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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_계보 밖 주변인
문화비평_계보 밖 주변인
  • 강현아 전남대
  • 승인 2004.09.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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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대학원 여학생이 연구실에 얼굴을 내밀었다. 서로 바쁘게 살다보니 얼굴보기 쉽지 않았던 터에 반가웠다. 안부인사가 오간뒤 그 여학생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다. 아니, 어떻게 보면 나 또한 그런 고민을 하며 살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는 자기고민의 원인을 ‘계보’ 탓이라 했다. 계보라…. 어떤 학문이론의 계보는 늘 그려봤던 것이라 익숙하지만, 그런 계보가 아니었다. 한 연구기관의 프로젝트에 합류해 일해보고 싶었는데, 자기에겐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계보’를 훑어 내린다. 연구자의 능력과 자질을 고려하기보다는 계보가 우선되는 현실에 깊은 좌절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 연구기관의 인선과정이 실제로 그러했는가의 여부를 떠나 벌써 20여년 동안 몸담고 있는 대학내 인간관계에 대한 여러 상념이 교차했다.

대학사회에서 인간관계는 중요하면서도 힘들다. 수직적인 관계는 더욱 힘들다. 교수와 제자, 선배와 후배 사이 등 위계서열적인 관계로 경직된 게 대학내 인간관계이기 때문이다. 성별, 연령, 학번, 지위라는 다양한 변수로 이뤄진 수직관계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여성의 경우 수직관계가 다소 생소하기에 더욱 적응하기 어렵다. 물론 남성 중에서도 이러한 수직관계에 적응이 안돼서 고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원 여학생이 말한 ‘계보’는 아마도 대학사회의 위계서열적 관계를 달리 표현한 것일 뿐 그 의미는 동일할 것이다.

대학사회의 남자 선후배 관계 또는 남 교수와 남 제자라는 이러한 수직관계는 군대문화의 계급관계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경험적으로 봤을 땐 별 차이가 없는 듯 하다. 이러한 수직관계 속에는 사랑과 배려, 챙겨주는 것 그리고 일을 성취해내는 힘이 있다고 하지만, 가끔씩 이런 사랑을 바라만봐도 힘겨울 때가 있다. 더구나 이 관계에서 여성은 철저하게 배제된다. ‘계보’ 밖의 주변인이다.

한 여성학자는 그 이유를 ‘남성=수직적 관계/여성=수평적 관계’를 지향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즉, 남성들의 문화는 수직적 관계를, 여성들의 문화는 수평적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 하지만 이러한 이분법적 논리는 문제가 있다. 수직관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남성들과 수직관계에 잘 적응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이 태어날 때부터 이러한 관계적 특성을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사회화과정에서 남성은 위계서열적 관계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훈련받으며, 더욱 중요한 점은 이 관계가 남성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자원동원력과 연줄망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여성들은 남성들의 수직관계에 끼어들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러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도 어렵다.

대학에서 학번을 중심으로 한 수직적 질서는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진보’와 ‘개방’이라는 이름으로 대학은 수직적 권력관계로 점철된 사회를 비판해 왔다. 특히, 정치권의 ‘계보정치’에 대해선 얼마나 비판적이었나. 그러나 대학은 그토록 비판해왔던 우리 사회의 수직적 권력관계로부터 자유로운가를 한번쯤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제도와 연줄망에 의한 인간관계보다 인격에 의해 형성된 관계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언제든지 가까이 할 수 있고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소우주’와 같은 인간적인 만남을 누릴 수 있도록.

그러나 솔직히 지금 이 순간까지도 망설여진다. ‘계보’를 말하는 그 여학생에게 대학사회의 불평등에 대한 어떠한 문제제기도 없이 ‘능력경쟁체제’의 허울을 고스란히 안고 이를 위해 수직관계에 순응해 살아가는 여성이 되라는 충고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러한 충고를 결코 해서는 안되는지. 너무나 뻔한 결론을 내리기에는 대학사회의 인간관계가 너무 어렵다.

강현아 / 전남대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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