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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허송세월, 대학정책이 없다
10년 허송세월, 대학정책이 없다
  • 유원준
  • 승인 2021.04.20 0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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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미래, 대토론을 제안하며 ② 집단지성으로 풀어가자

학령인구 감소, 반값 등록금, 지방대 소멸, 코로나19, 그리고 올해 신입생 미달 사태까지. ‘생존’ 위기에 놓인 대학은 국립대와 사립대, 일반대와 전문대,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규모와 중소규모 등 대학이 처한 여건과 상황에 따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교육부 책임론도 커지고 있는 지금, 대학의 미래를 모색하는 ‘논전의 장’이 필요하다는 제안은 시의적절하다. 논전(論戰).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각각 자기의 주장을 말이나 글로 논하여 다툰다는 뜻이다. 최근  『대학자치의 역사와 지향 I, II』를 쓴 유원준 경희대 교수(사학과)가 세 차례에 걸쳐 ‘논전의 장’을 펼치는 멍석을 깔아 놓을 예정이다. 

① 대학의 미래 모색 위한 論戰의 장이 필요하다
② 대학 전문가는 없다. 집단지성으로 풀어가자
③ 대안은 무엇이며 개혁의 주체는 누구인가

 

“마냥 정부만 비난할 수는 없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정책을 만든 책임이 교수에게, 
특히 소위 ‘대학전문가’임을 자처하는 교수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1964년 12월, 윤천주 문교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제출한 '대학교육의 전망과 65학년도 대학정원 조정방안'은 비록 38쪽의 간략한 보고서지만 대학에 대한 정부 최초의 분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관은 그간의 대학정책이 임기응변에 급급하여 실효성과 신뢰성을 상실하였다고 진단하면서도 통계자료 부족으로 장기계획 수립이 곤란하다고 자인하였다.

이에 정부는 과학기술처에 대학에 대한 조사를 맡겼고, 1년여의 조사 끝에 '실태조사보고서'(1967)가 나왔다. 또 이를 바탕으로 최초의 대학백서인 '장기종합교육계획(안)'(1970)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당시 제기된 문제의 대부분이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대학의 현안 과제라는 점이다. 물론 1970년대 말 실험대학 추진을 계기로 교학 체제상의 변화가 일부 있기는 했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대학의 틀은 지난 40년간 큰 변화 없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1967년 12월, 윤천주 문교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제출한 38쪽 분량의 '대학교육의 전망과 65학년도 대학정원 조정방안' 보고서. 자료=국가기록원
1967년 12월, 윤천주 문교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제출한 38쪽 분량의 '대학교육의 전망과 65학년도 대학정원 조정방안' 보고서. 자료=국가기록원

물론 대학의 구조적 변화를 이루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최근 대통령 정책공약에 포함된 것만도 대학서열을 극복하기 위한 ‘대학특성화정책’과 ‘국립대학 통합 네트워크화정책’이 있었고, 사립대학의 공공성 향상을 위한 ‘공영형 사립대학’ 정책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 정책이 표방하고 있는 높은 이상과 선명한 목표에도 불구하고 총론에 비해 각론이 부족하며, 특히 구체적 실행계획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비판 속에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그 결과 전 정부에 이어 현 정부도 대학정책이라고 할 만한 것이 전혀 없는 정책 진공상태에서 10년을 허송세월하였고, 대학은 총체적인 부진과 부실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다고 마냥 정부만 비난할 수는 없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정책을 만든 책임이 교수에게, 특히 소위 ‘대학전문가’임을 자처하는 교수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깝게는 지난 10년, 길게는 그 이상 친정부적 교수들이 제안한 정책이 정부 내에서조차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 원인은 무엇인가? 우선 정책 생산능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대통령 후보의 정책개발팀이 만든 대학정책은 공론화 과정을 거치기 힘들고, 선거 전략상 교육의 본질 개선보다는 정치적 선전 효과를 우선 고려하기 때문이다. 설령 괜찮은 정책이 마련되더라도 교육부가 쳐놓은 장애물을 통과하기가 쉽지 않다. 오래 전부터 교육부는 소수 친위세력에게 정책연구를 의뢰하여 자기 입맛에 맞는 결과를 도출한 뒤 대학정책을 시행해 왔다. 정권 교체기에는 중장기 정책을 사전에 도입하는 이른바 ‘정책알박기’도 빼놓지 않았다.

대선 캠프와 각종 위원회, 누가 맡나?

이런 교육부의 관행과 저항을 극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정부 정책과제에 제대로 된 대학정책을 포함시키고 추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문제는 대선캠프의 멤버이던지 교육부의 각종 위원회이던지 그 선발이 공론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진행된다는 점이다. 학회나 단체의 추천을 받는 방식이 아닌 알음알이로 충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위원들의 역량을 검증하기 힘들고, 설령 위원 개개인의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대표성의 문제는 별개로 남는다.

국립과 사립, 일반대와 전문대, 수도권과 비수도권 정도의 고려는 하겠지만 다양한 전공에 대한 균형이 잘 갖추어지기 힘들며 교육학 전공의 발언권이 과다 대표되는 반면 대학 구성원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공학과 의학, 예술 분야의 발언권은 과도하게 축소되었다.

우선 정확한 대학 실태조사가 필요 

정치적 편향성도 문제지만 자원봉사 형식이라는 현실적 제약 속에서 충분한 인력과 자원의 지원 없이 좋은 정책을 수립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또 일정 수준의 보안을 유지하면서 촉박한 기일에 정책개발을 마무리해야 하므로 대학원을 포함한 광범위한 학문정책의 수립은 처음부터 포함되기도 힘들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대학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 자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학에 대한 핵심적인 정보는 대부분 차단되어 있다. 한국사학진흥재단의 자료만 제대로 공개되어도 대학에 대한 일정 수준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정부나 여당의 결단만 있으면 문제 해결이 어렵지는 않다.

다양한 전공과 이해관계 반영한 토론을

둘째, 교육부와 특정 전문가의 공생 구조 혁파가 필요하다. 보직 기간이 1∼2년에 불과한 교육부 관료로서는 단방 처방과 대증요법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교육부의 요구에 충실하게 만든 대응책은 문제를 개선하기보다는 악화시킬 가능성이 훨씬 높다. 최초의 대학 실태 조사를 문교부 대신 과기처가 주관하였고, 중학교 무시험 전형도 법무부 출신 장관이 주도하였던 까닭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교육부는 늘 혁신과 거리가 먼 궤적을 그려왔다.

셋째, 대학정책학회나 국교련·사교련 등 교수단체가 논의의 장을 마련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언론기관의 협조도 필수적이다. 다양한 전공과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 있도록 참여구조를 확장하고, 집단지성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학법인이나 대학본부와의 소통을 위한 노력에도 힘써야 한다.

넷째, 토론의 장에서는 우선 기존 정책의 문제점과 유효기간에 대한 점검이 이루어져야 한다. 20년째 국가정책과제 리스트를 맴도는 정책의 경우, 정책 자체의 문제 때문인지 아니면 정치적 환경 때문인지 분석하고, 아무리 좋은 정책도 유효기간이 넘으면 냉정하게 버려야 한다. 그리고 초기 토론회 방식은 난상토론과 끝장토론 방식이 더 유용할 것이다.

대학평가 불가피하다면 행정역량 평가도 

다섯째, 대학평가가 불가피하다면 거버넌스 평가와 행정역량 평가가 포함되어야 하며, 지역별·대학별 자율지표를 과감하게 인정하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각기 다른 환경에 있는 대학을 대상으로 일률 평가지표를 적용하는 것은 획일화와 서열화를 촉진하고 대학 전체를 퇴행시킬 뿐이다.

여섯째,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고등교육이 발전하려면 반드시 안정적인 법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국립·사립대학법을 비롯한 법적 정비를 위한 논의가 별도로 진행되어야 한다.

끝으로 대학의 주체이며 대학 위기의 최대 당사자인 교수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행동해야 한다. 대학정책이 정당이나 교육부에 의해 채택되기 전에 교수사회의 공론화 과정을 거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 정치가 아닌 정책 결정 역량을 갖춘 학자들의 참여가 가능한 분위기 조성도 필요하다.

유원준 경희대 교수·사학과
대만 중국문화대학에서 송대사 전공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희대 대외협력처장과 문과대학장, 서울캠퍼스 교수의회 의장을 지냈다.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정책위원장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대학교수노동조합연맹 수석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근에 『대학자치의 역사와 지향 Ⅰ,Ⅱ』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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