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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에서 ‘자연’에 대한 관심으로
‘창조주’에서 ‘자연’에 대한 관심으로
  • 김채수
  • 승인 2021.04.20 0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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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글로벌시대의 도래와 홍익종군의 정신 21

필자가 역설하고자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이것이다.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이 미국중심의 글로벌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지금까지 우리가 취해온 존재가치의 향유 방법이 이제는 더 이상 먹혀들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근대 이후 동·서양의 역사를 주도해온 기독교문화권의 인간들은 인격신의 형태를 취하는 어떤 절대적 존재에 의해 자신들과 자신들의 세계가 창조되었다는 인간관·세계관을 지닌 자들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그러한 입장들이 그동안 인간들의 자연계에 대한 과학적 탐구와 다양한 체험들이 확대되어 나옴으로 인해 이 글로벌 세계에서 이제는 더 이상 이성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인간관·세계관에 기초해 작용해 왔던 전지구상의 정치력이나 경제력이 우리의 존재실현의 과정에서 더 이상 그 위력을 발휘해갈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면 금후 우리는 어떤 식으로 우리의 존재 가치를 향유하게 될 것인가. 한국인을 비롯한 우리 동아시아인들은 서구인들의 경우처럼 인간과 세계가 어떤 절대적 존재에 의해 창조되었고, 또 그것들이 바로 그 창조주에 의해 컨트롤당해 가는 존재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만일 그러한 절대자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인간과 같은 존재들을 생성해 낸 ‘자연’이라고 하는 불가사의한 존재 그 자체일 것이라는 입장을 취해온 것이다. 

단군신화의 경우가 그러한 사실을 여실히 말해주고 있다. 그 신화의 세계에는 신들이 활동해가는 천상세계라는 곳이 있고, 그 아래는 인간들이 생존해 가는 지상세계가 존재한다. 이 신화세계에 존재하는 신들이나 인간들은 어떤 절대적 존재에 의해 창조된 것들이 아니다. 다만 이 세계에는 천상과 자상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신과 인간과의 관계가 어느 정도 종속적으로는 기술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 세계는 『구약성서』의 「창세기」 신화세계의 경우처럼, 인간과 세계를 창조한 ‘창조주’가 존재하고, 또 그 절대적 존재와 그의 세계 속에 존재하는 인간이 주종관계에 처해있는 그런 세계는 결코 아닌 것이다. 

기독교문화를 기반으로 해서 형성된 현대자본주의사회 속에서의 인간들 사이의 관계와 국가들 간의 관계는 크게 삼종으로 분류된다. 우선 하나는 「창세기」 신화의 세계 속에서의 ‘창조주’와 그의 피조물인 인간과의 관계와 같은 주종관계이다. 다른 두 종은 피조물들 간에 맺어지는 관계들인데, 그것들 중 하나는 ‘창조주’의 대리인 역할을 해가는 목회자와 그의 신도와의 관계와 같은 그러한 종속적 관계이다. 나머지 하나는 목회자들 간이나 또는 신도들 간, 더 나가서는 비 신도들 간 등에 존재하는 평등관계이다. 기독교문화를 배경으로 해서 형성된 자본주의사회는 개개인들이나 각국들이 보유하는 재산의 다소(多少)에 근거해 맺어진 주종, 종속, 그리고 평등이라고 하는 세 종류의 관계들을 통해서 이루어져 있는 사회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간의 자연계에 대한 인간들의 과학적 연구와 다양한 체험들이 축적되어 그것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고 또 그러한 것들을 통해 형성된 인간들의 이성적 사고가 일반화되어 나옴에 따라, 인간들의 ‘창조주’의 존재에 대한 확신이 약화되어, ‘창조주’중심의 세계관에 기초해 형성된 바로 그러한 삼종의 관계들을 기반으로 해서 확립되어 나온 자본주의사회가 드디어 붕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금후 전 지구적 규모의 세계체제는 ‘자연’중심의 동아시아인들의 인간관·세계관에 입각해 구축되어 나올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김채수 전 고려대 교수·일어일문학
일본 쓰쿠바대에서 문예이론을 전공해 박사를 했다. 2014년 8월 정년퇴임에 맞춰 전18권에 이르는 『김채수 저작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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