장시켜 인터넷 소설을 쓰게 하고, 아르바이트생들로 여론을 조성해 흥행시킨 뒤 영화제작으로 연결시키는 유치한 전략도 나온다.

시나리오와 스타가 없다  
 
물론 이렇게 해서 성공을 한다면 모르겠지만, 관객의 눈은 점점 냉혹해지고 있다. 할리우드에서도 영화의 가치는 바로 시나리오 헌팅과 기획개발로 결정된다고 인식해 시나리오개발을 매우 중시해 작업을 세분화한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원작확보, 각색, 대본작업 등 각 단계에서 과학적인 시스템을 갖추려는 것, 무엇보다 질 높은 원작을 확보하려는 노력 없이 한국영화의 미래는 없다”라고 지적한다. 국내 창작물도 중요하지만 해외원작을 수입해서라도 일정 수준의 영화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게 안정적인 관객확보에 유리하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영화진흥위원회에서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육성하고 거래할 수 있도록 ‘한국영화시나리오DB’를 운영하고 있지만, 영화관계자들은 “혁신적인 구조개혁 없이 이런 제도는 유명무실”이라고 지적한다. 영화평론가 심영섭 씨는 “정부가 작가를 키우고 거래시스템에도 개입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와 함께 현재의 스타시스템에 대한 지적도 많다. 흥행을 담보하기 위해 스타는 필수적이고, 몸값을 감당해야 한다는 건 기본이다. 문제는 해외의 스타배우들이 철저히 ‘배우수업’을 받고 진정한 은막의 스타로 키워지는 반면, 우리는 10대스타를 일회용으로 써먹고 버리는 악순환을 되풀이한다는 데 있다.

심영섭 씨는 “이효리, 전지현 등이 연기력이 거의 없고, 인문학적 배경이 전혀 없어 발전하기가 힘들다”라며 스타들의 영화진출을 비판한다. 나아가 송강호, 최민식, 한석규 등 몇몇 스타배우들이 스크린에 반복 등장해서 생기는 매너리즘도, 후속스타가 없는 한국영화계를 위협하고 있다. 이상용 씨는 “최민식이 나올 수 있었던 건 연극계가 살아 있었기 때문인데, 연극시장이 죽어버린 요즘 배우 충원이 어렵게 됐다”라고 한다. 심영섭 씨는 “영국은 지방소극단이 매우 활성화 돼 있어, 정통세익스피어 극단들이 도제시스템으로 키워낸 배우들을 영화시장에 공급한다”라고 충고하지만, 한국현실에서 기대하기는 힘든 방법이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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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이 2004-10-05 09:11:42
저번 부터 상당히 궁금했는데, 영화잡지도 아닌 교수신문에 왜 이런 종류의 기사가 실려야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