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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지원 거품 빼고, 저술지원 늘려야
논문지원 거품 빼고, 저술지원 늘려야
  • 최철규 기자
  • 승인 2004.09.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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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에 편중된 현재의 학술 지원 시스템을 저술 분야로 확대하여 논문작성과 저술 활동이 균등하게 지원돼야 한다는 학계의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학술지 평가 체제의 허점을 이용하는 일부 교수들의 비양심적 행태에도 불구하고 학술지 평가 체제는 연구하지 않는 교수들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하는 외압적 효과가 있다. 또한 박사급 연구원들의 논문 게재를 보장하고, 동시에 연구지원비를 보조한다는 측면에서 학문 후속세대에 대한 연구 지원이라는 긍정적 의의도 지닌다. 문제는 ‘학문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현재의 논문 양산 시스템이 지니는 영향평가가 부재하다는 것이다.

임경환 인하대 강사(행정학)는 “대중성을 염두에 둔 저서보다 전공 분야의 전문성을 보다 깊이 살릴 수 있기 때문”에 논문이 저서보다 학문적 의의가 더 깊다고 한다. 장황한 설명 없이 핵심적인 맥락만 집중적으로 정리할 수 있기 때문에 작성자가 시간과 노력을 절약할 수 있고, 다른 연구자들도 핵심만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는 것도 논문이 지닌 장점이다.

그러나 분량이 제한되는 논문의 형태가 학문의 질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도 논문은 취급범위에서 제약을 받기 마련이다. 김석영 영남대 강사(국문학)는 “많은 논문들이 주제와 연관된 깊은 고민을 담지 않은 채 단순히 외국의 새로운 학술 동향이나 신진 학자의 이론을 개념 중심으로 소개”하는 것에 그치고 만다고 지적한다. 반면, 저술의 경우 긴 호흡을 가지고 연계된 문제를 폭넓게 사고하고 체계화시킬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학문 분야의 성격에 따라 논문이나 저술의 필요성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기도 한다.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저술의 학문적 우위성에 대한 암묵적인 합의가 존재한다. 설득력 있게 자신의 견해를 전개해야 할 필요가 있으므로 당연히 긴 글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면, 이공계 분야에서는 실험에 대한 결과 보고서 형식의 논문 형태가 불가피하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이영남 충북대 교수(미생물학)는 “기술의 발전 속도가 대단히 빠르기 때문에 관련성과를 다 소화해서 하나의 책으로 내려면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는 문제”도 있다고 말한다.

‘이공계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과학교육의 부실화를 꼽는 이덕환 서강대 교수(화학)는 위기 타파를 위해서라도 이공계 분야에서 교양서 등의 저술활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의 외형적 측면만 고려하여 과학 교양서 저술을 천대하는 일종의 지적 허영심”과 완고한 ‘원서 숭배’ 전통이 이공계 분야의 저술 활동을 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존재한다고 덧붙인다.

한편, 저술 활동의 활성화를 가로막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도 간과될 수 없다. 학술저서의 시장이 협소한 현 상황에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저술을 한다는 것이 경제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야기할 수도 있다. 교내 업적 평가에서 저술의 실질적 메리트가 없는 것도 저술의 활성화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예컨대 홍익대의 경우, 국제저명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은 8점을 부여받지만, 전문학술저서는 5점을 부여받는다. 전남대는 국제전문저서를 SCI급 저널 게재 논문보다 우대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국제전문저서를 쓰기가 매우 어려운 반면, 게재할 수 있는 국내외 저널의 양은 많기 때문에 저술 우대 정책이 실질적 유인책으로 작용하는지는 의문이다.

학문의 질을 제고할 목적으로 논문과 저술 양자의 긍정적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지원 제도를 수립하기 위해 교수 및 학술 지원 담당기관의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최철규 기자 hisfuf@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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