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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찬스와 아빠 찬스
엄마 찬스와 아빠 찬스
  • 정영인
  • 승인 2021.04.20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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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정영인 논설위원. 부산대 의학과 교수·국립부곡병원장
정영인 논설위원(부산대)

 

세태를 냉소적으로 표현하는 내로남불이라는 한국의 신조어가 <뉴욕타임스>에 한국어 발음대로 소개되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임말인 ‘내로남불’을 한국어 발음대로 naeronambul로 표현하면서 뜻도 그대로 해석했다. If they do it, it’s a romance; if others do it, they call it an extramarital affair.

대개 중국의 고사에서 유래한 사자성어는 교훈이나 비유 또는 상징적인 내용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내로남불’은 사자성어처럼 회자되지만 별로 깊은 뜻이 없고 썰렁 개그 수준의 신조어로 내포된 의미도 희화적이다. 이 말은 사회적 지탄을 받을 행태를 남이 할 때는 비판하고 자신이 행할 때는 변명하거나 합리화하는 이중적 행태를 지칭한다. 이런 허접한 말이 한국의 사회 상황을 묘사하는 용어로 외국의 유력지에 소개될 정도로 일반어가 되었다. 어느 원로 정치인이 이 말을 유행시켰지만 정작 자신은 성추행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한국 사회의 내로남불 행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엄마 찬스’와 ‘아빠 찬스’는 최근에 젊은 세대들이 공정하지 못한 세태를 냉소적으로 표현한 내로남불의 또 다른 형태의 신조어다. 찬스(chance)란 어떤 일을 하는 데에 좋은 시기나 기회 또는 운을 뜻한다. 엄마나 아빠를 내세운 이 성어는 혼자서 해결하기 힘든 일을 부모의 사회적 영향력을 통해 해결하는 것을 냉소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닌 엄마와 아빠란 유아적 표현을 통해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부모뿐만 아니라 그런 부모의 그늘에서 독립적이지 못한 미숙한 존재를 동시에 조소한다. 자고로 청탁도 힘이 동반될 때 먹혀든다. 사회적 영향력을 통해 일이 해결된다는 점에서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라는 구호와는 동떨어진 말이다. 정경심 교수 딸의 의대 진학과 정민석 교수 아들의 조교수 임용이 대표적 사례다. 둘 다 교수들과 관련 있다는 점은 내로남불의 위선적 행태를 특히 비판을 생업으로 하는 교수들에서 흔히 본 필자 개인의 경험과 묘하게 중첩된다.

인간에게는 현실에서 용납될 수 없는 욕망을 충족시킬 필요가 있을 때 이를 합리화하거나 주위의 탓으로 돌려 자신의 자아를 보호하려는 경향이 있다. 도덕이 현실에서 금지된 욕망을 충족하는 걸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본능적 욕망과 도덕은 인격의 대척점에서 서로 끊임없이 갈등한다. 성숙한 사람은 궁극적으로 욕구 충족을 지향하면서도 현실의 요구에 맞게 절제하고 타협함으로써 갈등을 최소화하는 사람이다. 또한 성숙한 사람은 타인의 욕구에 대해서도 자신의 경우처럼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존중한다. 

내로남불은 자신의 욕구에 관대하다는 점에서 어쩌면 인간에 내재된 본능적 속성일 수 있다.  인간의 본능적 속성이라고 해서 내로남불이 그대로 용납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본능적 속성은 이기적이고 현실을 왜곡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도덕은 양심에 호소하고 양심에 반할 때는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완성된 인격은 현실에서 불가능하다. 누구나 위선적인 요소는 지니고 있다. 문제는 자신의 위선에는 눈감고, 타인의 위선에 대해서는 가혹하리만치 비난하는 행태가 문제다. 자신은 도덕적이지 못하면서 타인의 도덕성을 가혹하게 비난하는 위선적인 이중적 행태가 바로 내로남불이다. 

본시 자신의 허물보다는 타인의 허물이 더 크게 보인다. 내로남불이 함축하고 있는 교훈적 의미를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마태복음에 나오는 성경의 말씀이다.

정영인 논설위원
부산대 의학과 교수·국립부곡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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