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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여 교수로 살아가기
>한국에서 여 교수로 살아가기
  • 김용희 평택대
  • 승인 2004.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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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다'는 말로도 부족

언어, 지식, 학문, 문자 제국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이 기실 남성 전유물로서의 오랜 유산이라는 것을 환기한다면 공부를 하고 가르치며 제자를 삼고하는 일들이 얼마나 여성과 절대적 거리에 놓여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예컨대, 장정일 소설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서 바지입은 여자(관능의 상징)는 남자소설가를 찾아가 성행위를 하고 글을 쓰도록 강요한다. 하일지 소설 ‘경마장 가는 길’에서 불문학을 전공하는 여자는 파리에서 성관계를 맺고 자기 논문을 쓰는 데 남자에게 절대적 도움을 얻는다. 글을 쓰는 것은 남성의 일이다. 여성의 글쓰기는 남성을 베끼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한때 학회에서 페미니즘과 관련된 논문을 젊은 여교수가 발표하려하면 앞 플로어에 앉은 원로 남자교수들은 자리를 뒤틀어 앉거나 얼굴을 외면하기도 했다. ‘여성’에 대한 논의를 학회에서 한다는 게 마음을 편치 않게 했기 때문이다. 학회 오전발표는 흔히 두 섹터로 이뤄지는데, 1섹터에는 대개 남자교수가 발표를 하고 2섹터는 여자교수가 발표를 한다. 1섹터로 이미 얼마의 시간이 경과하고 심지어 점심을 앞둔지라 2섹터는 발표와 논의 시간을 되도록 짧게 해달라는 사회자의 강요를 들을 수밖에 없다. 남녀 구성비율 측면에서 학회에서의 회장과 부회장, 편집위원과 총무, 좌장과 기조발표자를 보자. 이를테면 문단에서 주요잡지 편집위원의 구성이 그렇다. 꽃은 하나면 충분하다는 오랜 묵계는 전통적으로 지켜지고 있다.

여성이 공부를 하고 학위를 받고 학계에 나가 교수사회에 진입하기까지를 ‘어렵고 힘들다’라고 단순하게 말하기엔 지독한 수사의 부족을 절감한다. 아니 여 교수가 남 교수에 대한 발언을 하게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桑田碧海를 느낀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에서 최고라고 알려진 모 대학 교수들은 박사과정에 여자를 아예 뽑지 않았다. “나는 여자를 제자로 두지 않는다”라고 원로 남자교수들은 외쳤다. 이들이 해금된 것이 월북문인들 해금과 비슷한 때 이뤄졌을까. 박사부부들은 유학을 함께 갈 경우 먼저 남편의 학위취득을 돕게 되고 그 다음으로 남편의 취직을 우선 도와야 상례였다. 가까스로 여성들이 학위를 취득하면 이제 전임취직에서 불이익이 기다리고 있다. 서울의 모 대학은 최근 공립대 여교수 비율 쿼터 때문에 교수채용공고문에 여 교수를 우선한다는 것을 명시하였음에도 연구실적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국립대출신 남자를 뽑음으로써 그 학과 전체를 남자교수, 국립대출신교수로 채우는 데 또다시 성공했다.

사실 여성이 교수로 취직을 해도 학교는 주요 보직과 행정일에서 여성을 철저히 배제한다. 여성에게 학문과 교육에 더욱 매진할 수 있게 하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대학 발전방향과 비전을 키워나갈 관리자로서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아니 여성은 실제로 ‘지도자’, ‘중간관리자’가 되기 위해 어떤 학습을 받거나 준비를 한 적이 거의 없다. 1980년대 이후 여대생 비율이 급격하게 증가했고 여성이 사회 중요 직책에 진출하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는 일이긴 하다. 다만 학계에서 여 교수들은 한국사회에서 지식인 여성이 갖춰야 할 사회지도자적 책임감, 보수적 전통과 맞설 수 있는 침착한 용기와 지혜를 성취해 가야 한다. 그것은 진보적 급진성이 아니라 부드러운 내면의 깊이와 매진의 힘으로 가능할 것이다.

김용희 / 평택대 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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