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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퇴출 고육지책…법인 '사유화' 우려
대학퇴출 고육지책…법인 '사유화' 우려
  • 허영수 기자
  • 승인 2004.09.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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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기획-사립학교청산법 도입되나

 

교육부가 해산법인의 잔여재산 일부분을 재산출연자에게 귀속한다는 내용의 소위 '사학청산법'을 '대학구조개혁방안'에 끼어넣는 방식으로 나름의 대학 퇴출 방안을 내놓았다. 1996년에 도입된 대학설립준칙주의로 인해 빚어진 '대학의 남설'을 '해산장려금'을 통해 유도한다는 얘기다. 대학설립준칙주의의 중대한 오류는 '교육이 시장과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을 간과했다는 점에 있었다. 경쟁력이 없는 대학은 저절로 문닫으리라는 교육부의 계산과 달리, 재정난에 허덕일지라도 스스로 문닫은 대학은 없었으며, 학생의 학습권, 법인의 공익성, 교권 등 시장 논리에 부합하지 않는 변수들이 작용했던 것이다. 예상했던 바대로, 학생은 모자랐고, 대학은 넘쳐나는 데다, 법인은 경영권을 놓지 않았으며, 학위 남발, 입시홍보 부정 등 사회적 문제는 심각해질대로 심각해져버렸다. 고육지책으로 교육부는 원칙을 버리는 대신, 현실적인 해법으로 '사학청산법'을 내놓았다. 재산출연자의 '사적 소유'를 인정하는 이번 법안이 어떤 파장을 미치게 될지는 미지수다. '사학청산법'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놓고 벌이는 교육부, 교육·시민단체, 사학법인연합회의 공방들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문닫는 대학의 설립자에게 해산장려금을 주면, 대학 퇴출이 활성화될까.

교육인적자원부(이하 교육부)가 지난 달 31일 '대학구조개혁방안'에서 '법인 해산시 재산출연자에게 해산장려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사학청산법 도입'을 밝힘에 따라, 이를 둘러싼 교육부, 교육시민단체, 사학법인연합회 간의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교육부가 나서서 학교법인을 개인의 '사적 재산'으로 만들고 있다는 지적에서부터, 퇴출 효과도 없이 공공성이라는 원칙을 버린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고의적으로 해산되는 법인이 등장할 것이라는 인식도 팽배하다. 해산장려급을 지급한다고 해도, 지급액, 지급 대상자 등에 대한 합리적 기준을 마련할 수 없다는 견해도 지배적이었다.

□ 교육인적자원부, "현실적으로 불가피하다" = 교육부의 논리는 간단하다. 학생 모집이 안 돼 학사과정을 제대로 진행할 수 없을 지경의 대학들이 있고, 이들 대학들을 퇴출시키기 위해서는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는데, 이들 대학들이 버티면서 5∼10여년 동안 더 대학을 운영하게 되면, 가장 피해를 보게 되는 당사자는 학생이라는 주장이다.

대학법인을 해산할 경우 잔여재산의 일부나마 재산출연자에게 귀속시킨다면, 학생수 격감으로 불가피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학법인들의 자발적인 해산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

최진명 교육부 사학지원과장은 "결코 사학에 특혜를 주자는 것이 아니며, 그 무엇보다 학생들의 피해를 줄이자는 취지에서 추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비리사학일 경우에는 해산장려금을 지급하지 않는 등 예외조항을 둘 것이기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했다.

교비 유용 등 사학 비리가 있는 법인과 고의로 대학을 해산시키려고 하는 법인을 겨냥해 '잔여재산귀속 특례인정 예외'를 두고, 해산장려금을 계산할 때 학생 등록금, 국고보조금으로 조성된 재원은 제외하면서, 출연한 재산을 넘지 않는 수준에서 지급한다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취했다.

□ 교육·시민단체, "대학법인, 개인 소유물 아니다" = 전국교수노동조합,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교육·시민단체들이 문제시하는 부분은 교육부가 법을 개정하면서까지 대학법인의 재산 중 일부를 재산출연자의 '사유물'로 인정한다는 데에 있다. 재산을 환원시킬 경우, 비영리 공익법인이라는 지금의 대학법인의 성격과 설립 취지를 더 이상 지킬 수 없다는 것이다.

전국교수노동조합,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교육·시민단체들이 문제시하는 부분은 교육부가 법을 개정하면서까지 대학법인의 재산 중 일부를 재산출연자의 '사유물'로 인정한다는 데에 있다. 재산을 환원시킬 경우, 비영리 공익법인이라는 지금의 대학법인의 성격과 설립 취지를 더 이상 지킬 수 없다는 것이다.

법인의 공공적 성격은 "사학을 위해 제공된 재산은 국가 사회에 바쳐진 공공재산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사유물 같이 다뤄져서는 안 된다"라는 한국사학법인연합회의 '윤리강령'에서도 표명된 것으로, 사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지켜져야 할 원칙이라고 주장했다. 학교법인을 영리법인화시키는 전 단계라는 예측과 함께, 계획된 교비 유용·회계부정 및 고의적인 법인 해산을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도 컸다.

사학청산법에 대한 교육·시민단체들의 민감한 반응에는 사학과 교육부에 대한 불신과 무관치 않다. 최근 잇따른 교육부 감사에서 동해대, 대구외국어대 등이 설립될 당시에 출연한 재산이 없거나, 타 대학의 교비였다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던 것. 사학 재단의 교묘한 회계 비리, 교육부의 감독 부실·소홀 등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공통된 정서로 나타났다.

이화영 전국전문대학교수협의회 회장은 "부실 대학의 해산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제한 뒤 "잔여재산의 일부를 돌려줄 경우, 건실하게 운영하면 정상적일 수 있는 상황에서 설립자가 마음대로 해산시킬 수도 있고, 비리 재단이 부당한 이익을 취할 수 있는 등 사회문제를 일으키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자산평가 방식과 해산장려금의 규모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어려울 뿐 아니라, '해산'은 교수들을 관리·위협하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사학법인연합회, "학교법인을 他 공익법인으로" = 한편, 사학법인연합회는 법인을 해산할 때, 잔여재산의 일부를 주기보다 오히려 다른 공익법인으로의 전환을 주장하고 있었다. 일명 '사학청산법'이 도입된다해도, 해산장려금을 받기 위해 '퇴출'을 고려하는 법인은 거의 없으리라고 내다봤다. 이러한 판단은 기본재산의 가치가 출연할 당시에 비해 10여배 이상 뛴 데다, 정원의 30%만 모집한다면 대학 운영이 가능하다는 계산 때문이다.

한국전문대학법인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퇴출법안이 한계 법인들이 교육부가 해산명령을 내리기 전에 구조조정을 단행하거나, 다른 법인과의 인수·합병 등을 추진하게 하는 촉매제가 될 수는 있겠지만, 이로 인해 퇴출되는 법인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지방이라는 사실 때문에 대학 운영이 안 되는 사학 재단 중 상당수가 대학의 유휴시설을 노인복지시설, 휴양시설, 문화시설로 전환할 것을 희망하고 있다"라며 다른 비영리법인으로 전환돼야 된다는 견해를 고수했다.

현재 교육부는 해산장려금의 지급 규모와 합리적인 기준 등에 대해 꽤 오랫동안 검토했지만, 아직 아무 것도 확정하지 않은 상태. 해산장려금지급에 대한 비판적 여론에 부딪힐 경우, 교육부가 과연 재검토한다는 입장으로 선회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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