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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North Face ①] 평양으로 간 블랙 팬서
[김성희의 North Face ①] 평양으로 간 블랙 팬서
  • 김성희
  • 승인 2021.04.27 0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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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North Face'를 시작합니다. 냉전이라는 새로운 갈등의 시대에 냉전시대를 되돌아보며, 화해와 평화에 관한 지혜를 얻고, 갈등과 분쟁에 관한 반성을 담아, 신냉전 시대의 남북 문화사를 이야기 합니다. 

미국 마블 스튜디오의 2018년 영화 「블랙 팬서」에는 부산이 등장한다. ‘와칸다’라는 가상의 왕국에서 생산되는 신비의 금속광물 비브라늄.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를 만드는 데도 사용되는 이 광물의 밀거래를 막기 위해, 주인공 블랙 팬서가 부산 자갈치 시장으로 가는 것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블랙 팬서는 부산이 아닌 평양으로 갔다. 여기에서 블랙 팬서란 블랙 팬서당(Black Panther Party)을 말하는 것이다. 이들의 평양 방문은 비브라늄이 아닌 ‘진리’를 찾는 여정의 일부였다. 블랙 팬서당은 미국의 흑인민권단체였다. 이들은 미국의 흑인 공동체를 백인 경찰들로부터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폭력을 통해서라도 경찰에 저항해야 한다고 믿었다. 1966년에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설립된 이 단체는 흑인민권운동사에서 가장 중요한 단체 중 하나였다. FBI의 국장이었던 존 에드가 후버(J. Edgar Hoover)가 블랙 팬서당을 가리켜 “국가안보의 가장 큰 위협”이라고까지 했을 정도로, 이 단체가 지닌 영향력은 대단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블랙 팬서당의 지도자 중 한 명이었던 엘드리지 클리버(Eldridge Cleaver)가 북한 주체사상의 열혈한 추종자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1971년 뉴욕의 그로스먼 출판사가 영어로 출간한 『주체! 김일성의 연설과 저작』이라는 책의 서문에서 김일성의 연설과 글이 전세계 피압박 민중들에게 무엇이 옳은 것인지에 관해 가르쳐주고 있다고 적었다. 

클리버는 불명확한 발음으로 두서없이 이야기하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산문에는 대단한 힘이 있었다. 1965년에 출판된 그의 옥중 자서전 『얼음 위의 영혼(Soul on Ice)』은 그런 힘을 보여준 책이었다. 출옥하자마자 이 책으로 인해 그가 블랙 팬서당의 지도자 중 하나가 된 것을 보면, 이 책이 당시 흑인 민권운동가들에게 준 영감은 엄청났던 모양이다. 

이 책에서 클리버는 말콤 엑스, W. E. B. 두 보이스, 로버트 프랭클린 윌리엄즈, 체 게바라, 피델 카스트로 등을 언급한다. 하지만 그의 지적 여정이 거기에서 멈춘 것은 아니었다. 그가 1969년과 1970년 평양을 방문해서 북한 정치인들을 만나고, 의료제도 등 그곳의 복지체계에 관하여 알게 되자, 그는 자신이 평생을 바쳐야 할 일과 그 일을 성취할 방법을 찾았다고 기뻐했다. 

클리버가 평양에 처음 방문한 것은 1969년 9월의 일이었다. 9월 18일과 24일 사이에 열린 ‘반미기자회의’라는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입북한 것이었는데, 그곳에서 그는 미국을 대표해 연단에 서서 연설을 한다. 『로동신문』에는 사람들을 총을 들고 원쑤들과 싸움터에 나서게 하는 기사, 수필, 시, 책들을 쓰자!」라는 제목의 연설로 보도가 됐다. 클리버는 이 연설에서 ‘미제국주의’를 맹렬히 비판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그런 뻔한 반미 레토릭이 아니라, 그가 평양에서 받은 “환대”에 대해 감격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시 미국을 떠나 세계 각지를 떠도는 망명자의 처지였던 엘드리지 클리버와 그 가족을 위해, 북한당국은 성대한 파티를 열어준다. 범죄자가 아닌 외교사절로 예우해준 것이었다. 

블랙 팬서당과 북한의 관계를 연구한 벤자민 영 교수에 의하면, 클리버의 평양 방문 이후로 블랙 팬서당의 기관지, 『블랙 팬서(The Black Panther)』에는 김일성의 글이 거의 매호마다 실리곤 했다고 한다. 분명 평양 방문을 통해 엘드리지 클리버는 주체사상의 추종자가 된 듯했다. 심지어 클리버는 자신의 딸 이름도 ‘자주 영희 클리버(Joju Younghi Cleaver)’라고 지을 정도로 북한에 매료되었다. 하지만 이는 주체사상의 이념적으로 우수해서였다기보다는 평양에서 클리버와 그의 가족들이 미국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환대를 받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조직 내 갈등으로 인해 클리버는 이후 블랙 팬서당에서 쫒겨난다. 통일교도가 되기도 하고, 이슬람교도가 되기도 했던 그는 1980년대에는 로널드 레이건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기도 한다. 말년에 그는 약물과 절도죄로 자주 경찰서를 드나들었다고 한다. 엘드리지 클리버는 1998년 숨을 거둔다.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운동의 영향으로 최근 블랙 팬서당은 미국 매체에서 자주 언급된다. 이들에 관한 영화도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블랙 팬서당의 시카고 조직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유다와 블랙 메시아(Judas and the Black Messiah)」라는 영화는 아카데미상 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과 북한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는 대중의 관심 밖에 있다. 냉전시대보다 더 교류는 어려워졌고, 북한은 잊힌 존재가 되고 말았다. 

김성희 북한대학원대학교 남북한마음통합연구센터 연구교수
하버드대 동아시아언어문명학과에서 「권위와 감정: 북한문학의 종교적 상상력」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북한대학원대 남북한마음통합연구센터 연구교수로 있으면서 문학이론, 북한문학, 동아시아 냉전 문화 등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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