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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비평_언론의 '주관화'와 '경직성' 감시해야
매체비평_언론의 '주관화'와 '경직성' 감시해야
  • 조항제 부산대
  • 승인 2004.09.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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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은 매체에 대한 심도 깊은 비평을 시작하고자 한다. 특히 매체를 통한 지식인들의 담론이 갖는 문제점들을 집중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매체비평의 필요성에 대한 조항제 교수의 글을 통해 기획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고자 한다.<편집자 주>

얼마 전의 탄핵정국에서 한국의 주요 언론매체들은 옹호와 비판이라는 상반된 입장으로 양분되어 큰 대립을 보였다. 무릇 매체라면, 따로 엄존하는 실체, 있는 현실을 온전히 반영·매개하면 그 소임이 끝나는 법인데 같은 것을 두고 이렇게 다르게 보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까.

오래됐지만 지금 봐도 감명이 식지 않는 영화 '라쇼몽'이 잘 보여주듯, 실체나 현실이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가변적인 무언가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다른 성장배경과 생존조건을 갖고 있는 언론들은 오히려 같은 눈을 갖기 어렵다는 관찰이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나 시점의 상대성을 뛰어 넘는 진실(혹은 진리) 같은 것이 아예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엄청난 논란을 부른 미국의 매카시 사건에서 그 핵심이었던 매카시리스트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진실이었다. 또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범법 행위였던 도청은 있었던 것이 진실로 확인되면서 대통령의 하야를 불렀다.

이렇게 진실이 발견되면 가능성을 두고 벌어지는 논쟁 따위는 단번에 종식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국’에서 이 진실은 찾아지지 않거나, 너무 늙게 밝혀지는 바람에 당장의 정의를 구현하는 데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이렇게 진실이 잘 찾아지지 않는 자리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성급하게 입장을 정하지 않는 신중함과 설사 입장을 정했더라도 쉽게 이를 바꿀 수 있는 열린 마음이다. 어떤 입장을 먼저 정해두고 이에 사실을 꿰어 맞추는 태도야말로 언론매체라면 가장 타기해야 할 것이다.

이외에 필요한 것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각 언론매체들의 입장을 중립적으로 검토?평가할 수 있는 제3의 장, 매체비평의 장이다. 아무리 언론매체가 신중하고 유연하게 처신한다 해도 한번 입장을 정하고 나면 그 입장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쉽게 그 입장을 수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입장에 자신의 지난 역사나 사익이 얽혀 있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각 언론이 지닌 입장들은 비교?검토되어야 한다.

매체비평은 각 매체가 지닌 속성과 입장 그리고 역사를 널리 살피고 사안을 대하는 입장을 면밀하게 비교한다. 신문과 방송,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 KBS와 MBC의 차이가 여기에서 드러나며, 각 태도가 지닌 장·단점이 가감 없이 상술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비록 진실 자체는 아니라 해도 진실에 가까운 어떤 입장을 선택할 수 있다.

물론 매체비평의 대상은 딱딱한 뉴스나 공식정치의 사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 접근방식은 드라마를 비롯한 픽션 장르나 게임쇼 같은 오락 장르의 영역에도 적용될 수 있다. 국가보안법 개폐에 대한 각 매체의 입장이 매체비평의 큰 대상이 되는 것처럼 멜로드라마의 관습 역시 매체비평이 즐거이 다루는 소재이다. 멜로드라마의 근저에 깔려있는 젠더 정치 역시 그 어떤 것 못지않게 우리를 옭죄는 것이기 때문이다.

매체비평은 궁극적으로는 일반 독자·시청자들을 위한 것이지만 작업의 성격상 쉬운 글이 되기는 어렵다. 그래서 먼저 필요한 것이 지식인용 매체비평이다. 언론의 입장을 직접 생산하기도 하면서, 반대 입장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너그러운 지식인 사이의 언론에 대한 논쟁과 토론은 매체비평이 일반 대중에게 가까이 가려 할 때 거치면 좋은 전단계이다. 특히, 마치 자신이 정치기구인 것처럼 자주 자신의 의견을 강조하면서도 막상 경직된 처신을 보이고 있는 최근의 한국 언론에 수준 높은 매체비평은 긴요한 처방이 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매체비평은 거울 또는 필터에 비유될 수 있다. 잘된 매체비평은 언론을 더 성찰적이게 하고, 개별 입장이 지닌 편파성을 여과시켜 사회 전체의 의견지도를 균형되게 만들기 때문이다.

조항제/부산대·신문방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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