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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판에 대한 감수성 키워 사형제 만들어낸 인류
평판에 대한 감수성 키워 사형제 만들어낸 인류
  • 김재호
  • 승인 2021.04.23 0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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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 한없이 사악하고 더없이 관대한 (인간 본성의 역설) | 리처드 랭엄 지음 | 이유 옮김 | 을유문화사 | 480쪽

이 책의 영어 제목은 ‘The Goodness Paradox(선함의 역설)’이다. 우리는 타인이 언제나 선하거나 혹은 늘 나쁘다고 단정짓는 경향이 있다. 단순한 걸 선호하는 흑백논리다. 저자인 리처드 랭엄 하버드대 교수(인간진화생물학과)는 인간이 갖고 있는 미덕과 폭력성이 진화상 공존해 왔다고 주장한다. 수렵채집을 하던 옛날부터 말이다. 성선설이나 성악선이 아니라, 성선악공존설 정도라고 할까. 

히틀러는 수백만 명을 죽게 했으나 비서에겐 친절했다. 심지어 히틀러는 채식주의자이면서 동물 학대 혐오자였다. 국민 200만 명을 죽음으로 내몬 캄보디아 지도자 폴 포트는 지인들한텐 친절한 프랑스 역사 선생님이었다고 한다. 이 정도면 흔히 말하는 사이코패스에 가깝다. 

그런데 랭엄 교수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우리 인간은 가장 악한 종이기도 하고 가장 선한 종이기도 하다.”, “다른 영장류와 비교할 때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매우 낮은 수준의 폭력을 행사하지만,  전쟁 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은 매우 높다. 이런 불일치가 선함의 역설이다.” 인류는 자기 길들이기와 사회적 배제, 징벌을 통해 진화해왔다. 이 과정에서 인류는 좋음·나쁨을 동시에 갖게 됐다. 

자기 길들이기로 선악을 진화시키다 

어떻게 사회적 관용과 공격성이 공존할 수 있을까? 책에는 침팬지와 보노보의 사례가 나온다. 침팬지는 폭력적이며 수컷 지배사회에서 산다. 침팬지는 때로 새끼를 죽이기도 한다. 보노보는 암컷 지배사회 속에서 폭력보다는 에로티시즘을 활용한다. 랭엄 교수에 따르면, 보노보는 공격적인 수컷을 암컷 무리들이 협동해 제어한다. 여기서 랭엄 교수는 질문을 던진다. “왜 인간은 보노보처럼 관대하면서 침팬지처럼 폭력적인가”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공격성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반응적 공격이다. 즉각적이고 화끈한 반응적 공격은 보노보의 사례와 같이 오히려 협동력을 키웠다. 특히 인간은 진화학적으로 도덕을 키워오면서 비판·평판에 대한 감수성을 길러왔다. 여기서 필요한 게 바로 언어였다. 비판받으면 흥분하는 우리를 보라. 랭엄 교수는 도덕성에 따르지 않으면 사형시킬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둘째, 주도적 공격이다. 계획적이고 냉정하게 폭력을 행사하는 전쟁이 그 예다. 또한 주로 성인 남성들에 의해 집행되는 사형은 사회적 통제의 일부다. 남성이 지니고 있는 폭력성은 도덕성과 사형제 등 새로운 형태의 지배를 만들어온 셈이다. 그래서 랭엄 교수는 사형제를 폐지하자는 결론에 이른다. 

인류는 반응적 공격은 낮게, 주도적 공격은 높게 진화해왔다. 집단적으로 폭력을 제어하기 위해 꾸준히 교육을 하며 사회를 통제해왔다. 책의 6장은 “약 30만 년 전부터 호모 사피엔스가 길들이기 증후군을 가졌다는 증거들을 추적”하면서 왜 폭력과 공격성을 줄인 종을 선호했는지 질문을 제기한다. 

이 책의 결론은 다음 문장에서 확인된다. “우리의 선함은 우리의 이기심이 과장되거나 줄어들 수 있는 것과 같이 강화되거나 타락할 수 있다.” 인류가 어떻게 선함과 악함의 균형을 갖추었는지 진화적으로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 본성과 양육은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일 수 있으나 상호작용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중요한 건 어떻게 폭력의 본성을 억누르고, 선함의 양육을 지향하는가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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