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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식민지 근대화론'의 문제점
특별기고 : '식민지 근대화론'의 문제점
  • 이노형/울산대 국문학
  • 승인 2004.09.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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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사는 '정치사' 규명이 핵심

대한제국이나 식민지사에 대한 논쟁을 접하면서 근본적인 의문을 가져 본다. 그것은 역사관이다. 이와 관련해 그간의 논란을 정리한 박섭 교수의 견해에 따라 먼저 논쟁의 요점을 제시해 본다. 논쟁의 근본적 내용은 곧 식민지 일반에서 조선총독부를 비롯한 제국주의 지배구조가 근대화에 기여한 부분이 있는가 아니면 전혀 없는가에 대한 것이다. 논리적 면에서 전자는 일제의 조선점령은 근대화에 기여한 것이 되며 후자는 그것은 경제적 근대화에 기여했을지라도 본질적으로 수탈사일 따름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두 견해 모두 식민지근대화론이라고 하는 점에서는 서로 일치하는 견해다. 하지만 식민지근대화론의 내부 차원에서는 서로 차이점을 지닌다. 상대적 차원에서 각각을 명명해볼 수 있다면 이른바 전자는 식민지발전론이요 후자는 식민지수탈론이라 할 수 있다.

식민지발전론이 지닌 허점, 곧 근대적 생산력만 주목했을 뿐 식민지적 생산관계인 수탈관계를 주목하지 않은 오류에 대한 비판은 이미 식민지수탈론에서 줄곧 제기했던 것이다. 여기서는 결정적 오류를 지닌 발전론이 아닌 수탈론이 지닌 문제점을 말해보자. 

식민지역사를 수탈사로 이해할 경우 가장 어려운 문제점은 민족독립운동, 곧 근대적 정치운동의 의미를 평가해주더라도 이차적 수준의 평가에 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역사 규정에서 정치운동의 평가를 소홀히 할 경우 식민지사는 수동적인 역사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왜냐. 정치주권은 말할 것도 없고 경제주권이나 교육문화주권도 수동적인 수탈대상으로만 존재했기 때문이다. 물론 노동도 그러하다.

그러나 민족선열들은 그 내부적 편차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민족 근대화의 선차적 전제는 민족독립 곧 정치주권의 회복임을 선명하게 인식했고 실천했다. 그러한 인식과 실천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참으로 적극적이고 격동적인 것이었다.

3.1운동, 6.10 만세운동, 광주학생운동, 사회주의계열의 항일무장투쟁의 성격의 치열성과 정치성은 상식적인 사실이다. 30년대 이후 농민운동과 노동운동도 단순한 생존권투쟁만이 아닌 민족해방을 지향한 정치투쟁이었다. 그들 민족해방투쟁사에서 내건 본질적 목표는 무엇보다도 민족의 정치주권 회복임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식민지역사 규정의 결정적 기준은 경제나 문화가 아니라 정치영역의 정치투쟁에서 찾아져야 한다. 경제나 문화 영역의 투쟁도 정치투쟁일 경우 그 일차적 의미는 경제적 문화적 것이 아니라 정치주권 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투쟁으로 이해돼야 한다. 식민지역사에서 이렇듯 진정한 근대화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있었음에도 그를 소홀히 할 경우 민족사와 민중사는 극단적으로는 노예사로 이해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근대화에서 우리는 수동적인 대상이며 일본 제국주의는 적극적 주역이라는 이상한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이것이 ‘성장’의 함정이다.

다만 정치적 민족해방의 결정적 힘의 소재가 민족선열인가 핵폭탄인가, 아니면 그 둘인가 하는 등의 구체적인 논란은 남을 것이다. 만일 힘의 주인공이 히로시마일 경우에는 수탈론의 견해는 여전히 설득력을 지닐 수 있다. 하지만 전자일 경우 수탈론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사관일 수가 있다. 식민지근대화론은 정치영역, 특히 정치투쟁사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소홀히 다루고 있다는 데에서 식민지사 해명에 이런저런 수준의 난점을 지닌 사관일 수 있다. 중세화, 근대화, 현대화의 어느 쪽이든 역사발전의 본질을 경제에 둘 경우 그 근본적 추동력이나 진정한 의미를 선명하게 드러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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