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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페미니스트 연구자의 과제
[學而思] 페미니스트 연구자의 과제
  • (조주현/계명대·여성학)
  • 승인 2001.05.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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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5-03 13:10:35
페미니스트 질적 연구의 지형이 변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질적 연구방법은 실증주의 혹은 신실증주의 패러다임에 대한 비판과 견제의 역할을 하면서 발전해 왔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경향은 실증주의를 비판하는데 시간을 소모하기보다는(그를 통해 스스로의 방법론의 정당성을 확보 받는) 스스로의 지식체계를 확립하는데 주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전통적인 페미니스트 질적 연구는 서술과 해석의 엄격한 구분을 통해 연구자의 편견을 제거하고 연구결과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에 근거해 지식생산에 참여한다. 이 같은 질적 연구는 사회학과 인류학을 시작으로 해서 현재 인문·사회·자연과학 전반에 광범위하게 수용되어 있는 방법이며 여성학에서는 페미니스트 경험론과 페미니스트 입장론이 이 방법을 수용한다. 전통적 연구는 서술을 구성하는 현장노트, 심층면접 자료, 문화·시각 텍스트 등이 사실임을 전제로 연구한다. 여성학의 경우, 연구대상자의 경험의 사실성에 근거해 성별화된 사회체계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연구가 이에 속한다.
그런데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전제되고 있는 이 경험이 사실상 이미 해석이면서 또 해석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되는가. 경험자료(서술)가 사실이 아니라 이미 해석이라면 서술과 해석의 엄격한 구분이라는 질적 연구의 기본체계는 무너지게 되며, 이것은 질적 연구결과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어렵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모든 문화기술지는 허구라는 80년대 중반 포스트모던 인류학자들의 선언은 바로 이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여기서 허구는 진실에 반대되는 거짓이라는 뜻이 아니라 사실을 구성하고 만들어낸다는 뜻에서의 허구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이 허구가 ‘부분적 진실’을 담고 있는 ‘진정한 허구’인지가 관건이 된다.
90년대에 부상한 실험적 페미니스트 질적 연구는 연구자와 연구대상이 모두 해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전제 아래 바로 이 같은 두 가지 특징, 즉 질적 연구가 원자료로 삼고 있는 경험이 사실이 아니며 재현이라는 것, 그리고 연구자의 입장이 중립적일 수 없다는 점을 오히려 부각시켜서 치밀하게 연구과정과 연구결과에 반영하려는 연구방법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점은 연구자의 주관성(입장)을 전면에 부상시키는 것이다. 연구자의 입장(혹은 문화적 자아)은 약점이 아니고 오히려 연구의 자원이며 질적 연구의 기본을 이룬다. 연구자는 연구과정 전반에 걸쳐 자신의 역할에 대한 강한 성찰을 해야 하며 그 결과를 연구에 반영시킬 것이 요구된다. 즉 해석을 선택적으로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선택적으로 해석했는지 그 결정과정에 적용된 논리를 분명히 보여주는 전략이다. 둘째, 연구대상의 목소리가 이미 하나의 해석이기 때문에 그것을 주어진 사실로 삼기보다는 그 목소리를 문제화한다. 즉 그러한 목소리로 나오게 한 물적·사회적·경제적·성적 조건을 분석한다.
연구자의 해석과 연구대상자의 해석 모두를 문제시하는 실험적 질적 연구에서 연구결과의 서술방식은 그 자체로 정치적이며 실험적이 될 수밖에 없다. 연구자와 연구대상자 이 둘의 목소리를 어떤 방식으로 엮을 것인가, 연구자의 연구과정에 대한 성찰, 연구대상의 시각, 연구결과의 서술을 어떤 형식으로 표현할 것인지 자체가 결정해야 할 사항이 된다. 연구결과의 학문적 성과에 대한 평가 역시 정당성과 연구자의 중립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 진실, 성찰성, 위치지어진 지식의 기준에 의해 이루어진다.
앞으로의 페미니스트 질적연구는 전통적 연구와 실험적 연구가 서로 경쟁적으로 공존할 전망이다. 그러나 어떤 방법을 선호하든지 페미니스트 연구자는 자신의 연구방법을 스스로 공개적으로 문제삼을 수 있어야 한다는 당위에 직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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