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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그 미래 가치
흔적, 그 미래 가치
  • 엄수경
  • 승인 2021.04.20 08: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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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사진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안다. 파리와 파리 사람들 사진으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사진가 중 한 사람이 된 1857년생 으젠느 앗제. 오늘날까지도 기록 사진을 찍고 예술 사진가로 칭송받고 있다. 사실 그는 기록을 위해 사진을 찍지 않았다. 먹고 살기 위해 화가들에게 풍경과 인물 사진을 촬영해서 팔았다. 당시 예술계에서 사진은 독립적 예술로 인정받지 못했다.

사진 예술성을 비판한 대표적 인물은 보들레르다. 1859년 『현대의 대중과 사진』에서 “사진은 충실하게 사물을 기록한다. 그러나 그 기능은 화가를 위한 심부름꾼으로서 인정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예술은 아닌 것”이라고 사진 예술성을 부정했다. 당시 예술가들은 사진은 사실 재현만 가능할 뿐, 그 이상 예술성을 지니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현재는 사진이 예술의 한 분야라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는다.

앗제는 사진과 인연을 맺은 후 상업 사진에 눈을 돌리지 않고 끈질기게 파리 뒷골목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러던 중 우연한 계기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준비되어 있었기에 기회가 찾아왔다. 20세기 초반 파리는 오스만 남작의 대규모 도심 재개발 프로젝트로 매일매일 변해 갔다. 앗제가 파리 시내를 기록한다는 것을 알고 파리시는 변화해가는 도시를 촬영해 달라고 의뢰했다. 도시는 날로 커지고 새롭게 건물들이 여기저기 올라갔다. 하지만 앗제는 개발로 인해 사라져가는 쓸쓸한 파리 모습을 카메라에 담담하게 담았다. 사회주의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공적, 사적으로 에펠탑이나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는 거대한 건물보다는 누구도 기록하지 않은 뒷골목 풍경, 새벽 파리 거리, 하층민 등을 촬영했다. 

앗제는 당대에 크게 평가받은 작가는 아니었다. 그의 사진 가치를 알아봐 준 사람은 미국 베레니스 애보트였다. 20세기 파리를 아카이빙한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첫째 앗제가 사진 기록을 했기 때문이고, 둘째 오스만 남작이 재개발되는 도시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 의지, 마지막으로 애보트가 원석을 알아봐 주었기에 가능했다. 그녀는 으젠느 앗제 사진을 수집해 미국 MOMA(미국 현대미술관)에 5천 점을 기증함으로써 사람들이 앗제 뿐 아니라 그의 사진을 눈여겨보고 새롭게 평가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역시도 어느 도시나 재건축, 재개발로 매일매일 도심이 달라지고 있다. 정겹던 골목길은 찾아볼 수 없고 삭막한 아파트빌딩 숲이 자리해 가고 있다. 사라져가는 도시 기억을 앗제처럼 기록하는 작가가 있을까? 오스만 남작처럼 사라져가는 도시를 아카이빙하고자 하는 공무원이 있는가? 

때때로 나는 어떤 의무감에 흔적 없이 사라져가는 건축물이나 동네를 기록해보려고 한다. 관계자에게 촬영을 부탁해보지만, 번번이 거절당한다. 어쩌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 쫓아와 그 자리에서 바로 사진을 지우라고 겁박한다. 다른 목적이 아니라 지금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우리 기억 속에서 마저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고 사정해보지만 마치 고발 사진이나 찍으러 온 것으로 취급당하고 쫓겨나기 일쑤다. 그때마다 넋을 놓고 한참 동안 그 자리를 떠나오지 못하곤 한다. 지자체가 나서서 재건축과 재개발 지역에 관한 기록을 의무적으로 남기도록 조례 등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도심 속 골목길에 서면 떠오르는 풍경과 단어들이 있다. 젊은이들에게는 생소한 풍경일지도 모르겠다. 좁은 길, 쉼터, 소통, 아낙들 수다, 저물녘 아이 부르는 소리, 아버지 뒷모습, 흥얼거리는 노랫가락, 꽃, 담장 넘어온 과일, 자전거, 놀이터, 낙서, 공동샘, 빨래, 그림자, 허름한, 강아지, 어린 시절, 친구, 웃음, 만남, 이별, 희망, 꿈, 걸인, 이웃, 정감, 가로등, 추억, 문화공간, 재개발, 도시재생 등, 잊혀 가는 단어와 새로 생겨난 단어들. 잊혀 가는 단어들 속에 민중들의 건강하고 생생한 삶이 담겨 있다. 역사가에 의해 기록된 역사가 아니라 민중들 기억 역사다.

골목길에서 70대 풍경 하나를 만났다.

“집도 그렇고 사람들도 그렇고 모두 나이를 묵어부렀소. 재개발헌들 여기 사람들이 그 집에 들어가 살 형편이나 되것소. 이러다 저러다 집도 사람도 함께 사라져 불 곳이지라.”

목구멍이 뜨거워진다. 

뛰어난 기록 사진은 예술 사진임이 자명하다. 사라져가는 것들이 기록화될 때 이는 우리에게 오래된 미래를 선물할 것이다.

엄수경  indian25@hanmail.net

목포대 국어국문학과에서 민속문학 박사를 수료했다. 2000년에 광주매일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당선됐다. 다큐멘터리 사진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광주여대, 목포대, 동신대에서 강사로 역임중이다.
목포대 국어국문학과에서 민속문학 박사를 수료했다. 2000년에 광주매일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당선됐다. 다큐멘터리 사진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광주여대, 목포대, 동신대에서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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